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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어바웃 Nov 02. 2022

고급스러운 시장 과자를 만들고 있어요.

경기도 부천 | 하지원(알트그레인)

탐방은 매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tambang.kr / @tambang.kr



Interview | 알트그레인 하지원님과의 인터뷰


전통 과자 좋아하세요? 사실, 저는 약과 마니아예요. 편의점에 갈 때 꼭 약과를 골라서 친구들에게 할매라고 놀림 받곤 하죠. 하지만 이 ‘할매 입맛’이 요즘 인기랍니다. 인스타그램에 #약과를 검색하면 6만 3천 개 이상의 게시물이 있고, 온라인 유통업계에서는 전통 과자 카테고리가 매년 100% 이상 증가하고 있다고 해요. 약과의 엄청난 인기로, 유명한 집에서 구매하기 위해 약게팅(약과+티켓팅)에 도전하는 분도 늘어나고 있죠.


오늘의 주인공인 하지원님은 그런 할매 입맛을 저격하는 디저트를 만들고 있어요. 곡물로 만드는 디저트, ‘알트그레인’이죠. 알트그레인은 차를 즐기는 분들의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등장해요. 그래서인지, 저에게는 고급스럽고 어려운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지원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 

멈춰 선 곳은 부천의 동네 한복판이었어요. 아파트 단지와 전통시장, 작은 가게들이 있는 곳, 정말 익숙한 동네의 모습이었거든요. 알트 그레인에 대한 편견이 한 번에 무너졌죠. 되려 친근하고 포근한 마음이 가득 찼어요. 이 길에서 스며들듯 자리한 알트그레인을 운영하는 지원님이 궁금해졌습니다.


소소한 동네에 스며들듯 자리한 알트그레인 Ⓒ탐방



버터와 설탕이 정말 많이 들어가더라고요.


대학병원 수술실의 간호사였어요. 베이킹과 너무 관련이 없어서 놀라셨죠? (웃음) 저는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휴무 날마다 카페에 가서 디저트를 먹었어요. 술, 담배를 안 하니까 달콤한 걸로 스트레스를 해소했던 거죠. 여행을 가도 디저트를 꼭 찾아다녔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만의 디저트 가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죠.


주변 사람들의 만류가 있었지만, 결국 퇴사하고 베이킹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좋아하는 파운드케이크, 마카롱에 버터와 설탕이 많이 들어간다는 걸 알게 되었죠. 알고 나니 전처럼 디저트를 많이 먹기 무서워졌어요. 정말 이렇게 만들 수밖에 없는 걸까 고민하면서 비건 베이킹, 쌀 베이킹을 찾아 배웠죠. 그러면서 저만의 선을 찾아갔던 것 같아요.


당시에 경험을 쌓을 겸 카페에서 일했어요. 한국적인 재료들을 이용하는 찻집이었는데, 세상에 다양한 차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차를 통해서 곡식에도 관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현미작두콩차를 보면서, ‘이런 것들을 디저트 재료로 사용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때 탄생했던 게 지금도 판매하는 초코보리쿠키, 곡식그래놀라예요.


일반베이킹에 곡식이라는 재료를 접목해서 당도를 낮추고 곡물의 고소함을 더했어요. 그렇게 틈틈이 저만의 곡물 디저트 레시피를 만들고 있었는데, 창업 준비자가 카페를 직접 운영해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더라고요. 사당 근처에 위치한 루아르커피바(소설; 오일장)라는 곳이었어요. 그곳에서 처음 돈을 받고 판매해보았어요. 한 3개월 정도 운영했죠. 생각보다 기간이 꽤 길죠?(웃음) 바짝 해서는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본인만의 선을 찾으려고 노력했다는 지원님 Ⓒ탐방



고객들에게 궁금한 게 많았던 것 같아요. ‘매주 다른 디저트’라는 이름으로 매주 신메뉴를 선보이고 반응을 살폈어요. 당시에 가장 인기 있었던 메뉴는 초코보리쿠키였죠. 쿠키 이름이 특이하니까 손님들이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초코보리쿠키를 맛보고 싶어서 카페에 찾아왔다는 손님들도 있었어요. (웃음)


특히 초코보리쿠키는 커피와 잘 어울린다는 평이 많았는데, 한 카페 사장님께서 쿠키를 먹고 ‘고급스러운 시장 과자’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이 제게 인사이트가 되었죠. 막연히 나만의 디저트 가게를 갖고 싶던 제가 ‘고급스러운 시장 과자’라는 해답을 찾았던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해서 요즘 사람들이 시장에서 파는 과자, 떡을 좋아하지만, 누군가에게 선물하기엔 촌스럽고 식상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잖아요. 거기에 제 역할이 있었던 거죠. ‘시장에서 본 것처럼 익숙하지만 조금 다른.’ 손님들의 피드백 덕분에 알트그레인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3개월간 운영하면서 카페의 수익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알게 되었어요. 현실을 확인했던 거죠. 게다가 당시는 코로나가 터져서 카페가 참 힘든 시기였거든요. 저는 임대료가 저렴해서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때 다른 사장님들과 대화를 하면서 가게를 운영한다는 게 쉽지는 않겠다는 것을 느꼈어요. 이 정도의 수익성을 내려면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달까요? 그렇게 알트그레인을 만든 지 2년이 되었네요.


따뜻한 느낌을 주는 알트그레인의 오프라인 공간 Ⓒ탐방



이렇게 무작정 연락을 드리면 좋아해 주실까?


루아르커피바에서의 일이 끝난 후, 그곳에서 만난 브랜드들과 협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알트그레인과 잘 어울릴 것 같거나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면,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렸어요. ‘이렇게 무작정 연락을 드리면 좋아해 주실까?’라는 고민을 했는데, 다들 따뜻하게 봐주시더라고요.


보통 찻집이나 커피 브루잉(brewing) 브랜드와 협업을 했었는데, 가장 재밌었던 건 맥파이앤타이거와의 팝업이에요. 맥파이앤타이거 신사티룸에서 디저트랑 음료를 맡아서 해보라는 제안을 주셨거든요. 그동안은 방문자가 일정하지 못해 알트그레인 가게에서 시도해 보지 못했던 케이크와 같은 다채로운 디저트를 선보일 좋은 기회였어요. 신이 나서 매주 다른 디저트를 또 한 번 선보였죠. 쑥 인절미 티라미수 케이크 등 보여드리고 싶었던 메뉴, 새로 개발한 메뉴들을 다양하게 시도했어요. 확실히 팬층이 많은 브랜드다 보니 손님들의 반응이 확실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또, 협업하는 브랜드의 대표님들한테서도 많이 배워요. 매주 다른 디저트 역시, 맥파이앤타이거와 함께 기획하고 테마를 잡아서 진행했죠. 그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브랜드나 메뉴를 소개하는 방식들을 제안해 주셨는데 참 많이 배웠어요.


알트그레인과 맥파이앤타이거가 함께 선보인 ‘곡물 디저트 페어링 코스’ Ⓒ알트그레인



농가와의 협업도 시도했죠. 곡물 디저트를 시작한 것도 차 덕분이니, 알트그레인 선물 세트에 차를 꼭 넣고 싶었거든요. 창업하기 전부터 즐겨 마셨고, 알트그레인과 잘 어울리는 차를 판매하고 계시는 지리산의 ‘귀농이야기’ 대표님께 직접 연락을 드렸어요. 정말 떨렸는데, 흔쾌히 알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지금까지 선물 세트에 포함하고 있고, 매장에서도 차를 함께 내어드리고 있어요.


여러 번의 협업으로 느끼는 건, 지레짐작하고 포기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앞으로도 협업은 계속하려고 해요. 알트그레인과 제가 나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배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메뉴, 앙버터찹쌀과즐 Ⓒ탐방



시장 앞 디저트 가게로 놀러 오세요.


알트그레인은 얼터네이티브 그레인(alternative grain), 즉 대안 곡물이라는 뜻이에요. 곡물을 밥과 떡과 같이 주식으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조금 다르게 곡물을 디저트, 차, 또는 다과로 해석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루아르커피바에서의 일이 끝나고 한두 달 정도 쉬고 있었어요. 어느 날, 아이디어스에서 입점해보시는 게 어떠냐는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런데 입점을 하기 위해서는 정식 사업장이 있어야 했죠. 그것을 계기로 생각보다 빨리 이곳, 부천에 가게를 열게 되었어요.


문을 열었을 때는 코로나가 가장 심했었어요. 가게 안에서 취식이 안 되던 시기라 암담했는데, 다행히 아이디어스를 통해서 주문이 많이 들어왔었죠. 그래서 오프라인 공간은 처음 6개월 정도는 택배 작업장이 되었답니다.(웃음)


특히 답례품 주문이 참 많았어요. 당시에 코로나로 결혼식장에서도 식사를 못 했잖아요. 보통 답례품 하면 떡을 생각하는데, 떡은 오래 보관이 어렵잖아요. 떡을 파운드케이크 레시피에 접목한 게 찹쌀구움과자예요. 어른도 아이도,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디저트이자 선물로도 손색이 없는 고급스러운 시장 과자이니, 답례품으로 딱 맞았던 거죠.


회식 대신 디저트를 선물하는 회사도 많아서 택배 주문이 정말 많았어요. 그렇게 6개월을 버텼죠. 어느 날, 혼자서 택배를 포장하고 있으니 적적하더라고요. 사실 원래 꿈은 카페를 운영하는 거였는데,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공간에 손님들이 와서 디저트를 드시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작업장을 정리하고 공간을 꾸미기 시작했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알트그레인 Ⓒ탐방



이제 2년 딱 됐는데, 아직도 가게에 오시는 분은 많지 않아요.(웃음) 답례품을 픽업하러 오는 김에 조금 먹고 가시는 느낌이죠. 그래도 작고 아담한 공간에 와주시면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가끔 할머니를 모시고 오시는 분들이 있어요. 할머니께서 좋아하실만하다는 생각으로 함께 오신 것 같은데,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요. 할머니와 내가 함께 좋아할 수 있는 디저트라는 거잖아요. 비슷한 결로 외국인을 데려오신 분도 계셨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디저트를 즐기는 모습이 좋았어요. 고급스러운 시장 과자에 맞게 잘 가고 있다는 확인을 받는 것 같달까요?


알트그레인에서는 장을 보고 가는 할머니들이 자주 보입니다. 창가에 앉아 멍하니 사람구경을 하는 것도 참 재밌네요. 시장 앞 디저트 가게. 익숙하지만 다른. 지원님이 바라는 알트그레인의 모습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한적한 마을에 위치한 공간 Ⓒ탐방



마을 자체가 시끄럽지 않고 한적해서 좋아요. 오랫동안 다닌 교회가 여기에 있어서 제가 자주 돌아다니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던 동네죠. 익숙한 곳에 공간을 열고 싶더라고요. 무엇보다 친구들과 놀러 다닐 때면 마땅한 카페가 없었어요. 알트그레인이 이 동네에 갈만한 카페가 되면 좋겠다 싶었죠.


아직까진 제가 동네 덕을 크게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바로 앞에 시장 보셨어요?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 때도 걱정이 없어요. 언제든지 재료를 공수할 수 있죠. 평소에도 한신시장과 상상시장에서 장을 자주 봐요. 찹쌀가루는 떡집에서 받아오고 과즐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시장에서 필요할 때마다 구매하고요. 자주 가는 가게 사장님은 저희 인스타그램도 보시고, 갈 때마다 응원해 주세요.


아직 동네 분들은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걸 아직 잘 모르시지만, 많이 찾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오프라인 공간에서만 판매하는 메뉴도 있거든요. 앙버터 과즐이죠. 시장에서 파는 맛있는 과즐을 젊은 분들께 소개하고 싶었죠. 그래서 과즐을 이용해 앙버터를 만들었는데 드셔보신 분들의 반응이 좋더라고요. 동네에서 잠깐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시장 앞 디저트 가게로 놀러 오셨으면 좋겠어요. (웃음)


곡물디저트를 만들고 있는 지원님 Ⓒ탐방



지원님은 또 새로운 곡물 디저트 레시피를 만들고 있습니다. 옥수수와 현미로 만든 곡식그래놀라죠. 아직도 시도하고 싶은 곡물이 너무 많다는 지원님. 완성된 그래놀라를 먹어보러 다시 부천으로 가봐야겠습니다.


로컬의 삶, 지원님과의 대화에서 궁금하거나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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