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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글방 Jul 11. 2021

배경 없는 아들들의 비극

[단비글] '밤'

‘나이트 워치’ 그렌은 <왕좌의 게임 시즌 4> 막바지에 얼음장벽 관문에서 죽었다. 그는 거인 ‘위대한 메그’의 육중한 시신 아래 깔려있었다. 그렌은 10cm 두께의 강철 관문을 들어 올린 거인에 맞서 관문을 지켜냈다. 위대한 메그는 거인족의 왕이었고, 그렌은 농부의 아들이었다.     


<왕좌의 게임>은 HBO에서 제작한 미국 드라마다. 조지 R. R. 마틴이 쓴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세계관에서 나이트워치는 장벽 바깥 존재들로부터 인간 세상을 수호하는 고귀한 지위였다. 장벽 밖에는 메그 같은 거인과 거친 야만인들이 있었다. 귀족들은 의무를 위해 장벽으로 향했었다. 그러나 한 차례 대규모 내전 이후 관심이 끊어졌다. 모르몬트 사령관 같은 몇몇 노병들만 귀족이었다. 나머지는 사생아와 농부들, 생계형 범죄자들뿐이었다. 3살 때 농장에서 버려졌던 그렌 같은 이들만 장벽 수호 의무를 짊어졌다.     


시즌4가 종영하고 1년이 좀 지났을 때 입대했다. 훈련소에서 간부들이 훈련병들을 모아놓고는 당연한 절차라는 듯이 말했다.     


부모님이 고위 공직자, 군 관계자면 잠깐 나오세요.   


몇 명이 나갔다. 그다음 상황을 보지 못했지만 특혜를 주려는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최전방에서 근무했던 친구의 경험담을 떠올랐다. 친구가 최전방에 배치됐더니 그곳에 대학물 먹은 놈들을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왕좌의 게임이 한국에서 인기 있었던 이유는 군필자들이 나이트워치를 보며 자기 경험을 떠올렸기 때문 아니었을까 싶었다. 나는 본부로 빠졌다. 뒷배가 있는 건 아니었고, 그냥 운이 좋았었다.     


사령부 앞에서 경계 근무를 설 때였다. 간부들이 분주하게 들어왔다. 영관급 장교는 흥분해서 사망 매뉴얼을 연신 외쳤다. 당혹감, 죄책감, 슬픔보다 특이한 일에 대한 흥분이 보였다. 죽은 사람은 기갑부대 병사였다. 그는 운전수가 실수로 사이드 브레이크를 툭 치는 바람에 육중한 장갑차에 깔렸다. 그는 군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죽었다.     


나만큼 평범한 집안의 아들이었을 것이다. 단지 나보다 운이 없어 전방으로 배치됐을 뿐이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그렌을 영웅으로 기억한다. 시청자들도 기억해준다. 그러나 현실 속 그 병사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다. 내가 운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원래 군 생활은 다 뱉고 싶을 만큼 썼는데, 그날 경계 근무 마치고 돌아갈 때는 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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