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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글방 Jul 17. 2021

밤을 담아낸 사진의 가치

[단비글] '밤'


대학교 때 찍은 사진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은 경비노동자를 찍은 사진이다. 교내 전시회에 내놓은 흑백 필름 사진이었다. 전시회 주제가 ‘학교’였는데, 새 학기의 들뜬 분위기와 대조되는 밤샘 경비원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침 일찍 대학 건물 1층에 들어서면, 경비실 유리창 안에서 항상 그들이 고개를 들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 항상 피곤해보였다. 그래도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학교에 도착하는 내게 그들은 친절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곤 했다.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가장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경비원에게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어둑한 아침 새벽 시간에 그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동아리 암실에서 그 필름을 직접 현상했고, 사진도 직접 인화했다. 인화지에 상이 맺히는 동안 잠깐 온갖 기대와 설렘이 교차했다. 하지만 결과물은 잔뜩 흔들린 사진이었다. 삼각대 없이 카메라를 든 손이 떨렸고, 어두운 경비실 환경이 흔들림을 더했다. ‘어떻게 이걸 전시회에 내놓나’ 착잡한 마음이 그득해졌다. 그때 사진을 물끄러미 보던 한 친구가 ‘흔들린 사진도 의미가 있다’며 나를 위로했다. 사진이 밤 새 일하면서 적은 급여를 받고, 고용불안까지 느끼는 경비원들의 노동 환경을 은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후적인 의미 부여였지만 나는 그렇게 사진을 합리화했다.


어두운 밤과 새벽에 사진을 찍는 것은 쉽지 않다고, 나는 변명하고 싶다. 필름이든 디지털이든 카메라는 모두 빛의 노출량이 사진의 화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빛이 풍부한 환경에선 역동적인 동작도 단번에 잡아낸다. 하지만 빛이 부족하면 카메라를 쥔 손의 떨림, 피사체의 미세한 움직임 등이 뿌연 안개처럼 사진을 뒤덮는다. 스마트폰으로 높은 화질의 사진을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시대에, 흔들리고 어두컴컴하면서 필름 입자는 거친 사진을 누가 눈 여겨 볼까. 마치 밤샘 노동과 그 속의 삶이 주목받지 못하는 것과 같다.


사진이 갖는 본래의 가치는 기록이다. 사진 속에 담은 현실이 켜켜이 쌓이면, 세계 그 자체가 된다. 그간 낮에 찍은 수많은 보도 사진은 깨어있는 세상을 다뤘다. 세상을 바꾸는 일도 대개 낮에 이루어졌다. 반면 밤은 은밀한 시간이거나 세상이 잠자는 시간이었다. 그게 너무나 당연해서 주목받지 못하는 세계였다. 이제는 야간에 철야하는 삶을 기록하는 사진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잔뜩 흔들리고 선명하지 못한 사진이기 때문에 도리어 진짜 밤의 현실을 드러낼 수 있다. 밤의 현실을 기록하는 사진은 세상 사람들이 갖는 시공간의 지평을 넓힌다. 낮을 지탱하는 밤을 알고, 잠든 세계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서툴고 어색해도 그런 밤의 사진이 갖는 가치이다. 대학교 전시회에서 자신의 사진을 보던 그 경비노동자의 뒷모습을 잊을 수 없다. 엉망인 사진에 쭈뼛대던 내게 그는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 말의 의미를 밤샘 노동을 드러낸 사진에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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