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 이가영(서울가드닝클럽)
탐방은 매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Interview | 서울가드닝클럽 이가영님과의 인터뷰
어떤 집에서 살고 싶나요? 저는 어릴 적부터 정원이 딸린 집을 꿈꿨어요. 알록달록한 꽃과 식물을 키우는 게 로망이었죠. 하지만 서울에서 정원을 갖기란 참 어려워요. 방 한편 작은 화분으로 정원의 욕망을 해소할 뿐이죠.
그런데 서울 방방곡곡 정원을 만드는 분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서울가드닝클럽의 가영님이에요. 제 로망이 실현될 수도 있겠는데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오늘의 주인공 가영님을 만났어요.
광고 기획자로 꽤 오래 직장생활을 했어요.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삶이었죠. 그러다 문득 내 주변 환경에 대해 잘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좀 생뚱맞지만, 도시에서의 일상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느낀 것 같아요. 그렇게 무작정 가드닝(gardening : 정원을 가꾸고 돌보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죠. 자연을 탐구하고 싶었거든요.
처음에는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공부했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가드닝을 교육하는 곳이 많지 않았거든요. 하다못해 시공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죠.(웃음) 그렇게 1년 동안 가드닝을 배웠는데 좀처럼 맥이 잡히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원예가 발달한 일본으로 일종의 비즈니스 트립을 떠났죠. 일본에 가보니, 가드닝은 자연환경의 의미를 넘어선 개념이더군요. 도시적이고 커뮤니티를 만드는 행위였죠. 세계를 다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분야랄까요? 그때 꿈이 생겼던 것 같아요. 정원이라는 좁은 공간이 아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요. 그렇게 대학원에 진학해서 본격적으로 조경을 공부했죠.
우연히 공간이 하나 생겼어요. 정원을 꾸밀 수 있는 작은 옥탑방이었죠. 공간을 그냥 놀리기도 아깝고 그동안 배웠던 가드닝을 실제로 해보고도 싶었어요. 저층 빌라들이 모여있는 마을이었는데, 이 동네에서 정원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과 공유하는 정원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나름대로 런칭한다며 어설프게 로고도 만들고 인스타그램 계정도 만들었어요. 지금 다시 보면 민망할 정도지만요(웃음)
‘누가 와줄까? 아직은 초보인데 어떡하지?’하면서 걱정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회원이 되겠다며 찾아오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게 서울가드닝클럽의 시작이죠. 아직도 당시 회원님들은 저한테 “회장님~”하고 부르세요. 정말 말 그대로 ‘클럽’이었죠.
정원 문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도시에서 개인이 정원을 가지는 건 어렵잖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자연이 있는 공간에서 사는 걸 원하죠. 그래서 정원이 있는 사무실이나 자연을 학습할 수 있는 공간처럼 도시 안에서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일상의 공간을 만들고 있어요. 그린 라이프스타일 디벨로퍼랄까요?(웃음)
서울가드닝클럽은 올해부터 공유정원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옥탑방에서 시작했던 서울가드닝클럽의 확장판이랄까요? 도심 속 유휴공간을 정원으로 개발해 아파트나 원룸에 사는 사람들도 나만의 정원 라이프를 누릴 수 있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이자 장소가 바로 공유정원인 거죠.
작년쯤부터 공유정원을 본격적으로 사업화하는 계획을 세웠어요. 정말 많은 건축주, 기업들과 미팅도 많이 했죠. 하지만 막상 실현되지는 못했어요. 아직 구현되지 않은 모델을 믿고 함께 도전하기란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러다 처음으로 ‘해보자’는 답변을 받았어요. 바로, 1호 공유정원인 상도동 핸드픽트 호텔 옥상이죠.
핸드픽트 호텔 옥상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 공간이었어요. 그곳을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공유정원으로 바꾸는 일부터 시작했죠. 호텔에서 무상으로 공간을 제공한 이유도 서울가드닝클럽이 들어옴으로써 투숙객이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 더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죠. 호텔의 옥상은 흙과 식물이 있는 정원,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 가드닝 장비가 마련된 실내 작업실 등의 다채로운 1호 공유정원으로 재탄생했답니다.
사람들은 왜 정원을 가지고 싶어 할까요? 단순히 예쁜 식물을 모아 놓기 위한 것은 아닐 거예요.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원하는 거죠. 정원을 기반으로 놀고 먹고 마시고 때로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활동을요. 또 정원을 일종의 아웃도어 액티비티 인프라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공유정원은 아름다운 옥상정원보다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공유정원은 말 그대로 함께 사용하는 정원입니다. 핵심은 바로 공유할 사람들, 크루이죠. 서울가드닝클럽은 지난 가을, 1호 공유정원의 1호 크루들을 모집했습니다.
공유정원은 계절 단위로 진행되는 멤버십 프로그램이에요. 한 계절 동안 정원을 함께 공유하면서 가드닝과 정원 생활을 겪어보는 거죠. 흙을 만드는 것부터 식물 심기, 관리, 수확까지 전 과정을 함께 한답니다. 때로는 벌이나 제로 웨이스트 같은 도시 생태계에 대한 문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요. 식물이나 정원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활동과 인접된 문화에까지 관심사를 넓혀가는 거죠.
크루들이 가장 좋아하는 활동은 무 뽑기예요. 저희가 몇 주 동안 열심히 교육하지만 무를 뽑을 때는 완전히 웃음꽃이 피죠. 의외인가요?(웃음) 생각해보면 도시에서 수확의 기쁨을 겪기는 쉽지 않아요. 바질이나 토마토 정도는 키울 수 있지만 뿌리채소는 느낌이 다르죠. 그래서 무 뽑기로 성취감과 자기효능감을 크게 느끼시더라고요.(웃음)
또 도시 사람들은 뿌리채소의 본체, 뿌리만 아는 경우가 많아요. 잎사귀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자라나는지는 본 사람이 의외로 없더군요. 당근 잎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세요?(웃음) 꽤 예쁘거든요. 그걸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에서 엄청나게 큰 만족을 느끼시죠. 자연과 연결됨을 느끼고,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식물을 늘 죽여서 식물 키우기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이 한 계절 동안 작물을 키우고 수확하는 경험을 하는 거죠. 그렇게 수확한 작물로 만든 음식 사진을 저희에게 보내주세요. 크루들의 일상에도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 좋았어요.
공유정원에 오시는 분들은 정말 다양해요. 그중 절반 정도는 공간과 관련된 일을 하세요. 건축가부터 카페나 주택 등 나만의 공간 오픈을 앞둔 분, 귀촌을 준비하는 분들이죠. 또 절반은 가드닝과 친환경 라이프 스타일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이었어요. 물론 친구에게 끌려온 사람도 있었죠.(웃음) 오시는 지역도 다 달랐어요. 동네 주민부터 용인, 안산 등 멀리서 오시는 분들까지 정말 다양했죠. 하지만 신기하게 출석률이 높았어요. 빠지는 사람이 거의 없었죠. 가을 내내 매주 토요일마다 오시는 게 힘드실 텐데도 빠지지 않는 게 되게 신기했어요.
‘술 취한 가드너’는 생각 외로 반응이 좋았어요. 가을 동안 가꾼 허브들을 수확해 뱅쇼, 칵테일, 허브스프레드, 샐러드를 만들고 네트워크 파티를 하는 프로그램이었죠. 그전까지는 크루들이 자신의 가드닝에 몰두하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인 줄 알았어요. 꽤 조용히 수업에 집중하셨거든요.(웃음) 지레짐작해서 사람들과 관계 맺는 걸 피곤해하실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저부터 사적인 이야기를 묻는 것을 조심했고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웃음) 돌아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공유 정원을 하면서 느낀 점부터 자신의 인생 이야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죠. ‘이런 사람들이었어?’라고 생각할 정도로 다들 멋지고 매력적이었어요. 라이프 스타일에 관해서 여러 다층적인 생각과 경험이 있는 분들이었죠.
다들 술 취한 가드너를 왜 더 빨리하지 않았냐고 하시더라고요. 다른 크루들이 식물을 어떻게 키우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대화를 더 나누지 못해 아쉽다고요. 자신을 드러내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죠. 대개 커뮤니티를 목적으로 공유 정원에 오지는 않아요. 그런데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에 대한 재미를 느끼시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가을 내내 토요일 아침마다 가드닝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보통의 사람들일 수가 없는 것 같긴 해요.(웃음)
‘내 생각과 일상을 바꾼 경험’으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저처럼 전격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삶에 작은 변화가 있기를 바라죠. 그래서 자신의 주거 환경을 바꾸기로 결심했다는 후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내년에 집 계약이 끝나는데 다음번에는 베란다 있는 집으로 이사해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조그마한 베란다나 방치된 옥상을 꾸며보겠다는 분도 있었고요. 공유 정원을 통해 나의 주변 환경에 대해 인식하고 바꿔보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게 정말 좋았어요.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도시에도 정원이 있는 공간에 대한 수요가 생기는 거잖아요. 그래야 분양만을 위한 아파트나 밟지도 못하는 조경을 해놓고 조경 특화라고 광고하는 아파트가 안 나오겠죠. 전 서울가드닝클럽이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갖는 것도 기대하고 있어요.(웃음)
한 시즌만 운영했지만 여러 제안이 들어오고 있어요. 도심에 공유 정원을 만들어보겠다고 생각하는 주체들이 하나둘 생기는 거죠. 저희가 도시 곳곳에 정원을 만드는 것보다 저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정원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구마다 공유 정원을 만드는 것. 그것이 제 목표예요. 구마다 하나씩 생기면 일상 생활권에 자신이 가꿀 수 있는 정원이 적어도 하나씩은 있는 거니까요. 내 정원이라는 마음이 들려면 가볍게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도 그만큼 좀 더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테고요. 곧 2호 공유정원이 오픈하니 이 속도면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
다음에는 ‘겨울 정원’이라는 테마로 운영할 예정이에요. 정원 라이프에서 겨울은 꼭 필요하거든요. 우리나라는 겨울을 겪을 수밖에 없고요. 추워서 조금 망설여지긴 했지만, 겨울에도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다짐했죠. 겨울에만 나타나는 색감의 가지와 그라스(grass) 종류가 있어요. 파종해 놓고 추위를 겪어야 하는 식물도 있죠. 그것들로 정원을 꾸려나갈 생각이에요. 또 정원에서 고구마를 구워 먹고 뱅쇼를 끓여 먹을 수도 있겠죠?(웃음) 가을 시즌에 하셨던 분들이 겨울 시즌에는 또 다른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요. 크루들이 한 계절을 연속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에 큰 가치를 두더라고요. 다음 계절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하시고요. 모두는 어렵겠지만 몇 분 정도는 1년 단위로 정원을 경험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서울가드닝클럽의 가영님 Ⓒ탐방
마지막으로 흙을 만졌던 때가 언제인가요? 저는 쉽게 떠오르지 않네요. 사실 우리 주변에서 흙을 보기도 어려워진 것 같아요. 어렸을 적만 해도 흙과 모래로 채워져 있던 놀이터가 지금은 우레탄 포장이잖아요. 안전과 편리함이 흙이 주는 기쁨과 배움을 이겼달까요? 그렇기에 도시 한 가운데에서 정원을 가꾸는 서울가드닝클럽 크루들이 더 부러웠어요. 구마다 공유정원을 만들고 싶다는 가영님의 목표가 얼른 이루어지길 응원해야겠어요.
흙을 만진다는 건 ‘자연과 나’를 넘어 ‘우리’를 만드는 일이기도 해요. 서울가드닝클럽 크루들이 커뮤니티를 목적으로 공유정원에 오지는 않았지만, 어느새 함께 소통하는 공동체가 되었던 것처럼요. 우리가 로컬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따뜻한 커뮤니티에 속한 안정감이 아니겠어요? 하지만 모두가 로컬로 당장 떠날 수는 없잖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서도 로컬이 스며들 순 없을까요?
탐방은 공유정원처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커뮤니티가 더 많이 생기길 바랍니다. 그런 바람으로 12월, 도시 안에서 따스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는 탐방러들을 만납니다. 분명, 여러분도 함께하고 싶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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