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지니는 메이저에게 최근 새로 출시된 빼빼로를 선물 받았다. 메이저도 누군가에게 받은 거였는데 먹지 않아 지니에게 준 것이었다. 지니는 그 빼빼로를 가방에 넣어두었다. 그런데 5교시 마쳤을 때, 지니는 빼빼로가 없어졌다며 주변을 찾아다녔다. 지니 옆에 있던 친구들이 같이 찾아주기도 했지만 빼빼로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물론 지니는 평소처럼 가방을 대충 잠궈두었거나 열어두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교실에서 가방 안에 있는 간식을 가져간 일은 없었는데. 설마. 나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6교시 수업이 마칠 때쯤 청소를 한다고 어수선할 때, 누군가 소리쳤다. 선생님, 로렌 가방에 빼빼로가 있어요! 반 아이들은 청소를 멈추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로렌은 전학온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아이였다. 로렌의 열린 가방사이로 빼빼로가 보였던 것이다. 내 마음속은 여러가지 생각들로 소용돌이 쳤다. 전학 온 아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계속 물건이 없어지는 일이 생기면 어쩌지? 마칠 시간도 다 되었는데 이를 어떻게 해결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빼빼로를 들고 오는 로렌과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지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로렌은 아침에 학교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샀다고 했다. 지니는 자기 꺼와 똑같은 빼빼로라고 했다.
아. 이럴 어쩌나.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까? 그 순간, 반 아이들 표정을 살폈다. 전학 온 로렌이 장난꾸러기라 로렌에게 불만이 있던 아이들은 그럴줄 알았어, 하는 표정으로 내 쪽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지니편이 많았다. 모두 로렌이 지니 것을 가져갔다고 믿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로렌이 아니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다짜고짜 로렌이라고 판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나는 지니에게 물었다.
지니야, 로렌이 가져간 걸 본 사람이 있니?
지니는 아니요, 하고 말하곤 메이저가 처음 줄 때 상자 어느 한 쪽이 찌그러져 있었는데 그 부분이 똑같다는 게 제꺼라는 증거예요, 하고 답했다.
나는 또 물었다. 그렇다면 반대편 찌그러진 부분도 처음부터 있었니?
지니는 그건 로렌이 급하게 넣다가 찌그러뜨렸겠죠, 하고 답했다. 빼빼로 상자는 지니가 잃어버렸을 때와 똑같은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그럼 목격자도 없고 상자의 찌그러진 형태도 다른데 같은 빼빼로라는 것만으로 지니 것이라고 단정지을 순 없어, 하고 말했다.
지니는 화가 나서 교실 밖을 나가버렸다. 아직 수업 종이 치기 전이었다. 몇몇 아이들은 데리러 갔다. 나는 큰소리로 말했다. 수업 전에 말없이 교실 밖을 나가는 건 허락없는 행동이어서 인정되지 않아. 데리러 가는 친구들도 내게 허락받고 나가야한다! 결국 지니는 다시 돌아왔고 울먹이는 표정이었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지니에게 다른 간식이라도 주겠다고 해도 지니는 고개를 저였다. 그렇게 대부분의 아이들이 로렌이 가져갔을거라고 믿는 상황에서 수업이 마쳤고 헤어졌다. 수업이 마칠 때쯤 핸리가 내게 와서 점심시간에 지니가 로렌에게 심한 욕을 했다고 일러주었다. 나는 헨리의 말을 듣고 혹시 이런 일 때문에 로렌이 지니 것을 가져갔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사실, 나도 로렌이 가져갔을 것이라고 믿었다. 상자의 똑같은 부분이 찌그러진 빼빼로가 흔히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로렌을 보내주었다. 빼빼로와 함께. 아직 로렌이 반 아이들과 많이 친해지지 않은 것 같았기에 로렌이 일방적으로 몰리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미 지니편은 많으니까. 그리고 가져가지 않았다는 로렌을 무작정 몰아붙일 수도 없었다. 물론 로렌이 진짜 가져갔다면 로렌도 그 빼빼로의 맛이 달콤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다. 지니의 표정도, 반아이들 표정도, 로렌의 표정도 다시 기운을 차려 좋아보였다. 나만 계속 고민했나, 하는 억울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이들은 금세 까먹은 듯 했다. 하지만 월요일의 일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나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만든 영화 한 편을 보여주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Zp91Uq1WHc <교실도난사건>
7분짜리 영화 내용 중에는 기분 나쁘게 말한 친구의 빼빼로를 가져가는 장면도 있었다. 아이들은 그 장면에서 모두 크게 웃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과연 누가 교실 도난 사건의 주인공일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교실 친구들의 물건을 가져간 학생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범생 여자아이였다. 영화 내용 중에 선생님의 주관 하에 반 아이들이 물건을 가져간 아이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붙이는 장면이 나왔다. 사실, 나 또한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런 거였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앞으로 그런 일 없도록 하자. 너를 믿는다.
실수였다면 다시 우리에게 용기를 내줬으면 좋겠어, 이 내용도 좋았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물건을 훔친 주인공이 성장일기장을 덮었다. 영화에서도 친구들이 물건을 가져간 아이를 확인하지 않은 채 끝났다. 영화를 다 본 반아이들은 한번 유쾌하게 웃고 더이상 빼빼로에 대해 묻지 않았다. 지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우리반 아이들이 영화를 보고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해할 정도의 성숙한 아이들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틀이 지난 뒤, 로렌과 잠시 얘기할 시간이 있었다. 나는 로렌에게 선생님만 알테니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어? 하고 물었다. 동네 편의점에 가봤더니 그 빼빼로는 팔지 않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로렌은 잠시 망설이더니 빼빼로는 학교오는 길에 주웠다는 말을 했다가 곧 말을 바꾸어 1층 신발장에서 주웠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은 지니가 자꾸 몰아붙여서 편의점에서 샀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말했다. 나는 이것 또한 거짓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더이상 캐묻는 것도 의미가 없어서 묻지 않았다. 대신 학교 안에서 물건을 주우면 교무실 분실물 센터에 갖다줘야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나는 로렌을 믿는다고 말해주었다. 로렌은 대신 지니가 자꾸 자신을 의심해서 다른 과자를 하나 가져왔다고 했다. 나는 로렌에게 지니에게 꼭 전해주라는 말을 했다. 우리반의 빼빼로 도난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도난사건이 간혹 일어난다. 그럴 때마다 교사는 참 난감하다. 물건을 잃어버린 아이도, 가져간 아이도 다 상처받을 수 있다. 둘다 상처받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간혹 잘못하면 학부모님들의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어 조심스러울 때가 많다. 여하튼 학기말,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해프닝 하나가 교실을 들썩이고 지나갔다. 나는 항상 선택의 순간에서 현명하고 지혜롭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