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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우 Jun 03. 2021

일단 걷기

출발해야 도착한다


나의 정체기


 창피하지만 잠시 나의 어두웠던 과거 얘기를 해보려 한다. 병무청에서 편지를 받아본 적이 있는가? 99%의 남자는 달갑지 않은 소식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듯 어릴 적 대한민국 남자라면 20살이 되면 다 통일해서 군대에 안 가리라 상상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23살이던 여름 내게 날아온 입대 영장을 보고 나서야 통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고 우리는 휴전 중인 국가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보통  20~21살에 입대하는 경우가 많기에 23살이던 나는 한참 늦었기에 너무나 두려웠다.  술을 마셔도 술이 물처럼 느껴지고 하루하루가 재미가 없으며 전역한 친구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친구들에겐 괜찮은 척했으나 신이 있다면 적어도 내게는 빛을 비춰주지 않았다고 여겼다. 의무이니 당연한 것인데 부정하고 싶었다. 살면서 가장 의지가 떨어졌던 순간이었고 시간이 이상하게 빨리 갔다. 그러던 나를 한 사건이 완전히 바꿔놓았다.


XX처럼 굴래?


 군대라는 처음 겪는 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편함이 나를  조금씩 갉아먹어가던 어느 여름날, '가짜 사나이'가 유튜브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여러 지원자들이 추운 바닷가에서 젖고 구르고 죽어라 달린다. 교관들은 소리 지르며 쪼아 오고  인간을 한계로 몰아붙인다.

 

난 집에서 에어컨 바람 쐐며 편하게 쉬고 있었으니 그 생각이 더 들었던 걸까. 처음엔 웃으며 이런 걸 왜 사서 고생하는 걸까? 싶었다. 그때 한 수중 훈련 중 교육생이 부상으로 힘들어하고 포기의 문턱에 닿자 로건 교관이 말했다 'XX처럼 굴래?' 바로 이어 교관 인터뷰에서 아까 말한 XX이 무슨 의미냐 물었다. 로건 교관의 대답은 나를 꿰뚫고 속을 휘저었다.

XX이란, 도전하지도 않고 포기하려는 마음이 XX입니다.

 그가 말한 XX의 정의에 난 정확히 부합했다. 집에서 가만히 놀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아직 오지도 않은 군대를 두려워하고 아까운 시간을 버리고 있던 나였다. 조종사가 되리라 해놓고 이렇다 할 노력도 없고 그냥 군대 가니까 놀아야지라는 핑계에 나를 스스로 족쇄를 채운 것이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헬스장으로 달려갔다. 입대까지 남은 기간 동안 등록을 했고 운동을 좋아하던 친구에게 무작정 배우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두 시간씩 내 한계까지 운동했다. 몸이 찢어지는 것 같았고 왜 입대 전 이러고 있을까 싶을 때 저 날의 감정을 기억하며 버텼다. 찢어질 것 같던 근육들도 적응을 했는지 참을만했고 무겁던 덤벨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께서 "3대 몇"이라고 아려나 모르겠다. 스쿼트, 벤치 프레스, 데드 리프트 3가지 운동의 본인이 들 수 있는 무게를 합친 값이다. 나는 운동 시작 때 3대 180 가량이었던 것 같다. 도전하고 꾸준히 해오니 1년이 지난 시점 약 350까지 올렸다. 무게를 두 배가량 들 수 있고 겉으로도 근육이 많이 자란 게 느껴졌다. 


탄력주행


 일단 출발해야 도착한다 하였거늘, 비록 목적지가 원하던 바가 아닐지언정 잘못된 길이란 걸 알 수 있다. 걷다 못해 뛰어버리기 시작한 나는 멈추지 않았다. 한 유튜브 영상이 나의 가슴에 불을 지폈고 나는 거기에 여태 써본 적 없는 열정을 부었다. 운동이 생활화되어갈 무렵, 꾸준히 할 새로운 스포츠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미 한번 해본 도전, 더 이상 두려울 것 없던 나는 가슴이 뛰었고 마치 첫 비행을 했던 것처럼 몸의 모든 세포가 신났다. 운전을 해봤다면 탄력 주행을 들어봤을 것이다. 자동차가 가진 관성을 이용해 쭉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탄력주행에 로켓을 달았다.


 이때가 입대 2달 전이었다. 당장 해볼까 했던 모든 것들을 쉬지 않고 하기로 마음먹었다. 시원한 바닷속을 자유롭게 누비고 싶었다. 수영도 못하면서 일단 부딪히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고민하지 않고 제주도로 날아가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런데 과연 내가 살면서 물속에 들어갈 일이 얼마나 있었던가. 물과 친하다고 하기엔 턱없이 건조했던 내 자신이었다. 자격을 취득하려면 마스크에서 물을 비울 줄 알아야 하고 호흡기를 뽑고 다시 찾아서 입에 물 수 있어야 한다. 바닷속에서 마스크에 물을 채우면 앞이 흐려지고 코에 물이 들어온다.


 무의식적으로 숨을 쉬어야 한다는 본능이 코로 숨을 쉬게 했고 그 덕에 물을 많이 마셨다. 과거의 나였으면 여기서 그만뒀을 것 같다. 내가 이 정도도 못해?라는 생각이 뇌를 지배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갑자기 자신감이 셈 솟았고 물속에서 침착함이 내게 생겼다.


임시 자격증

 그렇게 PADI 협회의 어드밴스드 오픈워터 다이버 자격증을 취득했다. 수심 40M까지 잠수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물과 친해졌고 살면서 가장 재밌었던 스포츠 중 하나를 배웠다. 


도전하는 과정 중 어려움을 겪었을 지언정 이겨냄으로서 결과는 나왔다. 더 이상 여름에 덥다고 에어컨 켜진 실내로 숨지 않고 바다로 나가 유영하며 바닷속을 누빌 것이다. 다이버 업체 사장님들과 친해졌고 비슷한 취미를 가진 동호회 분들과도 인연을 만들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세상은 정말 넓고 그 넓은 세상을 다 경험하기에 나의 삶은 오히려 짧을지도 모른다. 수능을 다시 본다고 2년이나 소비한 과거의 나 그리고 방 안에서 곧 입대한다고 쉬던 한 달 전의 나 자신이 너무나 미웠다.


그래도 스스로 변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그 시간은 교훈으로 삼기로 했다. 스스로가 변해 무언가를 추구하고 좇을 수 있다는 짜릿한 감정을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코로나가 풀리면 해외에서 다이빙을 소재로 짧은 영상 하나를 만드는 게 나의 다음 목표다.


출발하려는 당신에게


 출발해야 도착한다는 말은 사실 내가 지어냈다. 조금이나마 와닿았으면 하는 마음을 저 문장에 담아보았다. 작가는 유튜버의 프로젝트 하나로 도전하는 법을 배웠고 도전은 나에게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에게 삶에 변화를 줄 만큼 큰 충격을 받을 일은 단언컨데 많이 그리고 자주 오지 않는다. 


우리는 시련이라는 가면을 쓴 기회를 잡아야 한다. 이 글을 읽고 가슴속에 조그맣게 불꽃이 피어났다면 그거로 충분하다. 그 작은 불씨에 열정이라는 기름을 부어보자. 이 글을 읽을 독자분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더라면 그때의 감정을 기억해보시라.


 만약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할 수 있는 쉬운 것부터 도전해보시라. 어떠한 도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이어트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작가처럼 액티비티 혹은 원하는 물건 구매일 수 있다. 도전한다는 자체에 의의를 두고 나아가자. 


만약 당신의 첫 도전이라면 막상 하려니 막연하고 두려울 것이고 할 수 있을지 스스로 의심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당신이 지나간 길에는 빛나는 발자취가 있으리라.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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