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금 대상에서 누락되자 햇볕 아래서 피켓 든 코로나 시대 대리기사
지난 8월, 택시·버스 등 운수업종이 포함된 정부의 5차 긴급재난지원대상에서 대리운전기사가 누락되자 대리노조에서 크게 반발했다. 대리노조는 청와대·고용노동부·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켓 시위를 벌였다.
코로나로 대리기사들의 수입이 반토막 내지는 반의 반토막 났다는 것은 여러 실태조사 등을 통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당시 이들이 든 피켓에는 '더 이상은 못 참는다', '생존대책 마련하라' 같은 벼랑끝 구호들로 가득했다.
지자체 차원에서 대리기사에 대한 지원을 가장 먼저 밝힌 곳은 울산시였다. 울산시는 지자체 차원의 지원 대상에 대리기사도 포함시키며 1인당 50만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9월엔 제주도가 대리기사를 포함한 제주형 5차 지원금 접수를 시작했다. 이후 경기도 시장군수협의회가 고용노동부와 경기도에 대리운전노동자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건의 할 때만 해도 대리기사들은 지자체를 통한 지원 확대를 기대했다.
하지만 제주형 5차 지원금은 그 전 회차에 받은 기사들은 받을 수 없었다. 또 경기도 시장군수협의회가 제안했다는 건도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시청 앞에서 1인 시위 시작한 부산경남 대리기사들
그러던 중 부산울산경남 4500명의 대리기사들이 모여있는 한 대리기사 밴드에서 '1인 시위라도 해보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지난 9월 7일부터 대리기사 밴드가 중심이 된 1인 피켓시위가 부산-창원-김해-양산 등지에서 시작되었다.
콜을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 밴드, 카페 등 인터넷에서 활발하게 자기 의견을 개진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낮에 자고 밤에 홀로 돌아다니는 고립된 삶에 익숙한 대리기사들. 그런 특성상 햇볕 아래서 사람들을 향해 피켓을 들어보이는 1인 시위를 과연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시위 초기부터 있었다고 한다.
부산-경남 대리기사 1인 시위를 주도한 대리기사 밴드의 운영자 A씨는 시청 앞에서 1인시위를 처음 시작했을 때를 떠올리며 "혼자 벽을 보고 외치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대리기사들의 1인 시위는 처음이라 호기심으로 한 번 쳐다보고 갈 뿐 관심갖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색적이게도 낮에 알바를 하는 남편을 대신해 1인 시위에 나선 60대 대리기사의 부인도 동참은 했지만 처음에는 너무 막막했다고 한다. 그는 매달 들어가는 돈은 뻔한 상황에서 수입이 반의 반토막 나자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낮 알바까지 구하러 다니는 남편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사실 할 만한 알바라도 구한 사람들은 다행인 편에 속할지도 모른다. 1인 시위를 주도한 대리기사 밴드 운영자 A씨는 부산의 한 복지시설에서 실시 중인 대리기사 실태조사에 조사원으로도 참여하고 있는데, 조사과정에서 만난 대리기사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수입감소로 인한 어려움이 보통 심각한 수준이 아님을 체감하게 된다고 했다.
장장 65일간 이어진 부산경남 시청앞 1인시위
대리기사들의 부산경남 시청 앞 1인 시위는 거의 매일 두 달 이상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이제는 시장이 된, 좋아했던 정치인이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낙담하기도 하고, 수줍게 다가와 캔커피를 건내며 파이팅하라는 듯 주먹을 쥐어보이는 이름 모를 아가씨에게 감동받기도 했다.
지원금 누락 후 전국적으로 대리기사들의 시위가 벌어지긴 했지만 대부분 단발성이었고, 부산경남처럼 대리기사 밴드를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두 달 이상 이어진 사례는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부산경남 대리기사들의 1인시위는 장장 65일간 이어졌다.
그들은 지난 11월 10일, 부산시청 앞에서 부산경남 대리기사 1인 시위의 공식 종료 행사를 열었다. 당일 부산시청 앞 1인시위에 참가한 여섯 사람만의 조촐한 행사였다.
하지만, 대리기사들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로 흩어지고 말았다는 좌절과 탄식의 해단식이 아니라 기쁨과 희망의 해단식이었다.
해단식을 전후로 1인시위가 벌어졌던 부산, 창원, 김해, 양산 등지에서 대리기사가 포함된 코로나 지원금 지급계획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발표됐기 때문이다.
김해에서는 '경제활력자금' 대상자에 대리기사를 포함시켜 10월 5일부터 신청을 받았고, 인구 350만의 부산시도 11월 8일, 3천억 원 규모의 특별지원책을 발표하면서 특수형태근로자-프리랜서도 포함시켰는데, 대리기사는 특수고용형태근로자(특고)의 대표적인 직종 중 하나였다.
창원도 11월 중순, 정부 지원에서 제외된 업종 중 피해 규모가 큰 4개 업종을 선별해 '5차 창원형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대리기사도 포함되었다. 양산도 12월 들어 대리기사를 위해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발표하면서 여행 관련 업종과 경남교육청의 교육재난지원금 지원에서 제외된 영·유아까지 지원대상에 포함시켰다.
시청 앞 1인 시위가 벌어진 부산경남의 지자체들에서 일제히 대리기사들이 포함된 추가 지원계획을 발표한 것은 소외되는 일에 익숙했던 대리기사들에게는 어쩌면 작은 기적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대리기사 1인 시위와는 별개로 지원금 지급계획을 수립해가던 지자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5차 긴급재난지원대상에 대리기사가 포함되지 못했듯이 지자체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1인시위가 지자체의 추가 지원 계획에서 대리기사가 누락되지 않도록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또한 그들의 시위는 소외계층 추가 지원을 고민하던 관계자들의 마음을 견인했을 수도 있다. 취재과정에서 대리기사에게 지원금을 주기로 결정하면서 형평성 등을 고려해 다른 취약계층으로 지원대상을 확대한 사례도 있음을 전해 듣게 되었다.
부산.경남 대리기사 1인 시위를 주도한 대리기사 밴드의 운영자 A씨는 지난 11월 10일, 시위의 공식 종료를 알리면서 "앞으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실상을 알리고 개선을 유도할 것"이라고 했다. "지자체 관계자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려워진 대리기사들의 상황과 실태를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석에서 들은 그의 소원은 어쩌면 소박한 것들이었다. 그가 거주하는 중소도시에도 비바람 추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대리기사 쉼터가 하나 들어서고, 일하다 다쳐도 마음놓고 치료받을 수 있고, 표준계약서가 도입되어 일방적인 수수료 인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새해에는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본다.
이 포스팅은 오마이뉴스 기사로도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