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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pr 17. 2024

[소설] 우리에게 이름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소설 '수족관'은 보육시설에서 자란 '류이치'가 불가사이한 한 소녀를 만나며 겪는 일을 그려낸다. 배경은 특이하게 '일본'이다. 소설 속 모든 등장인물, 배경이 모두 일본이다. 평소 '일본 문학'을 즐겨 보던 터라 이질감없이 다가왔다. 이국적인 이름과 배경, 간결한 문체는 실제 일본 작가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다만 소설을 읽으며 몇 번이나 작가 소개를 살폈다. 작가는 한국인이다. 한국인이 맞는지, 어떤 이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쓴 글인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유래혁' 작가의 글이다. 이 소설은 도저히 빠르게 읽을 수 없었다. 좋은 의미에서 그렇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감성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이 많다. 어떤 문장을 만나면 몇 번을 다시 읽고 곱씹었다. 사진을 찍어 두기도 했다. 이 소설이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라는 점이 믿겨지지 않았다.

 주인공 '류이치'는 열 일곱 고등학생이다. 그는 시설에서 생활했다. 카노코와 다이스케라는 친구와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남자 아이다. 특별할 소재 없이 시작한 소설은 주인공이 버스에서 '한 소녀'를 만나며 극적으로 내용 전환이 된다. 소녀는 난데없이 '너 시설에서 살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자신이 시설에서 지낸다는 걸, 너무 쉽게 알아챈 그녀를 '류이치'는 기억해 둔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여자 아이의 첫인상이다. 이 첫인상은 당황스럽게 시작했으나 더 당황스러운 무언가를 남겼다. 그의 지갑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 뒤로 류이치는 '이름' 없는 그녀를 잊을 듯, 잊지 못했다. 오래 남은 첫인상의 당황스러움과 다르게 그녀는 빠르게 흔적을 지웠다. '이름' 없는 것에 대한 망각. 그것이 더 자연스럽고 빠르게 진행된다는 사실을 소설은 말한다.

 이름 없는 것에 대한 망각.

 '지나치는 인연'에 대한 기억을 가만히 곱씹어 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맞다. 잘 모르지만 인류가 최초의 언어를 사용했을 때, 품사는 '명사'일 것이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대상에 이름을 붙인다. 이름 붙인 것은 사용하기 위해서고 기억은 그것을 유용하게 돕는다. 결국 이름 없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기억'의 책임을 해방한다. 그러지 않은가. 만났던 누군가의 이름을 잊고난 뒤 성격, 추억, 목소리는 더 빠르게 잊혀진다. 

 몇 주 후에 잃어버린 지갑은 학교 사물함에 되돌아와 있었다. 자신의 지갑에는 '시간과 장소'를 적어놓은 글귀와 함께 말이다. 류이치는 이름 없는 그녀의 글씨를 막연히 믿는다. 장소로 이동했을 때, 그녀는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굉장히 신비한 아이였다. 그녀에 대한 기억은 '이름 없음'에서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녀에게 '이름'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그녀는 누군가의 지갑을 훔쳤다. 그들의 기억과 이름을 훔쳤다. 그 도화지 같은 밑그림에 상상의 물감을 덧칠하길 좋아했다. 그녀가 하나 둘 모아둔 훔친 지갑은 한 가득이나 있었다. 그녀는 류이치에게 당췌 알 수 없는 말들을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류이치에게도 누군가의 이름 하나를 선물한다. 훔친 지갑 속의 누군가의 이름을 하나 둘 씩 나눠 가진 그들은 정말 그들이 된 것 처럼 흉내도 된다.

 소설은 가볍게 시작했다가 철학적 물음을 던지고, 설레임을 스쳤다가 우울하고 슬프게 끝난다. 여러 감정을 짧은 소설에서 만날 수 있다. 단순히 재미를 느끼는 것 뿐만 아니라 서정적인 문체와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수족관'이라는 이름 아래로 폴라로이드 필름 형태의 수채화가 표지에 붙어 있다. 책을 읽다가 덮을 때마다 유심히 그 수채화를 살피게 된다. 실제 필름 혹은 옆서인듯 수채화는 손으로 그 외각의 음각을 만질 수 있다. 소설의 감성과 너무나 잘 맞는 표지를 몇 번이나 손으로 더듬거리며 읽는다. 소설을 읽기 전에는 '밍밍한 맛'으로 느껴지던 디자인이 소설을 읽지, '포근'하게 느껴진다. 소설은 짧지만 분명 읽고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모든 결말을 다 알고 난 뒤에 다시 읽을 소설의 재미도 분명하게 기대된다. 결국 이 소설은 두 번 읽지 않을 수 없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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