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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글방 Jul 19. 2021

이러다 '기레기'가 되는 게 아닐까

[단비글] '밤'

지난해 큰 기대 없이 지원한 언론사 공채시험에서 운 좋게 필기 시험을 통과해 실무 평가를 봤다. 제시어를 주고 그에 부합하는 기사를 완성해 제출하는 시험이었다. 생애 첫 취재였다. 시험을 대비해 기획안 짜는 연습을 여러 차례 해봤지만 실전에선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 


한 여름에 땀으로 샤워를 하며 서울역과 남대문 일대를 종일 돌아다녔지만 돌아오는 건 사람들의 적대적인 시선과 냉대였다. 취업준비생이라는 신분을 불쌍하게 봐주십사 인터뷰를 구걸해봤지만 연거푸 거절당했다. 취재도 제대로 되지 않은 기사는 형편없었고 미사여구로 글자수를 간신히 채워 제출했다. 그날 함께 시험을 치른 친구와 면접비로 받은 3만원으로 노량진에서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에 오는 길, 밤하늘은 또 왜 그리 캄캄한지 괜히 내 미래를 암시하는 것 같아 원망했다.


다음 날 이어서 면접을 봤다. 면접관에게서 "글은 잘 쓰는데 취재는 잘 안 해봤나보다. 기사를 너무 못 쓰더라."라는 말을 들었다. 스스로도 기사쓰기가 엉망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면접관에게 직접 들으니 괜히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글을 잘 쓴다는 말은 가장 좋아하는 칭찬인데 그건 들리지 않았다. 기사를 못 썼다는 말만 계속 귀 언저리를 맴돌았다. 기자가 되고 싶다는 사람이 기사를 못 쓰는 건 너무 큰 치명타가 아닌가 싶었다. 첫 취재에서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도 잘 아물지 않았다. 


공채를 마구잡이로 지원할 때가 아니라 기사쓰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한동안 채용 홈페이지를 기웃거리며 인턴 채용 공고가 뜰 때마다 지원을 했다. 하지만 서류 한번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다 겨울이 다가왔고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매체를 발행하는 저널리즘 대학원 입학 공고를 봤다. 소재지가 충북 제천이라는 게 약간의 갈등 요소였지만 결심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올해 3월 대학원에 입학했고 얼마 전 첫 학기를 마쳤다. 학기 마지막 시험은 지난해 나를 그토록 괴롭게 했던 실무 기사쓰기로 이뤄졌다. 실제 언론사 시험과 마찬가지로 아침에 제시어를 주고 저녁까지 기사를 완성해서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제시어는 '불안정 노동'. 어느 시험보다도 떨렸다. 1년 전보다는 잘 하고 싶었다. 


네일 아티스트 견습생 노동 착취를 주제로 잡고 네일샵이 많이 포진한 여대로 향했다. 나를 어떻게 소개할지, 어떤 질문을 할지 주문을 외우듯 준비했지만 막상 네일샵 입구에서는 망설여졌다. 계단을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 용기를 내어 들어갔지만 번번이 인터뷰는 따내지 못했다. 손님을 앞에 두고 응대를 하며 한창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인터뷰를 해달라 조를 수가 없었다. 손님이 없을 때에도 문제는 있었다. 원장이 버젓이 있는데 훈련생에게 노동 착취에 대해 말해달라고 하는 게 내가 생각해도 어불성설이었다. 간신히 몇 마디를 따내긴 했지만 기사를 쓰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마감 시간을 한참 넘기고 밤이 되어 집에 돌아오는데 착잡했다.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구나 싶었다.


낙담하던 차에 대학원 동기에게 소개받은 지인의 지인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밤 10시가 다 되어 통화를 했다. 10분 정도 짧은 인터뷰였는데 한나절 네일샵을 돌아다니면서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다 들었다. 하늘에서 동아줄 하나가 내려온 것만 같았다.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말주변이 좋은 취재원과 기분 좋게 통화를 마치고 기사를 쓰려고 하는데, 뒤늦게 내가 웃으며 들은 그 이야기가 '노동 착취'에 관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오전에 문자를 보냈는데 밤이 되어서야 답장이 온 것도 눈코뜰 새 없이 일하다 그때 퇴근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아챘다. 스무살을 갓 넘긴 나이에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최저임금도 못 받고 손이 트도록 일했다는 안타깝고 화나는 사연을 나는 무감각하게 글로 옮긴 것이다.


평소 사람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고, 공감도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나같지 않고 굉장히 생경하게 느껴졌다. 과제 제출에 혈안이 돼 내가 무슨 기사를 쓰는지, 나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순간 까먹은 것이다. 자기소개서에 줄줄이 늘어놓았던 '기자가 되고 싶은 이유'나 '어떤 기자가 되고 싶은가'에 관한 답변들이 위선으로 느껴졌다. 앎과 삶이 일치하기가 어려운 일인줄 알지만 이토록 쉽게 분리될 수도 있다니. '기레기'라는 게 별 게 아니라, 이렇게 사람을 잊고 결과만 생각하다보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의 덕에 그나마 쓴 기사를 제출하고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미안함을 전했다. 내 마음이 편해지려고 그랬다. 밤은 깊어가는데 답장은 오지 않았다. 통화를 마치며 '오늘은 좀 힘들었어서 집에 가서 치맥을 해야겠다'고 한 말을 떠올렸다. 그가 피로를 풀며 행복한 밤을 보내길 바라면서도 나는 생각이 많아져 잠을 쉬이 이루지 못했다. 한 발자국 앞으로 가고 싶었는데 오히려 뒤로 간 것만 같다. 취재에 실패했을 때보다 더 착잡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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