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따끈 몇분 전 일어난 사건으로 서두를 시작하자면, 나의 취미란 운동을 마친 뒤, 소파에 널부러져 따뜻한 전기담요를 덮고 몸을 덮히면서 최근에 구매한 'LG스탠바이미'로 옛드라마를 재생시켜서 오후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이 생각보다 꽤 재미가 있어서 '워크와 라이프'를 따로 구분하여 밸런스를 맞출 필요 없이 완전하다.
우리집의 불문율 규칙이라면 '영상시청'은 반드시 주말에 정해진 시간, 해야 할 몫을 완료해야 가능한 것이다. LG스탠바이미는 아이들이 없을 때 몰래 가지고 나와 TV를 시청하다가 아이들이 올 때쯤, 옷방 구석에 박아 두는 것이다.
오늘은 아이들이 친구와 놀고 온다고 하길래, '그러거라' 했다. 아이들의 일상은 나보다 조금더 루틴화 되어 있는데 아침에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구몬'을 풀고 아침 식사를 하고 나간다. 그러니 사실상 집에 돌아오면 '숙제를 해야 하는데...', '학원을 가야 하는데...', '공부를 해야 하는데...'하는 부담은 없다. 아침에 할 일을 다했으면 '무조건 늦기 전까지 놀아도 좋다.
그러다 아이들이 친구와 조금 일찍 파하고 돌아와서는 TV에서 '허준이!'하고 외치는 드라마속 대사를 들었다.
'아빠, 주말도 아닌데 왜 영화봐?'
하율이가 그러다니, 갑자기 '핑'하고 눈물을 쏟는다. 그 영화 한편 봤다고 그렇게 서럽게 울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아무튼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는 입장에서 아이들의 '학업'에 관한 관심이 조금더 구체화돼 간다.
어떤 부모는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다,하여 공부를 시키지 않는 집도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렵다. 세속적 입장으로 '공부해서 출세하라'라는 의미가 아니라 '교육'이라면 국가에서도 기본 복지로 어느정도는 보장하는 인간으로서 중요한 의무이자 권리다.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어 '미성년'이라는 이름으로 '부모'에게 아이의 선택권을 양도하는 사회에서 부모가 먼저 나서서 '교육'의 의무와 권리를 박탈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대한민국 교육이 '참 별로다!'라고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만하면 꽤 괜찮다'라고 동의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초등학교부터 '공부, 공부, 공부' 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했다고 우등생이 되는 것도 아니겠지만 나로써 아이에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해야 할 일은 해라' 정도다.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아이가 국제적인 비즈니스로 바쁜 와중이라면 '두자리 덧셈'을 하루에 꼬박꼬박 하라고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국내외 정치에 중차대한 일을 맡아하고 있다면 허튼짓 하지말고 네 일이나 해라,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해야 할 몫은 꽤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는데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지시사항을 따를 것이고 규칙을 지킬 것이며 숙제와 학년에 맞게 배워야 할 학습 내용을 익히는 것이다.
그게 아이가 해야 할 몫이다.
내가 아이 보육을 내팽겨치고 PC방이나 술집을 돌아다니지 않고, 책임을 다하여 내 몫을 다하듯, 아이는 아이가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몫을 다 해야 한다.
아이가 제빵사가 된다면, '제빵'에 있어서는 꽤 자부심 가질 정도의 몫을 해내야 하고 서재에는 '빵'에 관련된 역사나 문화에 관한 서책이 한칸은 차지해야 한다.
아이가 '가수'가 된다면, 최소한 비슷한 가수의 책이나 음반을 집착 수준으로 수집하고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내가 환자라면 그런 책임감을 가진 의사를 만나고 싶고, 나게 손님이라면 그런 책임감을 가진 '요리사'의 음식을 먹고 싶다. 그것은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고 스스로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쌍둥이의 학부모로 참 고단 한 것이 교육 철학은 이처럼 두었지만 담임 선생님께 '죄송합니다'하고 말씀 드려야 할 전화를 종종 받게 된다. 남들이 한 번 받을 전화를 두 번이나 받게 된다. 언젠가는 아이가 친구들한테 '반짝이 펜'을 나눠 줬다고 한다. 어찌보면 그게 좋은 일 처럼 보이지만, 가지고 간 펜은 한정되고 가지고 싶은 친구들은 많다보니, 받지 못한 아이들은 울면서 집으로 가고, 그것을 나눠준다는 작은 권력으로 아이는 으쓱했다. 선생님이 이런 일로 전화가 종종 오는데, 숙제를 못하는 경우가 있다, 준비물을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언젠가는 선생님께 물었다.
'혹시 아이들이 좀 이상한 가요?'
선생님은 재차, '아니요!, 그럴진 않아요!' 하지만 학부모에게 솔직한 속마음을 말하지 못하는 '교사'로써의 양심이 작동하진 않았을까, 의심하며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에게 조금씩 규칙을 추가하곤 했다.
규칙이 많아져서 아주 '철두철미'해지다보니, 하율이가 '규칙' 어긴 사람을 '혼내는 사람'이 하고 싶단다. 직업이 뭐냐고 묻기에, '검사 언니가 그런거 할거야' 했다.
그런 이야기를 주고 받은지 두어달이 지나고 아이들이 규칙이라면 까무러칠 정도로(최소한 집에서는) 지키는 순간이 됐는데 아빠가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으니 하율이의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아빠가 실수했다고, TV를 집어 넣겠다고 몇번을 달랜 후에야 집밖을 나섰다. 최근 읽고 있는 '송재환 작가'의 '초등 3학년 늘어난 교과 공부, 어휘력으로 잡아라'를 읽고 있는데, 생각보다 아이들은 크게 걱정이 되지 않는다.
걱정이라면..., 그래서.. 내년에 3학년이 되는 아이들이 아니라, 마흔이 되는 나는 잘하고 있는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