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좀 추천해주세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쉽게 고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게 간단해지지 않는다.
책을 많이 읽었으니 '최고의 책' 혹은 '단권'을 꼽아보라는 이야기도 듣는다. 그때도 굉장히 난감하다.
책이란 걸 읽다보면 '책과 책'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짐을 느낀다. '책'이라는 단일 출판물이 아니라 활자로 얻은 것들이 유기적으로 합쳐지게 느낌이라 그렇다.
'어디서 이걸 봤나' 싶은 구절은 다른 책에서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인용마저 다른 어딘가에서 가져왔을 가능성이 크다.
많이 읽으면 빨리 읽게 된다. 그것은 '이해능력'이 발달해서가 아니다. 역사, 철학, 인문학의 내용은 표면이 달라도 본질은 비슷하다. 결국 까맣게 칠한 도화지에 채워지지 않은 빈곳을 덧칠하는 느낌이다.
그런 의미에서 '완전한 창의성'이라는 것은 없다. 대체로 '창의성'이라는 것은 시기나 장소를 달리한 모방 간의 융합이다. 고로 거의 모든 것은 '모방'의 형태를 띄고 있다.
'거인의 어깨'라는 말이 있다. 아이작 뉴턴은 말했다.
'내가 멀리 보았다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사람들은 '뉴턴의 말'이라고 알고 있다. 다만 이 비유는 1651년 조지 하버트라는 종교 시인이 사용한 표현이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는 거인보다 멀리본다.'
뉴턴은 이 말을 빌려썼다. 그러나 조지하버트의 그 말 또한 1621년 로버트 버튼의 이야기를 빌렸다. 로버트 버튼은 1159년 요아네스 사레스베리엔시스의 글을 읽고 그 말을 차용했고 이 표현 또한 1130년 베르나르 사르트르의 글을 인용한 글이다.
고로 모든 글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갑자기 누군가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없다.
이렇게 위대한 인물도 자신의 치적을 선인들에게 넘기곤 했다. 심지어 이때 사용한 표현마저 선인들의 표현을 빌려온다.
그들의 말을 나또한 인용하자면, 거인 어깨 위에 다른 거인이 서 있고, 그 거인 어깨 위에는 또 다른 거인이 서 있다. 결국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거인, 그 거인의 어깨 위에 다시 서 있는 형국이다.
어쨌건 글을 읽다보면 '책 한권의 제목'이 '목차' 수준으로 줄어 들어 버리는 감각을 느끼게 된다. '역사'라는 항목 아래, '사피엔스'나 '총균쇠'가 있고 '과학'이라는 항목 아래, '이기적 유전자'나 '코스모스'가 있다.
책 읽던 사람에게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드는 목차 하나만 골라보세요'라는 주문을 했을 때처럼의 막연함이 아마 '책을 추천하는 다독가'의 마음일 것이다.
'여르미'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류지아 작가'님은 네이버 도서인플루언서 1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1년에 500권 가량 읽는 대단한 다독가다. 개인적으로 나또한 '다독한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지만 정말 감히 비할 바가 못된다. 사실 '도서인플루언서' 활동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읽는 것'보다 '쓰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의 블로그를 방문하여'책 정말 많이 읽으시네요'라고 글을 달면 괜히 서운해 질 때가 간혹 있다. '나의 노고'는 읽을 때가 아니라, 쓰는 것에 있다는 서운함이 들어서다. 읽는 것은 쉽다. 그러나 사후 그것을 글로 기록하는 독후 활동이 거의 책읽기의 8할은 차지하는 것 같다.
아무튼 '저 사람은 도대체 무슨 책을 읽을까. 어떻게 읽을까'하는 개인적 호기심으로 책을 구매했다. 책의 제목은 '인문학 필독서 50'이라고 적혀 있겠지만, 아마 출판사 컨셉에 맞춰진 이름일 것이고 굉장한 고민을 하며 추천도서를 선정했을지 모른다.
예전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이야기한 글을 본 적 있다. 글에 따르면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본업'과 전혀 상관없는 매우 마이너 한 주제로 끝없이 파고들어간 '전공서적'이 하나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렇다. 나의 서재에는 굉장히 쌩뚱맞은 주제의 책들이 있다. 가령 '신발'에 관한 역사라던지,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역사책들도 있다.
'도대체 이런 책은 왜 사는 거야?, 사는게 문제가 아니라 왜 읽는거야'
이런 책들이 쌓여 있게 되면, '아.. 나도 정상은 아니구나..'한다.
그러다가 다른 책에 진심인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보다는 정상이겠구나' 하기도 한다.
이렇듯 고구마줄기 캐듯 따라 들어간 책에서 '유레카'하고 싶은 인사이트를 얻는 경우도 많다. 고로 나중에는 한 권의 책이 엄청났다는 인상은 희미해진다. 잘 섞여 하나의 요리로 탄생한 '독서'의 즐거움이랄까.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가장 맛있는 원재료 하나만 꼽으세요.'와 같은 의미 없는 질문같다.
개인적으로 '누군가가 추천한 책'이나, 베스트셀러 책을 잘 찾아 읽지는 않는다. 책이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영향을 끼치고 바로 직전에 봤던 영화와 소설, 겪었던 이야기와 들은 이야기들이 모두 절묘히 섞여 주인과 궁합을 이루기 때문이다.
다만 누군가가 진중하게 물어본다면 곰곰히 생각해 볼 것 같다. 그리고 '이거 읽으세요'라기보다 '나는 이거 괜찮았아요'라는 식으로 추천을 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선택이 몹시 궁금하다. 어쩌면 언급된 도서를 찾아 고구마 줄기캐기를 다시 시작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