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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소확행

아들 셋 맘의 아이 동반 가출기

그는 밖에서 일합니다.

우주를 지붕 삼아 안전화 신고 뚜벅뚜벅 걸으며 눈과 머리로 일합니다. 한 점의 그늘이 아쉬운 땡볕에 쏘이고 비바람이 팬티까지 흠뻑 젖어오더라도 시퍼런 칼날 같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나와 아이들을 먹여 살립니다.

그와 나는 여름이 되면 야간이 좋고 겨울이 되면 주간이 좋습니다.


나는 안에서 일합니다.

세상의 문을 닫아 앞치마 두르고 무릎 꿇어 손과 마음으로 일합니다. 한숨의 잠이 아쉬운 눈을 비비고 비눗물이 뱃살까지 흠뻑 젖어오더라붉은 사이렌 같은 아이들의 희비에 장단을 맞추며 그와 아이들을 돌봅니다.

나와 그는 에어컨 없는 여름이 싫고 가스비 걱정되는 겨울이 싫습니다.




"나는 한 점의 그림자를 찾아다닌다."


 경비원 할아버지의 발걸음을 경계하여 귀를 쫑긋 세우고 물을 틉니다. 수도꼭지와 물총의 입맞춤을 돕다가 배불러 토해내면 서둘러 물을 잠급니다. 인적이 드문 그늘로 이동합니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힘껏 쏩니다. 젖은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흠뻑 젖은 능소니 셋이 나를 조준합니다. 눈에도 입에도 웃음이 실컷 흐릅니다. 반쯤 그을린 애 씻겨 내려갑니다. 우리 모두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대문이 열리는 찰나, 바람도 따라 들어와 축 쳐진 하얀 커튼을 춤추게 합니다.

아이들의 들뜬 마음을 서둘러 벗깁니다. 관리비 고지서로 부채질하며 검열이 시작되면 장난감과 잡동사니들은 제자리로 숨습니다. 물을 마시고 선풍기 앞에 앉으니 상쾌한 여름이 집안에 번집니다.

시원한 바닥만 그를 당당하게 기다립니다. 불 위의 추어탕만 그를 뜨겁게 기다립니다. 밖에서 일하는 남편이 가엽습니다. 그가 집에 돌아오면 푹 쉴 수 있게 세 아이들을 조심시킵니다.

 

 그가 돌아왔습니다.


길고 무더운 하루가 시작됩니다.

밖에서 이고 진 스트레스를 발길 닿는 곳마다 내동댕이칩니다. 밥상에서도 그의 성품을 버려댑니다.

“그러지 말고 좋게 말해. 방에서 쉬어”

선풍기가 한 대 더 돌아갑니다.

그의 방에 들어 간 아이가 '어벤저스'영화 내용을 물어봅니다.

“아! xx! 영화도 못 보겠다. 나가.”

뛰어들어가 아이의 귀를 막고 거실로 데리고 나옵니다.

“정말 너무하다”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내 마음의 요동을 잠재웁니다.

영화를 다 본 그가 거실로 나와 소리칩니다.

“통영에 짐 싸서 내려가.”


뚜벅맘에 전업맘이 굳은 결심을 합니다.


 손은 바쁘게 집안을 정돈하고 압력솥에 삼계탕을 끓이며 설거지도 해냅니다.

머리로는 숙원사업이던 '아이 동반 가출'을 실행합니다. 더 이상 손길이 닿지 않는 물건을 깨끗이 닦아 당근에 팔았습니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돈, 10만 원이 사업 밑천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탕이 큰 온천호텔이나 수영장 딸린 펜션 키즈 룸으로 떠나고 싶지만 숙박비와 택시비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면 가방에 여벌 옷, 큰 수건, 물통, 스텐 컵, 수저와 포크 을 넣습니다. 집 나가는 와중에 환경보호까지 신경 쓰는 나란 사람, 코웃음이 니다.


"얘들아, 비밀인데....... 아빠는 빼고 우리만 좋은 데 갈까?"

"왜 빼는 거예요. 그러면 아버지 속상하시잖아요"

"야간 하고 와서 피곤하잖아. 조금 멀긴 해도 걸어갈 수 있는 곳이야."

"왜 비밀이에요? "

'미워서 벌주려고.'라는 진심은 숨깁니다.

둘째가 반대합니다.

"우린 가족이잖아, 나는 싫어요"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그를 떠납니다.


 유모차에 가득 실은 짐과 태양열을 가득 품은 공기에 현기증이 납니다.


과일가게로 들어갑니다.

냉장고에서 새어 나오는 공기가 우리를 반깁니다. 첫째가 좋아하는 자두 몇 알과 둘째가 좋아하는 포도 한 송이 그리고 셋째가 좋아하는 수박 반 덩이를 삽니다. 남편의 카드가 결제되는 동안 나는 참외로 눈요기합니다.

“아들만 셋입니까? 아유, 막내는 딸로 낳지. 하나 더 낳으세요."

"시어머니 아들까지 이미 넷을 키우고 있어요."

"엄마, 너무 힘들겠다. 아들 키우는 엄마는 목소리부터 다르던데, 참 여리해 보여요. 많이 힘들겠어요."

"시어머니 아들만 힘들지, 제 아이들은 순해서 괜찮아요."

"아유, 하나같이 인물이 좋네, 듬직하니. 얘들아, 나중에 크면 엄마한테 효도해라”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 모두들 고생한다며 나를 불쌍히 여깁니다. 버스, 슈퍼마켓, 병원, 약국 등 장소를 불문하고 아이가 셋 딸린 내 모습에 한 마디씩 입을 댑니다. 도움 주는 것 도 아니면서 나불대는 사람들이 정말 지만 매번 아무 말 못 하고 미소만 지으며 그 자리를 떠습니다. 어른인 나도 이렇게 기분이 나쁜데 아이들의 입장을 헤아려 보니 웃어넘길 수 없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말들을 하나 둘 받아치며 나는 힘들지 않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아이 자랑까지 흘렸습니다. 사람들은 내 말에 동조하며 칭찬으로 대화를 마무리합니다. 정말로 힘들게 하는 아이는 시어머니의 아이입니다. 시어머니 곁으로 반품하고 싶습니다.

 

편의점으로 들어갑니다.

에어컨 바람도 우리를 반깁니다. 

“사고 싶은 거 다 사도 돼.”

머뭇거리던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집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카드를 내밉니다.

“아들만 셋입니까? 아유, 엄마 힘들겠다."

"힘들지 않아요. 말을 잘 들어서요."

 "그러게, 참 잘 키웠네요. 아들들이 어찌 이리 얌전하나.”


옆구리 찔러 받는 칭찬은 불우한 가출 맘의 처지도 잊게 합니다.



우리는 자유와 환상의 나라로 행진합니다.


해님은 레이저 광선을 쏘는 듯 따갑습니다.

시커먼 아스팔트는 델 듯 이글거립니다.


건물 그림자에 몸을 숨겨가며 800미터 거리를 걸어갑니다. 둘째가 칭얼대니 첫째는 타이릅니다.


“여름이니까 덥고, 땀이 나는 거야.”

 

해바라기 한 송이가 속삭입니다.

‘깊이 여물어라, 알알이 단단해져라’


아이들에게 선크림을 발라 주거나 그늘을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한여름의 땡볕은 겨울의 비타민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가로수는 초록 잎으로 우리를 격려합니다.

신호등도 초록빛으로 우리를 응원합니다.



‘해방의 모텔’로 입장합니다.

 

시퍼렇게 사랑스럽게. 나팔을 꺼내 든 담장의 꽃이 피난처 입성을 축하합니다.


"조용히 해야 해. 사람들이 피곤해서 쉬러 오는 장소이니 조용히 해야 해. 만약에 떠들어서 시끄러우면 아랫집 아저씨 같은 주인이 와서 문을 두드려. '방을 비워주세요'라고 하면 우린 여기 있을 수 없어. 모두 쉿!"



아이들은 검지를 세워 코에 댑니다. 고개를 끄덕끄덕, 미소를 짓습니다. 엄마 옆에 찰싹 붙어 두리번거립니다.


 역시 거절당할까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프런트에 몸을 낮춥니다. 아이들이 셋인 주제에 모텔에 와서 죄인이 됩니다.


주인은 아이들에게 이름을 물으시더니 욕조가 가장 큰 방을 내어 주십니다. 성수기, 주말, 1인 추가 요금도 받지 않으십니다.


무심코 건넨 남편의 카드에 놀라 고양이 앞발 후리듯 감춥니다. 독재자의 휴대폰으로 우리의 파라다이스가 전송될 위기를 무사히 넘깁니다. 


내 붉은 지갑에서 만 원짜리 여섯 장이 나옵니다. 적의 위치추적으로부터 우리의 낙원은 안전합니다.



심사를 통과한 우리들의 눈빛으로
깜깜한 복도를 밝힙니다.


미소가 번져 웃음이 될까, 설렘이 터져 소리가 날까. 두 손 모아 입을 막고 살금살금 방을 찾습니다.


문을 열고 불을 켜자, 아이들은 탄성을 지릅니다. 아빠도 부르자고 졸라 댑니다.

그 없는 세상에서 아이들을 마음껏 놀리고, 나도 한껏 숨 쉬고 싶습니다.

휴대폰의 전원을 끄고 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켭니다.


“아빠가 오면 이곳은 집과 다를 게 없어. 오늘만 우리끼리 보내자”



 결혼 후 처음으로 긴장과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납니다.


우리 은신처는 침실과 욕실, 야외 테라스로 간단합니다. 잡동사니 하나 없는 곳에 사는 게 소망이었는데 정말 살아보는 겁니다.


먼저 테라스의 욕조를 목욕재계 시키고 따듯한 물로 채웁니다. 보온병에 담아 온 삼계탕을 꺼내어 저녁을 먹입니다. 아이들은 얼른 먹고 물속으로 들어갑니다.


나는 남긴 것을 먹으며 방 안을 둘러봅니다. 콧대 높은 침대와 고급스러운 대리석 바닥이 16개월 막내를 다치게 할까 봐 걱정됩니다. 가출 나온 어미의 자식이 다치면 시댁 소환될 감입니다. 가출 사업의 두 번째 목표를 다짐합니다.

'아이들을 즐겁게 하되 절대 다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돌봐라'


컴퓨터 두 대가 사이좋게 서서 같은 곳을 바라봅니다. 베개 한 쌍이 새하얀 이불을 다정하게 덮고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전기포트와 전자레인지벌린 입에서 따듯한 한숨이 나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의 신은 올라가지만
나의 한은 파고듭니다.


 천정이 뻥 뚫린 테라스에서 작고 네모난 하늘을 올려봅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버린 내가 신혼여행의 하늘과 재회합니다.

‘그때의 소망은 모두 이루어졌는데 왜 그를 떠나 여기에 있는가?’


남편 없이는 시켜본 적이 없던 배달음식을 시킵니다. 돈으로 내가  자장면을 난생처음 자식에게 먹여봅니다. 나에게도 냉면 한 그릇을 정말 오랜만에 사줍니다. 한 입의 달콤함과 두 입의 오붓함은 추억으로 소화됩니다.


두 아이는 침대 위, 막내는 수건을 깐 바닥에 누었습니다. 아이들은 금방 새근새근 잠이 드는데, 나는 회색 벽에 스크린을 쳤습니다. 쓸데없이 이것저것 반추하면서 미래를 구상합니다.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이렇게 사는 게 옳은가?'

'더 이상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내가 결혼할 즈음 땅속에서 참고 또 참았던 매미는 이제 나무에 올라 목 놓아 울고 있습니다.

“치르르르, 치르르. 매암 맴, 매앰 맴.”

인내의 친구가 자장가를 불러줍니다.


나는 다음날이 되어 잠이 드는데
아이들은 다음날이 되어 일어납니다.


부지런한 해님을 원망할 새도 없이, 둘째가 휴대폰을 몰래 켜 영상통화를 합니다. 급하게 전화를 잡고 얼굴만 보이게 합니다.


“아빠, 잘 있어요. 사랑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에게 걱정이 필요해서 가출 대장정을 떠난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휴대폰 전원을 끄고 옷을 입힙니다.


로비에는 우아한 조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만을 위해 차려진 것 같이 감동스럽습니다. 금방이라도 다 없어질 것 같이 먹음직스럽습니다.


 

둘째에게 젤리 한 봉지를 손에 쥐어주고 산책을 나갑니다. 미운 여름의 아침 공기를 들이마셨다 내뱉습니다.



엄마 오리 한 마리와 아기오리 세 마리가 푸르른 풀숲을 뒤뚱거립니다.


둘째가 젤리 봉지를 뜯자 오소소 쏟아집니다. 흙바닥의 젤리를 주워 먹기 위해 땅에 주저앉아버린 막내, 엄마의 부름에도 직진을 일삼는 둘째, 둘째에게 뛰어가는 첫째.


저 멀리 남편이 서 있습니다.

그가 걸어옵니다.

그가 달려옵니다.


나는 꽁꽁 얼어 멈추어 습니다. 웃음 바람이 놀란 마음에 불어 댑니다.

‘손바닥 안이라고 생각하겠네.’


그는 두 팔 벌려 맞이합니다.

처음 만난 순간처럼 기쁜 마음으로 아이들을 한 명씩 안아줍니다.


그는 짝다리 짚어 맞이합니다.

힘이 잔뜩 들어간 미간과 휜 바늘 같은 눈 그리고 첨예한 입술로 나에게 말합니다.


“나는 일하다 더워도 음료수 하나 안 사 마시는데, 돈이 남아도나?”


“만원 더 내고 같이 가자.”



 그는 빈손으로 내려가고 나는 아침거리를 챙겨 올라갑니다.


물에 들어가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복숭아 주스를 마십니다. 토마토샌드위치도 먹습니다. 마음까지 든든해지는 아침식사입니다.


 첫째는 컴퓨터를 합니다. 막내는 고마운 낮잠을 잡니다. 둘째와 나는 물속으로 들어갑니다.


민강아, 사랑해. 엄마가 항상 고마워. 민강이도 하고 싶은 데로 안 돼서 화가 날 때가 있지. 그럴 때에는 도와 달라고 말해주면 좋겠어. 짜증만 내고 말하지 않으면 도와줄 수 없어. 오히려 너에게 화가 나기도 한단다. 젤리를 땅에 떨어뜨려 먹지 못하게 되면, 아주머니께 한 봉지 더 달라고 하거나 엄마가 새로 사 줄 수도 있잖아. 그렇지?”

“네.”

“아까, 이 동네 개미들은 민강이 덕분에 ‘젤리 파티’ 한다난리 났더라. 민강이에게 고맙다고 전해 달래.”


이제 둘째가 컴퓨터를 합니다. 막내는 나비잠을 잡니다. 첫째와 나는 물속으로 들어갑니다.


첫째라는 이유로 두 돌 전에 어른 취급을 받고 아빠가 없을 때에는 가장 노릇까지 해왔습니다. 동생에게 부모를 빼앗긴 서러움을 생각할 틈조차 없이 자라왔습니다. 아직 어린 첫째가 짊어진 돌을 하나 둘, 다 내려주고 싶은데 깃털 같은 시간만이 야속하게 흐릅니다.



비가 옵니다.


 집으로 어떻게 가지?’


그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데리러 갈게.”

방을 정리하고 유모차와 아이들을 이끌고 카운터로 내려옵니다. 귀와 코를 열어 소나기를 바라봅니다. 주인아주머니께서 카운터에서 나오십니다.


“재미있게 놀았어요? 힘들죠. 나도 아들 셋이에요. 다 커서 이제  해줄 것도 없네요. 애들한테 모든 것을 바치지 마라요. 다 줘봤자 결국 딴 여자 사람 돼요. 막내는 눈치껏 잘 크니까, 둘째를 많이 챙기세요. 중간에서 많이 치여요. 키울 때는 몰랐는데 다 크니까 사랑을 못 받은 티가 나요.”


늦가을을 지나는 선배의 충고에 한여름을 지나는 나는 기력을 회복합니다. 그녀의 진심은 '인복이 많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마음의 보양식입니다.


다 끓여 놓은 삼계탕도 찾아 먹지 못하는 시어머니 아들은 쫄쫄 굶어 배가 고픕니다. 삼계탕은 싫다며 뭐 먹을지 고민합니다. 돈을 많이 썼다고 결국은 사 먹지 않기로 합니다. 이내 자신이 가보지 못한 곳을 갔다며 툴툴 댑니다. 나는 전 재산을 탈탈 털어 통닭을 사줍니다. 그의 10년 치 주량, 맥주 한 잔에 결국 실토합니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여름이 오기 전, 안 쓰는 물건은 버리고 새 물건은 경계하며 집을 시원하게 했습니다. 비울지 말지, 고민 많았던 남편을 비우지 못하고 이 여름을 함께 보내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괜찮다, 고쳐 쓸 만하다’라고 되뇌며 이겨냅니다.


#책과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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