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부여 | 김한솔(부여제철소)
탐방은 매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Interview | 부여제철소·부여안다 김한솔님과의 인터뷰
부여에 제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소문이 들렸어요. 탐방의 인스타그램에 한 탐방러님이 댓글로 추천을 해주셨죠. 부여에서 난 못난이 식자재를 사용한다는데, 이름이 ‘부여제철소’랍니다. 이렇게 귀엽고 재치 있는 이름을 지은 분은 어떤 분일까, 어떤 요리가 나올까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그렇게 한솔님을 만났어요.
오늘은 음식과 재료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매번 그렇듯 오늘도 예상을 빗나가네요. 부여에서 정말 재밌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한솔님입니다.
부여가 일조량으로 전국 1, 2위를 한다는 것 아세요? 그만큼 땅도 비옥하고 내륙이다 보니 자연재해에서 굉장히 안전한 곳이죠. 그래서 부여는 주민의 5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 특화 도시예요.
재료가 풍성하니, 음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평소에도 요리하는 걸 참 좋아하거든요. 비록 디스크 때문에 포기했지만, 고등학교 때는 조리과를 꿈꾸던 학생이기도 했고요. 이후에도 요리 강사 활동을 꾸준히 했으니 준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웃음)
메뉴 고민은 재료부터 시작했어요. 부여 10품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부여를 대표하는 농산물 10가지인 거죠. 10품을 늘어놓고 뭘 할 수 있을까 상상했어요. 문득 취나물로 밥을 지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시장에 재료를 사려고 갔는데, 아무리 찾아도 부여 취가 없는 거예요. 농협에도, 마트에도 없었죠. 부여에서 부여 취를 살 수 없다는 게, 참 이상하죠? 양송이도 전국 생산량의 50% 정도가 부여에서 나올 만큼 엄청 유명한데, 부여에서는 구하기가 힘들어요. 대부분 일괄 매입되어 가락시장 등으로 유통된다고 하더라고요. 농민들에게도 참 편리하고 안정적인 수익이 생기는 방식이긴 하지만, 뭔가 정상적이진 않죠.
부여에서 나는 게 부여에서 제일 잘 활용되고 소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제주도에 가면 감귤을 먹듯이요. 제가 그런 역할을 하고 싶었죠. 그렇게 “부여”에서 나는 “제철” 재료들로 퓨전 요리를 하는 부여제철소를 운영하고 있어요. 물론 여기서 파는 게 몇 접시 안 되겠지만요.(웃음)
처음에는 단가를 낮추기 위해, 못난이 재료들을 찾았어요. 한 6개 담아놓고 3천 원씩 하는 양송이가 부담스럽더라고요. 비싼 양송이로 만든 음식을 대체 얼마에 팔아야 할까 싶었죠. 그러다가 <맛남의 광장>을 보게 되었어요. 백종원 씨가 잘 팔리지 않거나 버려지는 식자재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더라고요. 저도 못난이 재료를 활용하면 분명 재료를 더 저렴하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그렇게 농장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역시나 농장에 가니 훨씬 싸더라고요. 못난이 채소는 맛이나 영양 성분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데, 단지 생긴 것 때문에 A급으로 못 나가는 아이들이에요. 특히 버섯 같은 건 못난이로 많이 받아와요. 취나물도 한 상자는 크고 좋은 것들로 받아 오고, 뜯을 때 작은 것들을 걸러내려고 빼놓은 것들은 토핑용으로 한 봉지 받아와요.
재료는 그저 재료라고 생각했는데, 농장에 다니다 보니 재료에 농부님들의 노고가 가득 담겼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러니까 이걸 함부로 할 수가 없더라고요. 정성을 다해 재배한 것으로 요리를 하는 거니 농부님들의 시간이 잘 읽히는 접시를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농부 없이 음식 없다’라는 게 뭔지 확 와닿았죠. 도시 사람에게 재료란 대형 마트에 가면 있는 것인데, 사실 그게 아니었던 거죠. 이걸 몰랐다면 제 업이 다른 사람 밥 한 끼 끓여주는 거밖에 안 될 텐데, 스스로 연결자라는 생각을 하니 일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식당을 하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부여에서 살아갈지도 몰랐고요. 원래 서울에서 커뮤니티, 공간 등을 로컬과 연결하는 일을 했었어요. 신촌에 있는 유휴공간을 셰어하우스로 바꾸고, 청년들의 타운을 만들어서 같이 일하고 밥 먹고 공부하는 청년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었죠. 그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국에 있는 로컬 플레이어, 크리에이터와 연결이 됐어요. 한 번씩 지역으로 ‘탐방’을 가기도 하는데, 부여에도 방문했었죠. 잠깐이었지만 부여가 주는 포근한 느낌이 좋았어요. 부여에서 거리를 조성하는 팀이 있었는데, 그 팀의 활동도 참 재밌게 봤었고요.
코로나가 터지고 일을 쉬고 있을 때였는데, 부여에서 연락이 왔어요. 한 1년 정도만 여기에 와서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했죠. 집도 주고, 차도 쓸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지역에 관심이 있고, 좋은 느낌을 받았던 곳에서 1년 정도 사는 건 괜찮겠다 싶었어요. 코로나 끝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도 되니까, ‘오케이. 1년!’하고 내려온 게 2020년 11월이에요.
내려와 보니, 가게들은 많이 비어있었고, 몇 년 전 경험했던 부여의 모습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니 혼자서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친구들에게 바로 연락을 했어요. “여기 이런 공간이 있는데, 너랑 되게 잘 맞을 것 같고 여기 오면 집도 있어. 나랑 한 1년만 같이 살아볼래?”라고 서너 명을 찔렀고, 2명이 내려왔어요. 지역에서도 일을 할 수 있고 공간에 자기 색깔을 불어넣을 수 있는 예술가들이죠. 사진을 찍는 친구에게는 사진관 자리를, 시와 글을 사랑하고 그림을 그리는 친구에게는 책방 자리를 주어서 1년만 여기서 같이 살아보자고 했죠.
만일 그 친구들이 없었다면 저는 여기 회사에서 맡은 일만 하다가 돌아갔을 것 같아요. 근데 무리가 생기니까 재밌더라고요. 눈이 오면 썰매를 타러 가고,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예전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면서 깔깔깔 웃기도 하고요. 또, 매일 저녁에 모여서 밥을 같이 해 먹고 그러니까 부여가 좋아졌던 것 같아요.
함께 부여에 온 셋에 동네 친구 한 명을 합쳐 총 넷이서 뭉쳐 다녔어요. 맨날 저녁에 밥을 같이 먹고, 때론 술을 마시면서 재밌는 상상들을 계속했어요. “우리 이거 해보자, 저거 해보자” 하고요. 그러다 ‘청년 공동체 활성화 사업’이라는 지원 사업이 뜬 걸 봤어요. 청년들끼리 모여서 활기 있는 활동을 하면 돈을 주겠다는 거였죠. 우리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잡지를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그 잡지 이름이 ‘부여안다’였죠. 부여를 껴안는다는 뜻과 부여를 알아간다는 뜻을 함께 담았어요. 부여안다라는 잡지를 만들면서 부여를 알아가고 또, 품 안에 꼭 담을 수 있길 바랐거든요.
그냥 우리끼리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시작했던 ‘부여안다’가 생각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았어요. 지역이 웅성웅성할 뿐만 아니라 군수님이 찾아오시기도 했죠.(웃음) 이게 이럴 일인가 싶기도 했지만, 새로운 시선으로 지역을 바라보고 우리의 활동을 하는 게 지역에도 필요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관심을 받는 것도 재밌고, 부여가 우리랑 잘 맞는다는 생각도 들었죠. 우리의 역할이 선명해지니까 제 삶도 조금 뚜렷해지는 것 같고요.
잡지의 제목이었던 ‘부여안다’는 자연스럽게 청년 공동체로 성장하였습니다. 청년 공동체라면 무슨 단체인가? 회사인가? 싶을 수 있지만 부여안다는 부여의 젊은이들이 친목 모임에 가깝습니다. 다만, 이들은 소도시에 부족할 수밖에 없는 문화 체험을 스스로 만들죠. 독서 모임을 하고 싶다면, ‘독서 모임 할 사람?’이라고 던지면 됩니다. 어느새 ‘소행성’이라는 부여안다의 아지트도 생겼습니다.
파워 ‘E’, 세 명이 있다 보니 정말 많은 친구가 왔어요. 친구의 친구들이 부여에 방문하는 거죠. 통계를 내보니 1년 동안 한 200명이 왔더라고요.(웃음) 올 때마다 마루에 다 같이 끼여 자니 재밌었지만, 한편으론 불편하더라고요. 게스트하우스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제가 올해 꼭 하고 싶었던 게 ‘부여비트’라는 뮤지컬 활동인데, 뮤지컬을 올리려면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지원을 하러 부여로 내려와야 해요. 먼 데까지 내려와 달라고 하고, 숙소까지 그들에게 잡으라고 하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그 친구들이 머물 수 있는 숙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컸죠. 그렇게 부여안다의 아지트인 ‘소행성’이라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정말 아지트예요. 친구들이 부여에 왔을 때 머물기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부여 청년 공동체인 부여안다의 모임이 열리죠. 최근에는 ‘N달 살이’를 하는 사람들도 찾아오게 됐어요. 그 친구들 덕분에 소행성이라는 공간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카톡방에는 15명이 있어요. 요리사부터 춤추는 직장인, 대장장이, 심리 상담 센터 운영자, 디저트 카페 사장님, 책방 주인까지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죠. 새로운 분이 부여에 오면, 속으로 ‘오케이. 또래~!’라는 생각을 하면서 슬쩍 말을 걸어요. 그렇게 부여안다를 같이 하게 된 친구도 있어요. 다양한 사람이 있는 만큼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죠.
올해 상반기에는 교환일기 프로젝트를 했어요. 6명의 친구가 주제를 가지고 4개월간 릴레이로 일기를 쓰는 거였죠. 마냥 부여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적나라한 일기였어요. ‘나 부여를 떠날까 봐’ 이런 말로 시작해서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느낄 만한 불안과 스스로가 자꾸 작아지는 순간 등을 기록했었죠. 특히나 교환일기를 쓰던 계절이 겨울이었기에 모두의 감정선이 침체해 있었죠. 서로의 일기에 위로의 댓글을 남기기도 했는데, 잔잔한 감동이 있더라고요. 만들고 보니까 청춘이다 싶고요. 치열하지만, 애써서 자기 삶을 일구어 가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고민이어서 아름답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보다 보면 각자의 성장이 눈에 보이기도 하죠.
지금 가장 활발한 활동은 ‘부여비트’ 뮤지컬이에요. 저는 춤추고 노래하는 걸 너무 좋아해요. 댄스 동아리를 오래 할 만큼이요. 대학교 때는 시민 뮤지컬 를 경험한 적도 있어요. 한일 관계가 악화되어 있을 때 한국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이 각자의 나라에서 연습하고, 나라를 한 번씩 오고 가면서 교류하는 한일 교류 뮤지컬이었죠. 대학교 말미부터 졸업 후까지 두 번 정도 배우로 참여했었어요. 제가 참여를 하면서 댄스 동아리를 같이 했던 후배들도 참여하게 되고, 신촌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오게 되면서 ‘네 친구, 내 친구, 우리 모두 친구!’ 하나가 되었죠.(웃음) 다른 사람들과 하나가 되었던 그 무대 위의 감동이 너무 짜릿하고 뜨겁게 남아있어요. 언제가 됐든 꼭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시민 뮤지컬은 춤과 노래를 통해서 스킨십을 하면서 경계를 낮추게 되고, 함께 소통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역에 꼭 필요한 활동이에요. 부여에 있는 동안에만 시도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초부터 지원서를 쓰고 밀어붙였어요. 처음에 부여에 내려오라고 연락한 친구들도 모두 시민 뮤지컬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거든요.(웃음) 또 평상시에 시민 뮤지컬을 또 하고 싶어 했던 친구들을 눈여겨봤다가 의 부여 편인 부여비트에 참여하라고 제안했죠. 여기 오면 교통비도 주고, 숙소도 준다고 하면서 꾀었어요.(웃음) 그렇게 뮤지컬을 함께했던 친구 5명이 매주 주말마다 부여로 와주고 있어요. 또 를 운영하는 단체에서 라이선스부터 음원, 의상, 소품 등을 지원해 주고 있죠.
부여비트의 배우는 30명인데, 14세부터 73세까지 있어요. 농부, 귀촌인, 토박이, 학생. 직업도 다양하죠. 예전에 했을 때보다 더 특별한 마음이 들어요. 작은 지역 안의 다양한 사람들이 조금씩 눈을 맞춰가는 것을 보면 뭉클하거든요. 또 모두가 진심으로 참여해 주세요.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 연습 시간을 엄청나게 기대하고 귀하게 생각하는 게 눈으로 보인 달까요?
고등학생 한 명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 친구는 댄서 지망생이에요. 춤과 노래를 배우고 싶은데 한 번도 기회가 없었다고 해요. 뮤지컬을 연습하는 매 순간 너무 신이 나서 참여를 해요. 그럼 저희가 역시 댄스 지망생은 다르다면서 엄청나게 띄워주죠. 지난주에는 배역 오디션을 했는데, 이 친구가 엄청나게 긴장을 했더라고요. 그래도 자신에게 한껏 취해서 노래를 부르는데, 어찌나 귀엽던지요. 그 친구가 집에 돌아갈 때마다 카풀을 해주시는 참여자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오늘 어땠냐고 물어보면 항상 너무 좋다고 이야기한다고 해요. 너무 뿌듯하죠.
부여안다는 부여에서 함께 하고 싶은 다양한 활동을 편하게 하는 느슨하고 유연한 커뮤니티예요. 각자의 업을 깨고 조직이 된다면 우리가 하는 활동이 일이 되니까 재미가 없어질 것 같더라고요. 사이드 프로젝트가 아니라 사업이 된다면, 수익을 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고 의미가 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무엇보다 외지인이기 때문에 아직은 조심스럽기도 해요. 우리가 정말 여기서 살고 싶고, 여기서 살려면 이런 재밌는 일들이 주변에 있어야 하고, 또래 커뮤니티도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조금씩 천천히 전하고 있는 과정인 것 같아요.
언제나 그랬듯이 앞으로도 계획은 없어요. 내년이 돼봐야 어떤 꿈을 꿀지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요즘 들어서는 생각이 조금 바뀌긴 했어요. 여기 부여에 자리를 잡았고, 부여제철소 보다 부여안다의 일이 더 커지고 있어서 누군가가 부여제철소로 부여에서 지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면, 저는 부여에서 또 다른 일을 벌여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탐방은 11월 말, 부여에 한 번 더 가려합니다. 11월 27일 부여비트를 보기 위해서요. 왠지 가자마자 한솔님이 말해준 댄서 지망생 친구를 한눈에 알아볼 것만 같아요. 마구 솟구칠 내적 친밀감을 잘 숨겨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한솔님은 온 얼굴과 행동, 모든 말속에 행복이 가득한 모습이었어요.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게 이런 모습이겠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달까요? 그래서 탐방에게 부여는 행복이 가득한 곳이 되었답니다. 여러분은 어떤 순간, 어떤 장소에서 가장 행복한가요. 저도 오늘은 누군가에 행복을 전해주는 사람이 되어보려 합니다.
로컬의 삶, 한솔님과의 대화에서 궁금하거나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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