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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vcmw May 26. 2024

이렇게 힘은 관계가 된다.

물리학과 김상욱 교수의 <떨림과 울림>

이 책의 background music

드뷔시의 <달빛>.

           2019년 말에 물리를 학문으로 처음 접하게 되면서 상당히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제가 머리가 좋지 않기 때문에 물리를 한 번에 이해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법칙들과 이론들이 바로 와 닿진 않지도 않았었는데요. 그렇지만, 이 만물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왜 여태 물리라는 학문을 배우지 않았었는지 후회도 됐었어요.

그렇게 물리에 흥미를 차츰차츰 쌓아가게 되면서 엄마가 추천해주신 현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김상욱의 양자역학 강의를 보았는데요. 이 영상이 저를 이 책 [떨림과 울림]으로 이끌어 준 계기가 되었어요. (https://youtu.be/yNIBK79kvxw)

이 강의에서 전자를 이해하는 이중성에 대해 접하게 되는데요. '전자는 파동이자 입자이다'. 충격 그 자체였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었지만, 이해 안 되는 부분들을 다시 들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미쳤다 이건'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당연히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 세상에 양자 역학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라고 리처드 파인만조차도 말씀하셨으니 안심하자..!

그렇게 저는 김상욱 교수에게 빠졌고, 물리를 대중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시는 분임을 알게 되었어요. 그렇게 물리 입문자인 제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미디어를 찾아다녔고 김상욱 교수의 많은 강연과 방송 프로그램을 보았어요. 그중에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드뷔시의 <달빛>이라는 곡을 알게 되었는데요. 이 유튜브를 보면서 처음으로 댓글이란 것도 달아봤어요. 그 곡을 들어 보니 굉장히 익숙한 곡이었고, 정말 아름다움의 극치랄까요 (https://youtu.be/JHUh6s6ua6w)


그렇게 김상욱 교수에 대한 호기심 + 책의 제목 때문에 이 책을 구매하였고 2020년 4월에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답니다. 


이 책의 제목인 '떨림과 울림'. 이 책을 읽기 전에 김상욱 교수의 페이스북에서 책 홍보 글을 읽었었는데 댓글에 몇몇 사람들이 '떨림과 울림'을 '울림과 떨림'이라고 헷갈려서 바꿔 썼다고 하던데, 솔직히 이 책 프롤로그만 읽어도 절대 헷갈릴 수가 없는 제목인데 말이죠 ㅎㅎ. 

그만큼 이 떨림 그리고, 울림이라는 제목은 강렬했어요. 


책 프롤로그에서 김상욱 교수는 이렇게 말씀하신답니다. 


우주는 떨림이다. 정지한 것들은 모두 떨고 있다. 수천 년 동안 한자리에서 말없이 서 있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떨고 있다. 그 떨림이 너무 미약하여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미세한 떨림을 볼 수 있다. … (중략)… 세상은 볼 수 없는 떨림으로 가득하다.

인간은 울림이다. 우리는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한다. 세상을 떠난 친구의 사진은 마음을 울리고, 영화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는 심장을 울리고, 멋진 상대는 머릿속의 사이렌을 울린다. 우리는 다른 이의 떨림에 울림으로 답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나의 울림이 또 다른 떨림이 되어 새로운 울림으로 보답받기를 바란다. 이렇게 인간은 울림이고 떨림이다.

이 책은 물리학이 인간적으로 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인문학의 느낌으로 물리를 이야기해보려고 했다. 나는 물리학자다. 아무리 이런 노력을 했어도 한계는 뚜렷하다. 그래도 진심은 전해지리라 믿는다. 내가 물리학을 공부하며 느꼈던 설렘이 다른 이들에게 떨림으로 전해지길 바란다. 울림은 독자의 몫이다.

- 책 <떨림과 울림>에서 


영화 <컨텍트> (영어로 하니 arrival이네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예전에 봐서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영화는 헵타 포드라는 외계 생물체가 비행선을 타고 지구에 착륙하고 나서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예요. 

영화의 내용이 어렴풋이 생각이 나는데, 뭔가 자벌레(?)같이 생긴 외계인과 인간이 그 외계인의 언어로 소통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물감이 튀는 형상이랑 비슷하게 표현되었던 언어였던 것 같은데 인간이 그 언어를 알기 위해 노력했었던 걸로 기억해요. 이 책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이 외계 생명체는 과거와 미래를 알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나올 수 있는 질문! 미래를 아는 존재에게 현재란 무슨 의미일까. 영화 속의 답은 위의 텍스트에서 볼 수 있어요. 결국 미래에 대한 예측을 사실화하기 위해선 현재가 필요하다!

  

이 책에서 굉장히 흥미로웠던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시간'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물리학에서 세상을 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고 해요. 이런 관점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요.

1. 지금 이 순간의 원인이 그다음 순간의 결과를 만들어가는 식으로 우주는 굴러간다.

2. 작용량을 최소로 만들려는 경향으로 우주가 굴러간다.

헤밀턴 역학의 근간인 두 번째의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면, 우리는 이미 가능한 모든 미래를 미리 내다보고 난 후 최솟값을 찾는 방식을 따릅니다. 즉, 영화 컨텍트에서의 헵타 포드처럼 미래를 내다보며 세상을 살아가는 것. 세상은 어떠한 존재, 가령 신과 같은, 의 의도에 의해 굴러간다는. 이 헤밀턴 역학이 등장하고 신학이 이러한 최소 작용 원리와 결부되었다고 해요.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르는 이유에 대한 고찰. 엔트로피를 물리 과목에서 공부할 때는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었는데, 이 책을 통해 비로소 그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큐브에 대한 설명이 저의 이해를 극대화시켰어요. 흐트러지는 상태, 즉 경우의 수가 많은 상태로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우주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 그래서 우주는 빅뱅, 즉 한 점에서 시작된다. 



과학의 역사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심하는 데에서 시작했다.


이중성과 상보성.

서양 철학에는 이중성이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해요. 동양 철학에서는 이런 이중성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사용이 되었는데, 그 예로는 '태극'의 문양, '음양의 조화', '중용'과 같이 대립하는 개념 사이에서 옳은 것을 찾기보다는 둘을 조화시키는 것이 있어요. 그래서 전자가 입자임과 동시에 파동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이 어려웠고, 서양 철학을 과학의 발전이 흔들었다는 이야기도 해요.

흥미롭게도 물리학에 이중성이라는 개념이 탄생하던 1920년대, 예술에서는 '초현실주의'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해요. 이는 인간의 무의식을 예술로 표현하는 것인데요.  

르네 마그리트의 <표절> (첫 번째 그림)을 보면 집 안에 있는 나무 내부에 집 밖의 풍경이 그려져 있음을 볼 수 있어요. 공존할 수 없는 개념의 공존은 이 시대의 새로운 사고방식이었지요. 나머지 그림들은 르네 마그리트의 다른 그림들. 



 


이 부분은 김상욱 교수님의 강의를 봐서 그나마 이해가 가능한 부분이었는데요. 전자는 입자와 파동이라는 성질을 동시에 가지지만, 우리가 '실험'이라는 인간 범주의 행위를 하는 동시에 전자는 입자 또는 파동의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 


책에서 드뷔시의 <달빛>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고 설명한 음악가 장세용의 <달에서의 하루>. 달빛이 잔잔한 밤 호수 위 달빛을 그렸다면, 달에서의 하루는 달빛 아래서 뛰노는 아이를 그린 노래랄까요. 




블랙홀. 블랙홀은 빛조차 빠져나갈 수 없어 온통 어둡기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블랙홀에는 토성의 띠와 같이 밝은 빛의 띠가 있다고 해요. 

-> 블랙홀도 다른 천체처럼 구형이다. 그리고 블랙홀은 물체를 빨아들인다. 빨려 들어간 물체는 소용돌이에 빨리듯이 빙글 빙글 돌며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 이것들은 엄청난 속도로 들어가며 서로 부딪히기 때문에 강렬한 빛을 낸다고 한다. 그런데, 블랙홀 주변에서는 빛이 휜다. 따라서 빛의 입장에서 블랙홀 주위 공간은 렌즈와 비슷하여 블랙홀에 가려진 뒷부분의 띠가 앞에서 보일 수 있다고 한다. 


 



우주에 빈 공간은 없다. 존재가 있으면 그 주변은 장으로 충만해진다. 존재가 진동하면 주변에는 장의 파동이 만들어지며, 존재의 떨림을 우주 구석구석까지 빛의 속도로 전달한다. 이렇게 온 우주는 서로 연결되어 속삭임을 주고받는다. 이렇게 힘은 관계가 된다.


모든 것엔 순서가 있는 법이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본질적인 무엇인가가 있다고 주장하는 '환원주의'가 있어요.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우리는 글자 하나하나로 이루어진 책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작은 부품들로 이루어진 카메라로 세상을 담는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지만, 부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작가가 제목을 통해 전달하고 싶어 했던 '떨림'에 대한 메시지가 이 '단진동'이라는 개념을 통해 더 확실하게 다가왔어요.

우주는 초끈이라는 현의 오케스트라다. 그 진동이 물질을 만들었고, 그 물질은 다시 진동하여 소리를 만든다. 힌두교에서는 신을 부를 때, 옴이라는 단진동의 소리를 낸다고 한다. 이렇게 소리의 진동은 다시 신으로, 우주로 돌아간다. 결국 우주는 떨림이다.


우주와 인간의 비교.

우주는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우주의 법칙에는 의도나 목적은 없다.

우주 속에 짜인 것은 우연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의미한 것에 의미를 더해가고

행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우주 속을 오늘도 살아간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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