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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 lilla Dec 11. 2022

인간이 지구의 주인?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을 읽고

학교 도서관에 대출하러 갔다가 제목만 보고 제목이 특이해서 빌렸다. 집에 와서 읽다 보니 기수 로봇 이야기였다. 나의 책 읽기는 편식이 조금 심한 편이다. 특히 과학, 판타지, SF 쪽은 잘 쳐다보지도 않는다. 로봇이 나올 때쯤 인공지능, 미래 과학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지레짐작하고서는 순간 고민했다. 읽을까 말까. 

찬찬히 그냥 한 번 따라 가 보기로 했다. 예상과는 달리 술술 잘 읽혀졌다. 경마 기수인 휴머노이드 로봇 콜리의 이야기이다. 콜리는 다른 로봇과 달리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게 된다. 감정을 느낀 콜리는 달리는 중 하늘을 쳐다보다가 낙마를 하게 되고, 쓸모가 없어지자 폐기 대상이 된다. 이 과정 중에 로봇에 관심이 많고 특출한 재능을 지닌 연재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연재는 아버지를 잃었고, 소아마비에 걸린 언니, 배우를 포기하고 식당으로 가족을 꾸려나가는 엄마와 힘든 삶을 살아간다.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게 한 책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미래, 삶의 속도, 가족,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인간에 대해서.


가족

다른  수험생들의 엄마가 어떻게 아이를 관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보경의 방식은 '방목'이었다. 숨통을 조이는 순간 분명 어느 한 곳이 짓무르기 시작할 거라고 믿었다. 아이들은 필요하다 느끼면 무엇이든 스스로 찾아 해냈으며, 보경이 느끼는 두 딸은 착실하게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고민하며 꿰어 나가고 있었다. 정말로 다급하게 손을 뻗을 때에만 아이들의 SOS를 놓치지 않고 들으면 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리라.(p165)

부모의 역할에 관심이 많은 내게 가장 인상깊게 다가온 문구이다. 홀로 두 딸을 키워나가는 엄마 보경, 오로지 로봇에만 관심이 있는 둘째 딸 연재, 소아마비로 늘 경마장에서 말과 시간을 보내는 첫째 딸 은혜, 각 자가 힘든 삶을 살아가지만 무심한 듯 서로서로를 지켜주고 가족으로서 인간으로서 따뜻함을 유지해간다.

인공지능의 시대,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바둑을 지던 날! 마치 인간의 시대는 끝나고, 인간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로봇, 인공지능에게 지배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온 지구를 덮쳤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인간의 원초적 사랑을 기반에 둔 가족의 사랑 앞에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소설에서 말해주는 것 같아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안도했다.


로봇의 시대

콜리는 공감을 느낄 수 없는 개체였지만 공감하는 척 움직이게 만들어졌다. 어차피 사람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공감이었다. 보경은 콜리를 앉혀놓고 몇 번 대화를 한 후에야 진정으로 필요했던 건 들을 수 있는 귀와 끄덕일 수 있는 고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p271)
하늘을 보고 싶다는 콜리의 욕망은 도대체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p308)
살아 있지 않은 걸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인간밖에 없으리라(p344)
투데이의 목을 끌어안는다. 투데이의 행복함이 떨림으로, 울림으로, 진동으로 전해진다(p353)

인간이 인간이 창조해낸 기계에 지배당할 까 두려운 마음은 여전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인간과 로봇이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친구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미래를 그리는 영화나 이야기를 보면 대부분의 인간들은 선한 의지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만 지나친 욕망에 사로잡힌 아주 소수의 인간들에 의해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다 또 대부분의 선한 의지를 가진 인간들에게 또 제압을 당한다. 지구의 미래도 그러하길 빌어본다. 어릴 때 보았던 만화영화에서 보았던 깡통 로봇처럼 친근한 로봇들과 정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꿔본다. 인간이 점점 더 외로워지는 이 시대에 인간의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해주는 로봇이 있다면!


삶의 속도

"너도 나도 알아서 잘 살아갈 수 있는데.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처럼, 도움받지 못하면 살아가지 못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기들 멋대로 생각하는 게 꼴 보기가 싫다. 우리 엄마는 내가 좋은 대학에 가서 남들에게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당당하게 보여주라고 하는데 나는 왜 굳이 그렇게 멋있게 살아서 내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p215)
우주는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것만 탄생시켰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가 각자 살아갈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정상의' 사람들은 모르는 듯했다(p221).
 "살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에요. 살아 있다는 건 호흡을 한다는 건데, 호흡은 진동으로 느낄 수 있어요. 그 진동이 큰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에요(p302).
힘들면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다. 비록 생명이 무언가를 포기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노력을 해야 하지만(p351).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말아요. 저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아도 돼요. 당신은 당신의 주로가 있으니 그것만 보고 달려요. 자신의 속도에 맞춰서요(p352).
 천 개의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짧은 삶을 살았지만 처음 세상을 바라보며 단어를 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천 개의 단어는 모두 하늘 같은 느낌이었다. 좌절이나 시련, 슬픔, 당신도 알고 있는 모든 단어들이 전부 다 천 개의 파랑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파랑파랑 하고 눈부신 하늘이었다(p354).

모두가 바쁘게 앞만 보고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천천히 저마다 자신만의 속도로 온 우주를 몸으로 느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나도 그렇게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파랑파랑 한 하늘을 제대로 느껴본 게 언제인지...

고즈넉한 일요일 오후, 오랜만에 창으로 전해져 오는 따뜻한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며 글을 쓰고 있다. 주-욱 이런 속도로 찬찬히 삶을 누리고 느끼며 살아야겠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

한 해 1만여 마리 정도의 동물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눈을 감았다. 인간도 살기 비좁은 땅이라는 이유로 동물들이 사라 져야 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생태계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모두가 입을 모아 동물의 생존권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중 대부분의 인간들이 여전히 개 공장에서 태어나 펫숍으로 팔려 온 강아지를 구매했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고양이를 발로 찬다. 털이 뭉친 노견은 너무 못생겼다 느꼈으며 갓 태어나 저조 떼지 못한 개만이 가족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고 생각했다(p236). 
 "물론 빠른 시일 내에는 아니겠지만 아주 먼 미래예요. 짐승이 이 행성을 포기하게 되는 거요. 이곳에서는 더는 살 수 없다고 판단한 동물의 유전자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거예요."(p251).
"왜 말을 타고 달리는 경기를 열게 됐나요?"
"재미있으니까"
"누가요? 말이요?"
"아니, 인간이."
"인간이 재미있는데 왜 말이 달리나요? 그럼 인간이 달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p23)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투데이를 데리고 가는 수밖에 없었으나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말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인간이 필요로 하지 않으면 죽었다. 복희가 말했던 이 행성에서의 동물들의 위치였다(p212) 


나는 계곡이나 시냇물에 노니는 물고기 보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때는 손으로도 잡고, 반두로도 잡고, 물을 빼서 잡고, 논에서 삽으로도 잡아서  매운탕을 끓여 먹기도 했다. 다른 동물들을 많이 괴롭히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나고서는 같이 고기를 잡고 고기 통에 잠시 두었다가 방생해 주곤 했었는데, 어느 날 물고기 통에 두었던 그 잠깐 사이에 죽었던 물고기에게 너무 미안해져서 이제는 아예 고기를 잡지 않는다. 보기만 한다. 산책을 하다가 한적한 시골을 다니다가 물만 나오면 물고기를 찾아보게 된다. 어릴 때는 동물들을 많이 괴롭히기도 했지만 정말 다행이게도 이젠 조금은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 주려고 한다.

인간을 중심으로 생명체들의 이름이 명명된다. 인간에게 해로운 벌레는 해충, 인간에게 쓸모없는 풀은 잡초, 그들도 나름의 소중한 생명체다. 우리가 그들을 당연히 먹어 치워야 하고 우리를 지키는 존재가 아니라 그들의 도움으로 우리의 삶을 유지하고 있다고. 그들에게 고맙다고 말은 못 하지만 최소한의 예?를 갖추어서 함부로 다루거나 괴롭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하니까.


도서정보: 천 개의 파랑, 천선란 장편소설, 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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