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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밤 Feb 10. 2022

혼자노는기록 #29 별보러가기




혼자노는기록 #29 별보러가기

2월이다. 겨울이 지나간다. 

겨울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는데 이 겨울의 끝자락에 기다리던 무언가는 나에게 도착했을까? 

나는 한해의 찌꺼기처럼 남아있는 묵은 감정들이 겨울의 추위와 함께 저절로 쓸려려나가기를, 

지난해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정리 되길 바랐다. 

1월1일이 지났고 3월을 목전에 두는데도 지난 12월이 길게 늘어진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정호승 시인의 시처럼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아무래도 옳지 않은듯 했다. 

나름의 이정표를 세우기 위해 천문대를 찾았다.

밤하늘에 펼쳐진 겨울 별자리를 눈에 담고 묵은 겨울을 향해 "끝!"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당일치기로 별을 볼 수 있는 천문대 선택지는 

서울에서 출발하는 뚜벅이에게 그렇게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

밤이 깊어야 모습을 드러내는 별을 보고 나면 돌아오는 차편이 끊기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올 수 있는 거리, 하지만 되도록이면 도심의 불빛과는 

좀 떨어진 곳을 찾는 모순적인 바람 속에서 경기도 양주의 송암 스페이스센터로 타협점을 찾았다. 

송암스페이스센터 천문대는 구파발역에서 택시를 타면 약 15000원이 나온다.

(근처를 가는 버스가 있지만 배차간격이 1시간이라 출발시간을 맞추기 쉽지않았다.) 

나는 이 택시비를 조금이라도 아껴보겠다고 

구파발역에서 버스를 타고 20분을 조금 더 위쪽으로 이동했다. 장흥면 송추초등학교 근처에서 카카오택시를 잡으려했는데 잡히지 않았다. 타다를 켰는데 서비스가능지역이 아니라했다. 

멘붕에 빠진 나는 다시 버스를 타고 구파발역으로 20분을 돌아와서 택시를 잡았다. 

영하9도 속 바보 행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송암 스페이스센터에서 첫타임인 7시 천문대 관람표를 사고 

시간에 맞춰서 인포메이션센터 맞은편의 케이블카를 타는 또 다른 건물로 이동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조금 무서울 정도로 높이높이 올라가 산 속에 고고하게 자리잡은 천문대에 내렸다. 

이곳에서 간단한 로봇쇼(아이들은 좋아했다)와 

5분정도 겨울철 별자리에 관한 설명을 듣고 망원경으로 별을 보기 위해 천문대 옥상에 올랐다.

여기서부터는 핸드폰을 켤수없다.

별을 보기위해선 농도짙은 어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시야가 어둠에 적응하면 할 수록 하늘 위에 더 많은 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체를 관측하는 망원경은 야외에 4대 있고, 거대한 돔안에 망원경 1대 위치했다.

망원경들은 서로 다른 별에 초점이 맞춰져있어 총 5개의 별을 렌즈를 통해 눈에 담을 수 있엇다.

모두 가족 단위라 혼자 온 내가 망원경 차지 경쟁에 치이진 않을까 했던 걱정이 무심하게 

차례대로 줄을 서서 모두가 1번씩 망원경을 볼 수 있게 해줬다.

당연한 질서에 마음이 놓였다. 

돔 안에 있는 엄청 큰 망원경은 밤하늘에 가장 밝은 별인 시리우스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보는 시리우스의 별빛은 9년전의 빛이라 했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빛이  내 눈에 도달하기 까지 9년이나 걸리는 것이다.

과거에서 쏘아진 시리우스의 별빛에 9년 전 나의 모습이 겹쳐졌다. 

2013년... 그때 난 만화가가 되겠다고 첫번째 대학교를 때려치우고 

3년의 칩거기간을 거쳐 장렬한 패배를 맞이한 채 취직을 위한 2번째 대학교에 입학한 첫해였다. 

저 별에 과거의 씁쓸한 패배감과 미래를 향한 불안감이 함께 일렁거렸다. 

만약 과거에 나에게 한마디만 할수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별일없었다고. 

9년 후 올려다 볼 겨울 하늘 시리우스 별빛에도 지금의 내 모습이 겹쳐질 것이다.

상상이 잘 안되는 2031년의 나는 지금의 날 어떻게 볼까? 

아무쪼록 2031년의 나도 지난 9년을 반추하며 별일없었다고 말할수있었으면 좋겠다. 

별 관측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또 카카오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콜택시를 부르려고 네이버검색을 하던 중 그냥 1km떨어진 버스정류장까지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천문대에서 들은 별 이야기를 곱씹으며 

밤하늘에 펼쳐진 별을 따라 내려오는 건 왠지 모르게 애틋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영하9도에 발바닥 핫팩을 붙이지 않았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걷는 도중 발이 너무 시렵더니 발가락 하나가 느낌이 없어졌다. 

운 좋게도 정류장까지 내려오자마자 구파발역가는 버스의 막차가 도착했다.

별 하나에 추억을 간직한 채 집으로 향했다.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Tip)

1. 천문대 관림 표 : 16,000원

2. 구파발역 -> 송암스페이스센터 택시비 : 14,4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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