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위키백과에 이름이 실리다_오인환

by 오인환

2020년 236권, 2021년 226권, 2022년 231권

3년 간 읽고 쓴 글이 이렇구나. 2023년 5월은 76권. 아무래도 올해는 200권을 채우진 못할 것 같다. 숫자가 아무 의미 없다지만 눈으로 보니 바빴구나 싶다. 돌이켜 보면 바쁘기로는 2020년이나 2021년, 2022년이 더 심했다. 어째서 읽지 못했을까. 심적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일까.

꾸준히 달던 '답글'도 밀려 있다. 아마 '게으름 병'에 걸린 것 같다. 서점 방문 숫자도 줄었다. 주 3회는 방문하고 수 권 씩 들고 나오던 게 일상이었다. 이제는 잦지 않다.

'우울증 꺼저'라는 포스팅에 '하루하늘HaruHaneul' 님이 댓글을 주셨다. 공감했다.

'휴식이 필요한가'

'쉼'과 '안쉼', '일함'과 '일하지 않음' 중간 상태로 삶을 소진하다보니 '쉬지도 않고', '일하지도 않는' 모호한 상태로 답보했다. 일하지 않아, 안일해지고, 쉬지 못해 쉬어버린 알 수 없는 상태. 중간 답보 지점을 점검을 해본다.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 보았다. 좀이 쑤셔 견딜 수 없다. 오후 2시가 되어 밖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나는 '쉬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간직한 채,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 운명'인 것 같다.

'죽기 직전 게임'. 뭐든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이다 쉬어야 '휴식'이 꿀맛이란다. 유엔의 김정훈은 말했다. '죽기직전게임' 그것이 행복감을 2배로 만든다.

예수의 40일 고행과 싯다르타의 6년 고행도 몰아붙이다 얻게 된 '행복'을 말하는 지 모른다. 직장인이 주말을 사랑하는 이유는 주중을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한량 할 것 없는 백수는 일요일이건, 수요일이건 상관없다. 몰아붙이면 그 끝에 달콤한 꿀 같은 것이 맺혀있다. 그것이 허상이라해도.


우연히 '위키백과'에 등록된 '오인환'을 봤다. 1987년 제주 출신. 그런 조건의 '오인환'이라면 '나'인데 누가 올렸을까.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걸까. 누군가가 내 이름을 등록했다. 기본 정보가 들어가 있다. 상세 정보는 비어 있다. 누군가가 나를 '백과사전'에 등록했다. 묘한 기분이다.

'나중에는 뭐가 채워지게 될까'

못 본 척하면서 단순히 '조회수', '공감수'라는 흔적 정도 남기면서도 누군가는 나를 지켜봤던 모양이다.

의도한 바 없다. 멋대로 살다보면 한 줄, 한 줄 뭐라도 채워질 것 같다. 그것도 만족이다.


중학교 시절, '천리안'이라는 인터넷이 설치됐다.

'엠파스, 야후, 심마니, 라이코스' 등 검색엔진을 처음 접했다. 개인적으로 '심마니'를 좋아했다. 둥글둥글한 글씨체에 비교적 사용자가 적었다. 그곳에 정보를 검색해도 다른 곳 만큼 성실하게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검색엔진이 독과점하지 않던 시기, 자주 사용하는 '검색엔진'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지금은 '네이버', '유튜뷰', '다음', '구글' 정도일까. 거의 모든 정보를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포털사이트가 정리됐다. 그 영향력도 그만큼 커졌다.

그 시절 인터넷은 느렸다.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열리는 정보는 지금의 '챗GPT'가 답변하는 모습을 닮았다. 접속하면 전화가 되지 않는 불편함은 덤이다.

누군가 수 백 만원의 인터넷 요금을 받았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소문은 인터넷을 덜 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었다. 최근 AI에게 물어봤다가 낭패를 보는 뉴스를 봤다. 그 시절이 떠오른다. 얼마 뒤 우리집은 천리안에서 ADSL로 바꿨다. 엄청나게 빠르다는 인터넷은 종종 알 수 없는 연결 오류로 이어졌다. 얼마 뒤, 너도 나도 인터넷을 싸게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그곳은 뭐든지 알려주는 곳이었다. 지금은 인터넷에 정보가 없을까봐 걱정하진 않는다. 그 정보가 맞는 정보인지, 아닌지를 걱정한다. 친구들은 검색창에 자신의 이름을 썼다. 자신의 이름이 나오기 만무하다. 그래도 어느정도 포털사이트에서 검증한 정보가 올라왔다.

혹시나 하여 '챗GPT'에게 '오인환'을 물었다. 그는 답했다. 그럴싸한 대답. 인공지능은 모른다 하진 않았다. 뭐든 답했다. 심지어 그것이 완전한 기계적 창작이었음에도 말이다. 아직 인간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 세상은 무엇을 알고 있느냐보다, 무엇을 물어 볼 수 있느냐. 그리고 그것을 인간의 입장에서 교차검증할 수 있느냐를 따져야 하는 시대가 열렸다. 단순 지식을 넣기보다, 다양한 사고융합을 하고 질문을 만들고 그것의 신빙성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검색하면 나오는 사람이 되려고 아득바득 애쓰고 산 삶은 아니다. 그런데 흘러가는대로 흘러가다보니, 여기저기 넷 구석진 곳에 살짝 이름이 걸렸다. 블로그 유입 검색어에 '오인환'를 보며 '이 사람은 어떤 경로로 나를 알았을까', '왜 검색해봤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이런 삶을 수 년을 더 산다면 챗GPT도 내 삶을 어느정도 평가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때가 되면 내가 읽은 책, 쓴 글, 살았던 삶은 대체적으로 어떤 정보로 사람들에게 알려질까. 쉬기도 하고 일하기도 하는 모호한 상태로 조금 더 삶을 진행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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