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부여 | 소피
탐방은 매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Interview | 로컬생활자 소피님과의 인터뷰
얼마 전, 탐방 인스타그램에 부여에 대한 사랑을 한 아름 쏟아낸 분이 있었어요. 고향이 부여인가 싶었는데, 부여에서 N달 살이를 하는 로컬생활자라고 하시더라고요. 얼마 전까지는 전주, 그전에는 제주, 거제, 해외 도시에도 살았던 “프로 로컬생활자”였죠. 지금 로컬생활자 소피님은 부여안다의 아지트인 소행성에서 살고 있어요. 여러 지역에서 살아가 보는 일상은 어떠할까요? 왜 소피님은 로컬 생활을 시작하게 된 걸까요?
로컬생활자 소피예요. 부여에 오기 전부터 다양한 지역을 돌아다니며 살아가고 있죠. 코로나 이전에는 외국에서도 N달 살이를 경험했어요. 부다페스트, 헝가리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한인 민박에 연락해서 무작정 찾아가기도 했죠. “제가 가서 일하고, 살아보겠습니다.” 하고 냅다 살아봤어요. 특별한 뜻이 있었다기보다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웃음)
로컬생활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독서 모임에서 읽은 책 덕분이죠.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라는 책이에요. 책에는 로컬 기획자, 로컬 크리에이터 등 로컬 관련 일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했어요. 그들은 하나같이 제가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더군요. 당시에 저는 ‘어떤 직장에 소속이 되고, 어떤 역할을 부여받아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제 고민의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느꼈죠. 보다 주체적으로 살고 싶었고, 고민은 제가 속할 직장을 찾는 것에서 살고 싶은 로컬을 찾아보는 것으로 이어졌어요.
하지만 어떤 곳이 저에게 맞는 로컬인지는 모르잖아요. 본격적으로 취업하기 전에 인턴을 하듯이 다양한 지역에서 살아봄으로써 내가 살만한 곳인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죠. 그렇게 로컬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작년 여름부터 거제도, 제주도, 전주를 거쳐 지금은 부여에 있네요.(웃음)
사실 잘 모르는 지역에 무턱대고 살아보는 건 쉽지 않아요. 숙소를 구하는 일부터 막막하죠. 게다가 저는 빠르게 지역과 사람들을 알아보고 싶었거든요. 이런 욕구를 해결해 준 게 체류 지원 프로그램이었어요. 2020년에는 서울시의 ‘연결의 가능성’ 사업을 통해 전주에서 6개월 살이를 했고, 21년엔 거제도에서 행정안전부의 ‘청년 마을’ 사업을 통해 3개월 살이를 했어요.
제가 경험한 프로그램들은 여러 청년과 함께 생활하면서, 지역에서 다양한 경험을 가져갈 수 있었어요. 독서나 음악 같은 취미부터 지역에서의 다양한 실험,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클래스까지 참 다양해요. 경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지역을 이해하고 지역 공동체로 조금씩 들어갈 수 있달까요? 그렇게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보면 꽤 바빠요. 한 달이 금방 지나가더라고요.
나중엔 조금씩 주도권을 잃는 느낌이 들었어요. 커리큘럼을 따라가다 보니 스스로 어떤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잘 안 하고, 여기 있는 것들을 즐기고만 있는 저를 발견했죠. 지원 프로그램의 장점이자 단점이랄까요? (웃음) 그렇지만, 그곳에서 다른 지역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늘려가고 활동하는 청년들을 보니 나도 도전해 볼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본격적으로 지역살이를 도전하자는 생각으로 제주와 전주로 떠났어요. 쉽지는 않더군요.(웃음)
다시 청년 마을을 알아봤죠. 청년 마을은 보통 8~9월에 2주 살이나 한 달 혹은 두 달 살이 참가자를 모집해요. 시간이 떠서 어디서 머무를까 고민하던 차에 지인이 부여에 있는 청년문화예술공동체인 부여안다와 그들의 아지트인 소행성을 소개해 주었어요. 부여안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니 숙소를 운영한다는 게시물이 딱 하나 있더라고요. 혹시 한 달을 살아도 될지 물어봤죠. 그랬더니 너무 환영한다면서 여기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소개해 주셨고, 연결해 주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또, 우리가 어떤 활동을 하는데 같이 하고 싶다면서, 마을을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안내해 주셨죠. 그때 딱 생각했어요. “여기에서 꽤 오래 살 수 있겠다.”
소행성에 처음 왔을 때만 하더라도 한 달 살이를 생각했어요. 하지만 벌써 석 달이 되었죠. 부여에 이렇게 오래 머물게 된 이유는 제가 원하는 로컬이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이곳저곳, 로컬 생활을 하게 된 이유는 저에게 맞는 지역을 찾기 위함이었잖아요. 지금도 그 조건을 찾아가는 중이지만, 그래도 꼭 필요한 세 가지는 알게 되었죠.
서울에서 로컬살이를 꿈꾸던 때부터 자연환경이 가장 중요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현실을 모르고 감성에 한껏 취했던 거죠. 매일 아침 보는 풍경이 어떠할지만 생각했거든요.(웃음) 그래도 여전히 자연환경은 저한테 중요해요. 서울 같은 대도시와 다른 환경 속에 살고 싶어 떠난 거니까요. 두 번째는 ‘머물고 싶은 동네인가?’예요. 집 주변에 발걸음을 멈추게 할 만한 공간들이 많은 지가 중요하죠. 마지막은 함께 일하고 놀 사람들이에요. 지역에서 살아갈수록 두 번째, 세 번째 조건의 중요성을 더 절실히 느끼는 것 같아요.
부여에 오래 살게 된 이유도 이 세 가지가 충족됐기 때문이에요. 탐방에 추천한 부여제철소나 제가 자주 가는 책방세간처럼 발길을 잡는 곳들이 꽤 있어요. 거기에 제가 지내는 소행성에서 벌어지는 매일매일의 이슈들이 신기해요. 매주 누군가의 손님이 오고, N달 살이 손님이 오기도 하는 소행성 생활이 너무 재밌어요. 또, 부여 청년들은 가만히 있지 않고, ‘오늘 뭐 할 사람~!’ 이런 식으로 계속 작당 모의를 하는 사람들이에요. 덕분에 부여에 있는 동안 놀거리, 일할 거리가 끊임없이 생겨나고, 무엇보다 함께하는 프로젝트들도 많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내게 되는 것 같아요. 대표적인 활동을 하나 꼽자면, 부여안다에서 운영하는 시민 뮤지컬 ‘부여비트’에 배우로 참여하게 됐어요. 장기 프로그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여에서의 거주 기간이 길어졌죠.
무엇보다 부여안다의 존재 자체가 큰 영감이 되었어요. 그들은 부여에서의 경험을 디자인해 주거든요. 나에게 맞는 활동을 추천해 주고,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할 수 있게 최대한 도와주죠. 청년 마을도, 돈을 버는 조직도 아닌데 왜 이렇게 부여와 청년들에게 진심인지 궁금해졌어요. 저도 언젠가 부여안다 같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싶어요. 저의 미래에 대한 힌트를 부여에서 얻은 것 같아요.
소피님은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으로 자신의 일상, 로컬 생활을 나누고 있어요. 자신만의 기록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느새, 로컬살이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소중하고 고마운 경험이자 정보가 되었죠.
로컬살이의 제 경험을 ‘로컬생활자 소피’라는 캐릭터로 전달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로컬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부여라는 곳이 있대!’ 정도가 아니라, 부여에서도 살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친구가 여행 간 사진을 올리면 거긴 어딘지 궁금해하잖아요. 제 주변 사람들이라도 먼저, 로컬 생활과 여러 지역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어요.
확실히 직접 와 본 사람들의 반응이 큰 것 같아요. 친구들이 제가 있는 로컬에 여행을 오면 “서울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살아볼 수 있는 건데 왜 내가 생각을 못 했지?”라는 말을 많이 해요. 또, 언젠가 지역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제 게시물을 통해서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반응을 하기도 해요. 강한 책임감이 생겼죠. 지역살이에 대해 좀 더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고요.
다음에 생활할 로컬을 계속 탐색하고 있어요. 부여 바로 옆에 있는 공주도 눈여겨보고 있죠. 공주는 여행도 몇 번 가보고 프로그램도 참여해 봤는데, 이주해서 새롭게 시작한 브랜드나 상인분들이 많더라고요.
춘천도 궁금해요. 작년에 지역 활동가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지역 만족도 조사를 함께 진행했는데 춘천이 눈에 띄게 높더라고요. 그만큼 청년이 활동하고 살아가기 좋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로컬생활자로 살아가면서부터 지역살이를 하고있는 사람들과의 커뮤니티를 항상 꿈꿨어요. 지역에 대한 정보나 지역살이 현실 고증 경험담을 나누고, 서로의 고충을 덜어낼 수 있도록 연대하는 커뮤니티를 말이죠. 그래서 <탐방>이 너무 좋아요. 혼자서 지역살이를 고군분투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알아가는 것 같아서요. 여기서 더 확장해서 전국의 청년 마을과 체류형 지원 프로그램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청년 마을이 이렇게 늘어가는 것을 보면 분명 저처럼 청년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데, 실제 경험담을 찾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렇지만 최근에 본격적으로 지역살이 커뮤니티를 기획하면서, 다양한 청년 마을 참가자들을 만나고 있어요. 이것도 완성되면 제일 먼저 탐방에 소식을 전할게요. 언젠가는 지역살이를 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모여서 대화할 수 있는 장도 만들어지겠죠? 저도 그때까지 로컬 생활을 지속하면서 다양한 로컬 경험을 쌓아둘게요.
나에게 딱 맞는 로컬을 찾고 있다는 소피님. 소피님이 정착할 마지막 탐방지는 어디일지 궁금합니다. 소피님의 조건인 자연환경, 머물 장소, 사람이 모두 갖춰진 곳일까요? 아니면 그동안 또 다른 조건이 추가되었을까요?
탐방러분들은 내가 살고 싶은 지역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자라왔고, 지금 사는 곳이 당연하게 앞으로도 살아갈 곳이라 생각하나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 이유가 ‘나’라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준인가요?
어쩌면 우리는 익숙함이나 경제 논리에 갇혀, 가장 중요한 고민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어요. 나만의 기준을 정하는 일, 내가 살아갈 장소를 스스로 선택하는 일. 그것을 위해 과감히 로컬 탐방을 선택한 소피님. 그래서 한편으로는 소피님의 여정이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로컬의 삶, 소피님과의 대화에서 궁금하거나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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