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지중해의 강렬한 태양 아래, 잔잔한 파도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는 작은 휴양지.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Les Petits Chevaux de Tarquinia)》은 바로 그런 여름날의 풍경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단순한 휴가의 낭만을 그리지 않는다. 전후(戰後) 프랑스의 공기를 가득 머금고 있는 이 작품은 휴식과 나른함 속에서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공허와 긴장을 포착해 낸다.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는 사랑과 욕망, 침묵과 부재, 그리고 전쟁이 남긴 공허를 예리한 감각으로 묘사하는 작가다. 그녀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이야기를 소비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녀가 만들어낸 공백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일이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도 마찬가지다. 대화가 이어지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오히려 말해지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일상의 대화를 나누지만, 그 밑바닥에는 채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감정들이 웅크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는 물리적으로는 재건의 길을 걸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전쟁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패전과 점령의 아픔, 그리고 저항과 협력이라는 복잡한 역사적 경험이 남긴 상흔은 사람들의 일상과 사고방식에 깊이 스며들었다. 동시에 프랑스 사회는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다. 경제는 재건되고, 현대적 소비문화가 싹트기 시작했으며, 여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다. 소설은 이런 이중적인 시대적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아낸다. 여유로운, 어쩌면 무료해 보이기도 하는 평온함이 속에서 불안이 감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전후 프랑스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녀가 보이는 후기 모더니즘과 누보 로망(Nouveau Roman)으로 연결되는 독특한 문체는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사건보다 분위기가, 대사보다 침묵이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단순한 문학적 기법이 아니라, 전쟁을 겪은 세대의 감정을 반영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소설이 출간된 1953년, 프랑스 문학계에서는 기존의 전통적 서사 구조를 해체하고, 인간의 내면과 감각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문학적 실험이 이루어지는 시기였다. 그 흐름 속에서 독자적인 색깔을 확립해 낸 뒤라스는 대화를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그 이면에 깔린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로 활용하면서 말해지지 않는 것에 더욱 집중했다.
1945년,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다. 나치는 패망했고, 레지스탕스의 저항은 승리했으며,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은 프랑스는 공화국을 재건해 나갔다. 그러나 전쟁이 남긴 상흔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사회 곳곳에서는 점령과 해방의 기억이 뒤섞였고, 협력자 처벌(Purges)과 전후 정치적 갈등이 이어졌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사람들은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전쟁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평화를 되찾았다는 기쁨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도 전쟁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무력감과 허무감이 존재했다. 이중적인 감정 속에서 프랑스인들은 정상으로의 복귀를 원했지만, 그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분위기는 프랑스 문학에도 반영되었다. 실존주의(Existentialisme)가 유행하면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는 작품들이 주목받았다.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의 《구토(La Nausée)》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이방인(L’Étranger)》 같은 작품들이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작품들의 특징은 분명했다. 인간의 불안과 부조리를 조명하고, 목적 없는 방황을 그렸다.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 경제는 급속도로 재건되기 시작했다. 산업은 다시 활기를 띠었고, 도시에서는 새로운 소비문화가 형성되었다. 1950년대 초반, 프랑스인들은 오랜 전쟁의 고통을 뒤로하고, 점차 더 나은 생활을 꿈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적 부흥 속에서도 많은 이들은 개인적 공허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전쟁 중에 가족을 잃거나, 젊은 시절을 빼앗긴 이들에게는 풍요로운 일상조차 낯설고 공허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분위기는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전반에 걸쳐 드러난다. 소설 속 인물들은 휴양지에 모여 있지만, 그들은 즐겁지도 않다. 특별한 목적도 없다.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며 대화를 나누지만, 그 속에는 미묘한 불안과 긴장이 스며들어 있다.
이러한 심리는 전후 프랑스 사회 전반에서 발견된다. 자유를 되찾았지만 정작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경제는 회복되지만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 상태가 전반적으로 계속되었던 것이다. 작품은 이러한 분위기를 섬세한 언어로 포착해 냈다. 외형적 평온함 속에 감춰진 불안을 절묘하게 그려냈다.
전쟁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랑스인들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휴가는 전쟁 전의 평온했던 삶을 되찾기 위한 중요한 상징이었다.
실제로 1950년대부터 프랑스에서는 본격적인 휴가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기차와 자동차 여행이 보편화되었고, 중산층을 중심으로 지중해 해안이나 산간 지역으로 떠나는 여름 바캉스가 유행했다. 휴양지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전쟁의 피로를 씻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공간이 되었다. 특히, 남프랑스의 해변은 일상의 회복을 상징하는 장소로 떠올랐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혼란스러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휴양지로 향한다. 하지만 이들이 찾은 공간은 기대만큼 평온하지 않다. 바닷가의 햇빛과 나른한 공기 속에서도 이들은 끊임없이 대화하고, 고민하고, 어떤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어딘가 불안정하게만 보인다.
소설은 이탈리아의 작은 해변 마을 타르퀴니아에서 펼쳐진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한여름, 권태로운 휴가를 보내기 위해 프랑스에서 온 다섯 명의 친구들이 이 한적한 마을에 머물고 있다. 바다와 산 사이에 자리한 외딴 휴양지에서 그들은 특별한 계획도 없이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는 중이다. 일상은 단조롭게 반복되고, 시간은 더디게 흐르기만 한다. 이들은 사실 이곳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매년 그렇듯 그룹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루디를 따라 이곳에 오게 되었다.
무더위에 지친 그들은 바다로 나가야 할지, 책을 읽을지, 그저 앉아서 수다를 떨지 고민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더위를 식혀줄 비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자크와 사라는 한때 뜨겁게 사랑했고, 그 사랑으로 결혼에 이르렀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서 이제는 서로에게 익숙해진 상태이다. 이들은 싸우지도 말다툼을 하지도 않는다. 서로에게 소리치거나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는 일은 없다. 그렇다고 서로를 간절히 원하지도 않는 그런 관계로 보인다. 반면 루디와 지나의 관계는 다르다. 이들은 친구들 앞에서도 의견 차이를 자주 보인다. 때로는 증오에 가까운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역시 관계를 정리할 생각은 없다.
이야기는 루디의 시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휴가를 보내는 동안 커플들은 권태와 불안에 휩싸이고, 서로에게 소원해진 관계 속에서 외로운 시간을 견딘다. 그러던 중, 새로운 여행객 진이 보트를 타고 나타나면서 분위기에 미묘한 균열이 생긴다. 사라는 낯선 그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결국 두 사람은 비밀스러운 관계를 맺게 된다.
사라와 진의 관계는 어느새 흐지부지 끝을 맺고, 진은 떠난다. 그리고 남겨진 인물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소설은 명확한 결말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이전과는 미묘하게 다른 변화가 일어났음을 암시하면서 조용히 끝맺는다.
소설에서 말해지지 않는 것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인물들은 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그 속에는 오히려 부재가 강조된다. 같은 말이 반복되면서 의미가 사라지거나, 혹은 그 이면에 다른 감정이 숨겨져 있음을 암시하는 표현을 사용한다. 대화가 끊기거나 갑자기 침묵이 흐르는 순간이야말로 감정이 가장 크게 요동치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아무런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순간 그들의 침묵을 통해 보이지 않는 감정의 흐름을 읽어내야 한다. 또, 소설에서는 인물들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주변의 풍경, 작은 행동, 말끝의 흐림 등을 통해 내면의 불안을 전달할 뿐이다.
작품을 더욱 낯설게 만드는 요소는 단순한 플롯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장면마다 그 분위기 속에서 의미를 찾는 작업을 반복하게 만든다. 마치 전후 프랑스 사회가 표면적으로는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듯하지만 그 아래에는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겉으로는 평온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불안과 권태가 깔려 있는 세계를 그려내야만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소설의 제목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은 가리키는 것은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고대 도시 타르퀴니아(Tarquinia)와 그곳에서 발견된 에트루리아 문명의 유적들을 의미한다. 타르퀴니아의 고대 무덤에는 말과 관련된 벽화들이 남아 있는데, 이는 이 지역이 과거 기마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타르퀴니아의 작은 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설명되지는 않지만, 이는 상징적 요소로 작용한다. 말은 일반적으로 이동과 자유를 의미하지만, 여기에서의 작은 말들은 어디론가 달려가는 역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유적 속에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으로 기능한다. 마치 벽화 속의 말들이 영원히 갇혀 있는 것처럼, 소설 속 인물들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지만 현실에 발목이 잡혀 있음을 의미한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타르퀴니아는 고요한 해변 도시이지만, 그 아래에는 사라진 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적 이미지는 작품 속 인물들의 내면과도 연결된다. 겉으로는 평온한 여름날을 보내고 있지만, 속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공허감과 무기력에 사로잡혀 있다. 마치 벽화 속에서 멈춰버린 말들처럼, 그들의 삶도 정지된 듯한 느낌을 준다.
타르퀴니아의 유적은 단순한 역사적 배경이 아니라,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이 유적들은 오래된 과거의 흔적이자, 시간이 멈춰 있는 공간으로 해석된다. 소설 속 인물들이 머무르는 휴양지 또한 현실을 도피하는 공간으로 인식 되어진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마치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인물들은 휴가를 떠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해방감을 느끼지 못한다. 더위를 피해 바다로 나갈지, 마을을 둘러볼지 고민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유적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과거의 흔적을 관찰하면서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결국은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과 닮아 있다.
사라가 진과 맺는 관계 역시 일종의 현실 도피로 볼 수 있다. 사라는 그의 등장에 잠시나마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정적인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하지만 결국 이 관계는 지속되지 못한다. 사라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진 또한 떠나게 된다. 이는 단순한 불륜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갈망과 그 갈망이 현실 속에서 쉽게 이루어질 수 없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가장 난해하면서 인상적인 요소 중 하나는 인물들이 어떤 결론에도 도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방황하면서 서로에게서도, 그리고 자신에게서도 만족을 찾지 못한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단순한 휴가 중의 권태를 넘어 전후 프랑스 사회 전체의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 전쟁이 끝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갈망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현실에서는 쉽게 충족될 수도 없다는 사실만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타르퀴니아의 유적이 과거의 흔적을 남기고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살아 있는 공간이 아닌 것처럼, 당시 프랑스 사회는 다이내믹하지만 정체된 듯한 느낌을 준다.
결국 소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메타포가 된다. 인물들은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어디로도 갈 수 없다. 그들은 마치 벽화 속에 새겨진 말처럼, 어떤 운명 속에 갇혀 있다. 이러한 정적인 세계를 통해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욕망과 그 욕망이 채워지지 않는 현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소설은 전쟁이 끝난 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지만, 등장인물들은 전쟁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러한 말할 수 없는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공백으로 여겨진다. 마치 전쟁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행동하고, 과거의 상처를 애써 회피하려 한다.
하지만 전쟁의 흔적은 그들의 일상에 은밀하게 남아 있었다. 인물들은 겉으로는 무관심한 듯 보이지만, 그들의 태도와 감정 속에는 전쟁이 남긴 공허함은 지워낼 수 없었다. 소설 속 아무런 목표 없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 쉽게 채워지지 않는 감정의 결핍,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깊은 권태는 단순한 개인적 문제라기보다는 전쟁이 남긴 감정적 후유증으로 볼 수 있다.
전후 프랑스 사회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공식적으로는 해방과 재건이라는 구호 아래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전쟁의 기억을 직접적으로 마주하기를 꺼려했다. 전쟁 동안 프랑스는 나치 점령과 레지스탕스 저항, 그리고 내부의 협력과 배신이라는 복잡한 역사적 경험을 겪었다. 이로 인해 사회 전체가 혼란스러운 감정을 겪어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집단적 기억의 회피는 소설 속 인물들의 태도 속에 녹아들어 가 있다. 직접 언급하지 않지만, 전쟁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하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보여진다. 지금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나른함, 이러한 모습은 전후 프랑스 사회가 보여준 과거를 잊으려 하지만 동시에 그 흔적을 지울 수 없는 이중적 태도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전쟁은 단순히 사회 구조만 바꾼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깊은 균열을 남겼다. 자크와 사라는 부부이지만, 더 이상 서로를 강렬하게 원하지 않는다. 싸움도 없고, 특별한 갈등도 그들에게는 사치처럼 느껴진다. 그들 사이에는 공허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이러한 관계는 전쟁 이후 많은 이들이 경험했던 감정과 유사하다. 전쟁 동안 역할이 변화하고, 일상의 모습이 변화하면서 새로운 긴장을 맞이하게 되었다. 전쟁 후 다시 재회한 많은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는 서로에게서 느끼는 낯섦도 있었다.
루디와 지나의 관계 역시 균열된 관계를 보여준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며 충돌하지만, 결국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 채 그 불안을 지속하게 된다. 이처럼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 관계가 완전한 안정감을 주지는 못한다.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도 개인 간의 유대감이 흔들리고 있었다.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나치 점령기에 침묵했던 사람과 저항했던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감정의 벽이 존재했다. 표면적으로는 단결을 외쳤지만 개인들은 여전히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은 분명한 결말을 제시하지 않는다. 휴양지에서 짧은 일탈을 경험하지만, 결국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관계의 변화나 개인의 성장 역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야기는 끝났음에도 그들이 어떤 감정을 안고 떠나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소설은 두서없는 권태의 기록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권태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갈망과 변화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사라와 진의 관계는 결국 지속되지 않지만, 사라는 휴가 끝에 이전과는 다른 감정을 경험한다. 그것이 해방인지, 좌절인지, 혹은 단순한 해프닝인지 알 수 없지만, 그 감정이 그녀의 내면에 작은 흔적을 남겼음은 분명하다.
이는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종말론적 분위기와 연결된다. 마치 전쟁 이후의 세계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타르퀴니아에서 보낸 시간은 어떤 변화도 남기지 않은 듯 보인다. 하지만 인물들은 이전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전후 프랑스 사회의 정서를 휴양지라는 공간을 통해 섬세하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전쟁이 끝났지만, 개인들은 여전히 불안과 공허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사랑과 인간관계조차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지속되지 않았다.
자크와 사라의 관계는 열정이 사라진 부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무관심이나 권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관계로 변화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루디와 지나는 끊임없이 충돌하면서도 서로를 떠나지 못하는 모습은 당시 관계의 복잡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관계의 미묘한 균열을 통해, 전후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상을 재구성하고 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삶은 여전히 지속되지만, 그 삶의 방식과 감정의 결은 전쟁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메시지와 함께.
이탈리아 중부 라치오(Lazio) 지역에 위치한 타르퀴니아(Tarquinia)는 기원전 8세기부터 번성한 에트루리아 문명(Etruscan Civilization)의 중심 도시 중 하나였다. 이곳은 에트루리아인들의 정치적·문화적 중심지였으며, 그들의 독창적인 예술과 장례 문화가 잘 보존된 곳으로 유명하다.
이 네크로폴리스는 고대 에트루리아인들의 사후 세계관을 보여주는 독특한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타르퀴니아의 무덤들은 벽화(Fresco)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에트루리아 문화의 가장 중요한 예술적 유산 중 하나로 평가된다.
타르퀴니아의 무덤 벽화들은 기원전 6세기~기원전 2세기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에트루리아인들의 일상생활, 종교적 신앙, 장례 의식 등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대표적인 무덤과 벽화로는 사냥과 낚시의 무덤'(Tomba della Caccia e Pesca), 표범의 무덤'(Tomba dei Leopardi), 마차의 무덤'(Tomba della Carriera) 등이 있다. 이 벽화들은 에트루리아인들이 죽음을 단순한 끝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의 여정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들은 신비로운 사후 세계를 믿었으며, 생전에 누렸던 삶의 즐거움이 죽음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라 생각했다.
사냥과 낚시의 무덤(Tomba della Caccia e Pesca)은 바다에서 낚시를 하거나 사냥하는 장면을 묘사한 벽화이다. 이 벽화를 통해 에트루리아인들이 생전의 삶을 사후에도 지속하기를 원했음을 보여준다.
표범의 무덤(Tomba dei Leopardi)는 연회 장면이 그려져 있는 벽화이다. 남녀가 함께 춤추고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 벽화는 에트루리아 문화가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삶의 즐거움을 중시했음을 나타낸다.
마차의 무덤(Tomba della Carriera)은 전차를 타고 달리는 귀족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벽화이다. 이는 권력과 영광을 상징한다.
타르퀴니아는 로마 문명의 기원과 깊이 연결된 곳으로 평가받는다. 에트루리아 문명은 기원전 6세기경까지 로마를 지배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타르퀴니아 출신의 왕들이 로마 초기 왕국(기원전 753년~509년)의 일부를 형성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근거로 로마의 마지막 왕이었던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Tarquinius Superbus)가 바로 타르퀴니아 출신이었다는 점을 꼽는다. 로마의 상하수도 시스템, 아치 구조, 신전 건축 등은 에트루리아 문명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하고 새의 움직임을 보고 길흉을 점치는 관습 같은 로마의 종교의식과 점술이 에트루리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견해를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