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걸음, 메시지는 고함을 지르는 게 아니다.

by 비린 다슬기

내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자주 나오는 이야기가, 메시지와 글로 마음을 나누는 것이라는 걸 눈치챘을지 모른다.

이전에 말했듯, 내게 있어 글은 마음을 나누기 위한 것 그 자체니까 어쩔 수 없다.

글은 언제나 무언가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주관적인 의견인데, 오늘은 이 메시지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메시지는 참 어렵다. 개인적으로 글을 쓰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필력의 척도를 호흡과 메시지 전달이라고 본다. 호흡은 비교적 쉽게 다룰 수 있지만, 그에 반해 메시지는 끔찍하다.

대놓고 드러나선 안 되고, 그렇다고 자신만 아는 방식으로 전달하여도 안 된다.

타당하고, 은밀하며, 그러면서도 와닿아야 한다.

그리고 이게 잘못 전달되기 시작하면, 작품이 순식간에 망가진다.


많이들 실수하는 건, 메시지 그 자체를 문장으로 적어내는 것이다.

물론, 언제나 그래도 적지 말라는 괴상한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반복되면 그건 시나리오의 글이라기보단 에세이나 자기계발서에 가까워진다.

아무리 인물을 내보내고 사건을 짜도 그건 그냥 내 목소리를 대변하는 장기 말에 불과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애당초 그 장기 말을 가지고, 흥미롭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글 아니냐고.

그럼 확실하게 답해주겠다.

설파하는 글이 흥미로운가?


글이 존재하는 이유는, 결국 하나의 메시지를 더욱 흥미롭게 전달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핵심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보다도 흥미로워야 한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자체는 사회운동가가 되어 시내 한복판에서 확성기를 들고 소리쳐도 누군가 한 명은 각성할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쓰는 것이 더욱 이목을 끌기 좋고 한 명이 아니라 다수의 마음을 각성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흥미롭지 않은 글을 쓰려는 것인가?


이제부터 왜 우리가 메시지를 숨기려 하는지, 그리고 그걸 재미있는 이야기에 덮어서 전달하는 것인지 이야기할 것이다.


일단 앞서 말했듯, 글의 본질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무엇이든 메시지를 전달할 때 숨겨서 적는 것이 효율적이다.

아이들은 약을 싫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쓴 게 싫으니까.

그런 약을 사탕 중심에 넣고 굳히면, 사탕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녹여 먹을 것이다.

언젠가는 단맛이 끝나고, 그 안에 쓴맛이 있다는 걸 눈치챌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전부 뱉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단맛에 마비되어 전부 삼킬지도 모른다.

마치 세뇌하는 악당처럼 말했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쓴맛임을 눈치채는 것이다.


결코 사탕은 쓴맛이 아니다. 뭐, 한약 사탕 같은 게 아니라면.

전혀 다른 것을 먹다가 쓴맛을 눈치챈다는 것이 참 글과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글을 읽을 때는 마냥 눈앞에 보이는 것이 즐거워 읽게 되지만, 언젠가 스멀스멀 눈치채게 될 것이다.

그것이 메시지이다.


이쯤 되면 헷갈릴 사람이 꼭 하나는 나온다.

작품의 코어와 메시지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작품의 코어는 메시지 따위의 작품이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작동하는 데에 필요한 중심 요소이다.

만약 둘을 같다고 생각한다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담긴 메시지가 ‘딴 행성 가지 말고 지구를 열심히 가꾸자’라고 하는 거랑 다를 게 없다.


작품에서 나오는 갈등이나 주인공의 목표, 작품의 로그라인 따위를 작품의 코어로 여기지, 메시지 그 자체가 작품의 주된 시나리오인 게 아니라면 둘은 같은 게 되지 못한다.


나는 되도록 작품의 메시지를 작품 내에서 적지 않길 추천한다.

내가 적었던 작품으로 예를 들자면, ‘초파리’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집착은 옳기만 한가?’이다.

짧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인간의 성장에 있어 집착은 필수 요소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인간을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꽂힌다’라고 하는 그 마음이다.

하지만 작품은 쓰이는 내내 ‘나 자신이란 무엇인가?’라는 이야기만 말한다.

그리고, 그것에 집착하는 주인공들의 말로를 통해 그렇지 않을 수 있는 모습들을 표현한다.

메시지는 그 내용으로 적어내는 것보다, 정황상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것이 은연히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모두가 그렇다고는 하지 못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상황을 직접 이해하는 데에 있어 사람들은 그 일을 더 잘 기억하게 되는 것 같다.

그저 말하고, 설명하고, 그래야 한다고 외치는 건 쉽게 와닿지 않는다.

내, 생각이, 아니니까.


괜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내용 중 유명한 게 소변기의 파리인 것이 아니다.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라고 수십 번을 말하는 것보다, 직접 상황을 이해시키고 필요성을 찾게 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었다는 말이다.


잊지 말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들 한다.

100번 듣는 것보다 직접 한번 보는 것이 낫다.

스스로 이해할 여지를 주지 않으면, 글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달할 수 없다.


요약해보자.


메시지는 숨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을 정도라면 ‘일반적인 방법’을 먼저 추구하는 것이 상책이다.

작품의 코어와 메시지는 별개의 장치다. 고의로 같게 하는 경우는 있지만, 보통 둘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착각하지 말자.

작품 내에 문장으로, 그러니까 메시지 그 자체를 적도록 하지 말자. 실력 향상에도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뿐더러, 효과적이지도 않다.


모두 건필하길 빌며, 오늘도 글을 바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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