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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어바웃 Sep 14. 2022

도시와 산골을 오가고 있어요.

강원도 영월 | 천혜영(이후북스테이)

탐방은 매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tambang.kr / @tambang.kr



Interview | 이후북스테이 천혜영님과의 인터뷰


‘나 홀로 문화’, ‘자발적 고립’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언뜻 안 좋은 의미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복잡한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홀로 여행, 독서, 운동 등을 즐기는 건강한 문화라고 해요. 타인이 아닌 나에게 집중하여 일상의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 과정이거든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도 경험이 있어요. 처음 회사생활을 시작했을 때죠.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만 가득하던 학교에서 나와, 다양한 나이와 직책이 뒤섞인 사회는 ‘E’인 저에게도 힘든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해낸 게 일주일에 한 번, ‘혼자만의 시간’을 만드는 거였죠. 처음에는 갑자기 혼자 밥을 먹겠다는 저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보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다들 곧 적응하셨어요. “아~ 오늘 혼자만의 시간이지?” 하시고요. 일주일에 1시간이었지만 저에게는 좋은 영향을 주는 회복의 시간이었어요.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욱 건강해졌고요. 아마도 ‘나 홀로 문화', ‘자발적 고립'의 효과 아니었을까요?


오늘의 주인공인 천혜영님은 서울과 산골을 오가며 ‘자발적 고립'을 실천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나 홀로, 자발적 고립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제공하고 있지요. 바로, 산골 속의 휴식처로 알려진 ‘이후북스테이’입니다. ‘참 좋은 업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이후북스테이 주인장은 혜영님의 ‘부캐’라고 하네요. 서울에서는 본캐, 메이크업아티스트로, 영월에서는 부캐, 이후북스테이 주인장으로 살아가는 혜영님을 만났어요.


이후북스테이 주인장, 혜영님을 만났어요. Ⓒ탐방



여기에서는 한 200%가 채워지는 느낌이에요.


어느 날, 엄마께서 소일거리로 민박을 운영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업체에서 공간을 멋있게 만들어준다고 했는데, 와서 보니 너무 촌스럽더라고요. 몰딩은 체리 색이고, 문에는 꽃무늬 유리가 들어가 있고요. ‘망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웃음) 그래서 하나씩 하나씩 손을 대기 시작했어요. 망하면 안 되니까요. 일주일에 두 번씩은 서울에서 영월을 왔다 갔다 했어요. 연희동에서 영월까지 3시간이 걸리거든요. 5년 전에는 열정과 에너지가 있어서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절대 못 할 것 같아요.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인테리어만 끝나면 털어야지.’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손을 대니 잘 운영되는지 궁금하더군요. 어머니가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으니 인스타그램이나 예약 관리를 도와드릴 수밖에 없고요. 하다 보니 재미도 있고 애착이 생겼어요.


하다 보니 재미도 있고 애착이 생기더라고요. Ⓒ탐방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와요. 사람 일은 모른다고 하잖아요. 타의에 의해 시작했는데 이 일이 저랑 잘 맞더라고요. 본업인 메이크업도 재밌게 하고 있지만, 자연에서 주는 에너지가 더 커요. 서울에서 일할 때는 70%의 에너지가 채워진다면, 여기에서는 한 200%가 채워지는 느낌이에요. 저도 여기에 오면 위로를 받거든요. 우선, 아무도 없다는 게 너무 좋아요. 이곳에 혼자만 있으면 온전히 나만 바라볼 수 있어요. 풀벌레 소리랑 바람 소리도 좋죠.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 참 감사하게 느껴져요. 그러다 동강으로 산책하러 가죠. 이 근방에는 아무도 없어요. 사람이 걸어 다니는 걸 거의 볼 수가 없죠.(웃음)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아요. 산수화가 그려진 시대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자연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니까요.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살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죠. 제가 이곳에 머물며 느낀 감정을 손님들도 얻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오픈하면 관심을 끄겠다고 생각한 것치고 푹 빠져있죠? (웃음)


이후북스테이에서 조금 걸어나오면 보이는 동강 Ⓒ탐방


이후북스테이에는 와이파이, TV가 없습니다. 빠르고 자극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나, 여유를 느끼기 위함이죠. 대신 이후북스테이에는 이후북스의 책들과 LP가 있어요. 이후북스는 서울 망원동과 제주도에 있는 독립책방이기에 익숙하실 수도 있어요. 혜영님과 이후북스 사장님은 친한 친구 사이거든요. 친구가 먼저 책방을 만드니 그곳이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었죠. 자연스럽게 책에서 이어지는 사람들과 책에서 얻는 교훈을 느끼며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좋아하는 친구 옆에 있다 보니 북스테이를 만들게 된 거죠.


처음에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숙소를 예약한다는 게 너무 신기하긴 했어요. 저처럼 ‘자발적 고립’을 좋아하는 분들이 꽤 많더라고요. 이후북스테이에서는 자발적 고립이 되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거든요.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사람도 없으니까요. 이후북스테이의 매력, ‘고립’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1박 2일은 너무 짧아요. 최소 2박 3일은 있어야 좀 쉬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한 번 오셨던 분들은 점점 머무는 기간이 길어져요. 처음에는 1박, 이후에는 2박, 다음에는 2박 3일도 짧다고 3박을 예약하시죠.(웃음) 길게는 20일 정도 머물다 가신 분들도 있어요.


1호점 이후북스테이 Ⓒ탐방
2호점 점숙씨 Ⓒ탐방


해마다 찾아오시는 손님도 있죠. 미국에서 오셨던 부녀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한국 아빠가 미국에 가서 외국인 아이를 입양한 거예요. 그 아이가 아빠가 되었고 성인이 된 딸과 함께 세계 여행을 다닌다고 했죠. 아빠, 할아버지의 고향인 한국으로도 여행을 온 거예요.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많이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물감이랑 스케치북을 가져와서 그림을 그려주고 가셨어요. 2층 다락에 있죠. 그런 추억들이 다 소중해요. 이후북스테이에는 방명록도 있어요. 방문객분들께서 마음을 다해 방명록을 써주시고 가신 것을 보면 보람을 얻고 힐링이 되죠. 일주일에 한 번씩 오면 연애편지 기다리듯 방명록을 제일 먼저 찾아 읽어요. 읽고 나면 감사와 사랑으로 마음이 충만해지죠.


이후북스테이의 2층 다락 Ⓒ탐방



나의영월 : 좀 더 자주, 길게 머물게 되고 영월을 좋아하게 되었죠.


영월에 있으니 자연스레 자연 친화적 삶에 관해서도 관심이 가더라고요. 숙소를 운영하며 더 노력하고 알리고 싶어 친환경 어매니티도 만들었죠. 특히 지방에서 개발사업을 하면 서울과 똑같이 만드는 게 안타까웠어요. 영월에서 자주 목격했죠. 다 베어버리고, 서울인지 영월인지 모르겠다는 게 속상했어요. 너무나 소중한 자연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었는데 뭔가 특별하게 하지는 못하고 있네요.(웃음)


작게나마 시작한 게 ‘나의영월’이에요. 친환경 어메니티의 이름이기도 하고, 친환경을 실천하는 영월 여행 모임이죠. 인스타그램으로 불시에 모집하고 사다리타기로 3~4명이 정해지죠. 서울에 살고 계시는 분이면 서울에서 만나서 모시고 같이 오고, 영월역에서 만나기도 해요. 1박 2일로, 영월에 와서 쓰레기 줍고 일회용품이 많이 안 나오는 소비를 하고, 놀고 먹고 쉬고 가는 거예요.(웃음) 벌써 5기까지 진행했네요.


친환경 어매니티이자 친환경을 실천하는 영월 여행 모임, 나의영월 Ⓒ이후북스테이


큰 영향력을 바라고 활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내가 이런 걸 하면 달라지는 게 있을까 싶고요. 딜레마인 게 참여자분들은 원래 친환경 실천을 잘하는, 제로웨이스트의 철학이 깔려 있으신 분들이에요. 관심이 전혀 없던 사람들이 경험하게 하고 변화를 만들고 싶은데, 아직은 방법을 잘 모르겠어요. 더 재밌는 기획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저는 항상 갈증이 나요. 뭔가 부족한 것 같고요. 제가 서울에 일이 있다 보니 모든 에너지를 여기에 온전히 쏟기가 힘들거든요. 조금씩 구축해가고 있어요.


점차 영월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탐방


여기 아래에 건물을 지어서 엄마와 같이 살 계획을 하고 있어요. 엄마랑 많이 싸워서 살짝 걱정되지만요.(웃음)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언젠가는 시골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다 20년 전쯤 어머니께서 먼저 서울을 떠나 영월에 정착하셨죠. 그땐 이 동네에 사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사람도 많지 않은 산골이라고요. 지금은 완전 역전이 됐죠. 다들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았냐고 하세요.


엄마가 영월에 계시다 보니 저도 영월에 오게 되었죠. 이후북스테이를 하기 전까진 설, 추석같은 명절에만 왔던 것 같아요.(웃음) 서울에서 멀기도 하고, 일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요. 숙소를 만들면서 영월에 좀 더 자주, 길게 머물게 되고 영월을 좋아하게 되었죠. 점차 영월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요. 5도 2촌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지금은 3도 4촌, 이후에는 2도 5촌이 되겠죠. 그렇게 점차 영월에 정착하려고요. 정말 막연하던 귀촌의 꿈이 이후북스테이로 실현될 것 같아요.


정말 막연하던 귀촌의 꿈이 이후북스테이로 실현될 것 같아요. Ⓒ탐방


개구리도 옴 쳐야 뛴다고 하죠. 이후북스테이는 마음껏 움츠릴 수 있는 휴식처 같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이곳을 찾을까 해요. 그때쯤이면 혜영님이 2도 5촌일지, 1도 6촌, 7촌의 생활을 하고 계실지 궁금하네요.


로컬의 삶, 혜영님과의 대화에서 궁금하거나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댓글로 나누어주세요.



탐방은 매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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