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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풍경 Jul 18. 2022

불안한 자녀를 돌보는 법

앤드리아 피터슨, '불안은 날마다 나를 찾아온다' 북 리뷰


    현대 사회에서 '불안'과 '우울'은 언제부터인가 낯설고 몹쓸 희귀병이 아니라, 나와 내 이웃 누구에게라도 닥쳐올 수 있으며 이 사회 다수를 짓누르고 있는 전반의 정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코로나 팬데믹 사태 이후로 더욱 확고해지는 듯합니다. 그 때문일까요? 근래 서점가의 매대는 정신건강 분야 서적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정신질환자 및 그 가족의 경험담 위주의 에세이류가 선전을 하고 있지요.



앤드리아 피터슨/불안은 날마다 나를 찾아온다/사람의집/2022.05.10.

        

   오늘 소개할 책은 불안장애 당사자로서의 경험담과 [월스트리트] 지의 기자이자 저널리스트로서의 객관적 태도로 수집한 최신의 정보까지 어우러져 균형감을 갖춘 앤드리아 피터슨의 [불안은 날마다 나를 찾아온다]입니다. 이 책은 특히 중반부 이후로는 불안한 부모와 자녀에 관련한 내용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항불안제나 항우울제를 복용 중인 산모, 자신이 불안장애이자 자녀가 불안한 기질이라 걱정이 많은 부모에게 도움이 되는 도서입니다.






불안 장애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정신질환의 원인을 일차적으로 양육환경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어왔습니다. 때로는 이 방향성이 정답은 아닐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그런데 이 책은 불안장애의 기제로 여러 요인을 소개하며 특히 '불안'에 있어서는 유전이나 기질 문제가 주요할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중 불안이 생명유지를 위한 도망-회피 반응과 편도체의 각성반응에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 점, 호흡기 문제와 불안의 상관관계를 밝힌 연구를 소개하는 등 주시할 만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특히 유년기 시절 호흡기 질환 유무와 이후 불안장애 발병 두 문제가 시작되는 유전적 원인이 동일한 범주이며, 비록 인과성까지는 밝혀진 바 없으나 상관관계를 밝혀낸 연구가 있음도 이야기하지요. 책에서 꼽은 것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로, 어느 한 요인만으로 촉발된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기질적으로 불안장애에 취약하게 태어난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 상호작용하여 영향을 준다 보는 게 좋겠습니다.



| 불안장애를 초래하는 것들


-유년기의 질병
-호흡기의 질환 여부
-부모의 중병 목격
-부모의 과잉통제




행동 억제형 아동의 불안과 과잉보호 부모


생각보다 불안에 부모의 양육방식이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적다고 합니다. 다만, 행동 억제형과 비억제형 아동을 비교했을 경우 행동 억제형 아동의 경우는 양육 방식에 보다 영향을 받습니다. 행동 억제형 아이는 놀이터에서도 부모에게 잘 떨어지려 하지 않고 친구를 사귀거나 주위를 살펴보려 하지 않는 아동들입니다. 이 아이들은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행동하기 전 자신이 먼저 머릿속에서 브레이크를 걸곤 합니다. 또한 자신의 반응을 관찰하고, 과거의 실수를 반성하는 데 능해서 스스로 잘못한 게 없는지 자꾸 되새기고 불안 반응을 더 많이 보다고 합니다. 이것이 양육자에게는 어쩌면 키우기 쉬운 아이로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반면 아이에게 이러한 개성은 불안장애의 취약요인이 됩니다.


억제형 아동은 공포 체계가 쉽게 활성화되기에 부모가 과잉보호, 과잉통제를 하게 되면 과부하가 걸리기 쉽다고 합니다. 저자는 과잉보호하는 부모는 암묵적으로 '너는 무능하다'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는 것이라 경고해요. 또한 무의식중에 세상은 위험한 곳이며 네가 홀로 극복할  없다는 정보를 쏟아부어주는 것이지요. 이는 취약요인을 품고 있는 억제형 아동에게 불안장애 발병의 트리거가 됩니다. 억제형 아동에게 지나친 통제는 브레이크에 과부하를 줍니다. 결국 자녀의 머릿속에서는 불이 나고  겁니다. 브레이크가  버려 결국 무엇도   없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자녀들에게는 부모 외에 새로운 유형의 성인과의 만남을 많이 경험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는 유연함을 배우고 두려움을 줄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주의를 전환하는 능력마저 낮은 친구들은 불안에 더욱 더 취약한데, 이러한 통계에 근거하여 연구자들은 주의 전환을 높이면서 억제적 통제를 낮추는 치료 방향이 불안장애 아동에게 유효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억제형 아동에게 과잉보호 또는 과잉통제는 브레이크의 과부하를 가져온다




태아 프로그래밍 가설


어찌 되었든 기질을 무시할 수 없다면, 언제부터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태아 프로그래밍 가설에 의하면, 자궁 내 환경은 태아의 발달에 변화를 주며, 특히 더 민감한 시기가 있다고 하지요. 과학자들이 집중하는 것은 임신 12주~22주 시기로 이때에는 태아가 산모의 불안에 특히 취약합니다. 컬럼비아 대학교는 임신 중 산모의 스트레스가 태반의 유전자 변형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이는 태아 연결(움직임과 심장 박동 수 사이의 동기성)이 저하되어 태아의 뇌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해요. 바꿔 말하자면 불안한 모친의 자녀는 유전적으로 불안을 타고 나고, 태내에서 불안을 전이 받을 수 있습니다.


연구팀이 임신 19주의 불안이 높은 산모의 태아를 확인하니 작업 기억과 언어 처리를 담당하는 뇌의 부피가 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모의 불안 장애 병력과 아기 수유 문제, 울음 문제는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어요. 나아가 이런 자녀들이 10대에 이르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이상 소견을 보이고, 여아의 경우 우울에 이르는 정도가 높았다고 합니다. 이 관찰군이 17세에 이르자 성별 막론하고 인지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임신  1분기나 3분기의 산모의 불안 및 우울은 태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어떻게 억제형 아동의 불안을 다룰 것인가


    그렇다면 불안한 부모에게는 자녀가 자신과 같은 불안에 휩싸여 지내게 되기라는 예언에 굴복하여 절망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걸까요. 저자는 이 연구 자료들을 접하며 걱정이 컸다고 합니다. 저 역시 자신과 딸을 떠올리며 걱정하고 당황했지요. 특히 저자가 자신의 딸 피오나의 수면 교육에 애를 먹었다는 부분에서 실소를 금치 못했답니다. 제 아이 이야기인 줄 알았거든요. "잠을 자는 것을 끔찍이 싫어" 하고 "항시 언짢은 노인 같은 분위기"였고 "누군가의 몸 위에서만 잠이 들고", "침대에 내려놓자마자 울음" 작동 버튼이 눌려 빼액 울어대는 아기 말입니다. 만성적 짜증 상태의 사랑스럽지 않은 아기 말이지요.


잠 버릇뿐 아니라 피오나와 저의 아이는 성장 이력도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유치원 시절, 활달하고 명랑하게 변했으나 동시에 내성적이고 신중하며, 실수에 괴로워하는 아이. 타인이 거부하는 것을 못 받아들이는 아이. 각고의 노력으로 많이 좋아졌습니다만 이는 기질이라서, 바뀌는 것은 아니거든요. 다행히 저자는 행동 억제형 아동의 부모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혹시 당신의 아이가 친구들을 좋아하고 사귀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또래 무리 가운데에서는 끼어들지 못하고 긴장하고 쭈뼛거리기만 하나요? 내 품에서는 사랑스럽고 명랑한 아이가, 밖에서는 조개처럼 입을 꽉 다물고 있는지요?  그렇다면 이 아이는 지금 긴장하여 불안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본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놀이를 즐기지 못하는 거죠.



이럴 때 부모님들의 개입은 보통 이러했을 겁니다. "우리 아이가 수줍음이 많아요"라고 나서서 변명을 해줍니다. 또는 타인의 질문에 아이가 답을 머뭇거리고 있으면 부모가 대신 답해 주기도 합니다. 저자는 부모들이 앞으로는 이러한 행동을 바꿔야 한다고 권합니다. 아이가 불편한 상황에서 부모가 대신 처리해 주는 일을 멈추라고 말이지요. 아이에게 "네가 답해 볼까? 괜찮아, 답할 수 있지?"라고 격려해 주세요. 아이가 듣는데 '수줍다' '내성적이다' 등의 말로 아이를 단정 짓지 마세요. 그 행위가 실상은 자녀에게 실패감을 줄 수 있습니다. 부모의 혀로 '나는 못한다'라는 단정을, 도망칠 구석을 부여하는 격이 된다고 합니다.


대체로 부모님들이 이렇게 아이의 앞을 막아서는 이유는, 보호본능 또는 부모의 불안 탓입니다. 부모는 수줍고 감정적으로 연약한 자녀를 과잉보호하고자 하는 덫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스트레스 상황을 벗어나도록 해주거나 무서워하는 상황에서 구해줄 게 아니라, 아이에게 여태까지 반복된 패턴을 벗어나게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가 상황을 대신 정리하기보다는 자녀가 용기를 키우도록 가르쳐 주세요. 그 상황을 회피하는 것으로는 불안장애는 나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부모가 참견과 과잉보호 욕구를 누르는 모습 자체가 자녀에게 불안을 다루는 본보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고 부모가 재차 나서며 자녀의 앞길을 정리 정돈해 주는 것은 일견 도움 같아 보이지만, 아이가 스스로를 '약하고 부족하다' 여기는 생각에 부모가 동조하여 더 큰 불안과 무력감을 불어넣는 것 밖에 안 됩니다.



결론적으로, 저자의 소개에 의하면 양육 방식 때문에 아동이 불안장애에 걸린다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불안한 기질의 또는 불안 장애인 아동에게는 과잉보호하고 통제하는 육아가 증상을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아동의 자존감을 높이고, 통제하려는 부모의 욕구는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녀의 불안해하고, 회피하는 행동은 무시하고 용감한 행동을 하면 칭찬해 주세요.


과잉통제하지 않기,

따뜻한 태도 보이기,

독립심을 키워주는 교육하기.

세 가지를 기억하시면 됩니다.


아래의 일화가 적용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왁자지껄한 방 안에 즐거운 분위기가 감돈다. 그러다가 울음소리가 들린다. 한 남자아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이는 어머니 뒤에 숨어서 다리에 매달린 채 소리를 질러 댄다.

"엄마아아, 집에 갈래요오오오!"

어머니는 공황에 빠져서, 당장 이 자리를 뜨고 싶은 생각만 간절해 보인다.

"아이에게 옆에 서라고 하세요." 단 커(전문가)가 말한다.

"엄마 옆에 서볼래?" 어머니가 말한다.

단코는 어머니 말을 다른 아이에게 칭찬을 해주라고 상기시킨다. 미니 도넛을 상으로 주자 울고 있던 남자아이는 차츰 진정한다. 단코는 어머니에게 자리를 뜨지 않았다고 칭찬한다. 어머니는 자리를 지킴으로써 아이에게 자신이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그리고 아이가 불편한 상황을 이겨 낼 수 있을 가르쳤다.

-333p.




기질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말 것은 위 조언은 아이의 성격을 바꾸라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기질은 바뀌지도 사라지지도 않아요. 기질 자체만으로 긍정적이고 부정적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기질은 한 인격체의 개성이자 방향성일 뿐이며, 이해해야 할 부분이지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어요. 부모님들께서는 자녀의 기질을 바꾸거나 가르치려고 할 게 아니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부모가 자녀의 '못된 성질머리를 뿌리째 뽑아버려야' 한다거나, 자녀를 위해 '저놈의 성격을 똑바로 가르쳐놔야 한다'라는 표현을 써 왔어요. 그러나 이는 대전제부터 잘못된 생각입니다. 자녀가 태어나며 가지고 나온 것을 꺾어버리는 게 아니라 그것을 잘 조절할 수 있는 방법과 보조할 수 있는 기술을 알려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밖으로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말이지요. 그렇게 후천적으로 습득된 기술은 성품이자 인격이 됩니다. TCI 검사를 기질 및 성격 검사라고 하지요. 성격이 바로 후천적으로 습득된 사회적 기술을 가리키는 것이랍니다. 성격이 잘 발달될 수록 자녀는 인생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살 수 있습니다.


내성적인 아이를 외향적 아이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타고난 기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내향적인 아이를 외향적인 아이로 바꾸라는 것이 아닙니다. 핵심은 아이의 행복을 유지시킬 기술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사회적 관계에서 성공해야만 해요. 그래서 아이들이 타고난 기질 때문에, 행동 억제 때문에 해야 할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방법을 가르쳐주고 점차로 능숙해지도록 훈련시켜 주는 것이지요. 어른들의 지도와 도움으로 아동의 불안의 크기를 조금씩 경감시켜, 사회 불안 '장애'라고 진단될 만큼의 수준에서 수줍지만 자기 자신의 장점은 사람들 앞에서 발휘하고 유지 가능한 수준으로 옮겨주는 것이 훈육과 돌봄의 목표여야 할 것입니다.





약해 보이는 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욕심은 모든 부모가 동일할 거예요. 문제는 자신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는 모호함이지요. 저자 역시도 자신이 불안장애이기에, 딸의 불안한 기질에 대해 걱정이 되고 죄책감마저 느끼곤 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있나요. 그녀가 고백하듯,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그때마다 부모로서 자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할 수밖에요.  딸 피오나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는 저자의 고백이 인상적입니다.




나는 여전히 내가 무엇을 해냈는지,
아니 뭘 해내긴 했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때그때 대처할 뿐이다.
육아라는 게 원래 그렇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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