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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풍경 Nov 14. 2022

자기 직면-칼 융의 페르소나와 그림자

동화책 거울을 든 아이 북 리뷰


    앞도 뒤도 캄캄한 곳에 남겨진 이들에게 어린 소녀가 들려주는 용감한 이야기




소녀와 아빠만이 지내는 바다 위 섬
어느 날 들려오는 소문 하나
저 너머 어딘가에 사람을 돌로 만드는 괴물
거인이 나타났다
아빠는 거인을 처치하겠다며 떠나고
소녀는 섬에 혼자 남는다
그녀는 기다림 끝에
아비를 찾아 떠난다
작은 칼과 거울 그리고
숲에서 만난 할머니가 건네준 우산이 가진 전부
주인공은 돌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까








    집 한 채만 달랑 있는 바다 위 섬, 이곳에 여자아이 한 명이 밤마다 창가에 촛불을 밝히고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아빠가 어느 날 문득 사람을 돌로 만든다는 거인의 소문을 듣고 그를 물리치기 위해 떠나버린 뒤, 소녀는 망가져버린 것을 고치며 시간을 보고 있습니다. 저녁에는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이야기를 걸고 잠이 듭니다. 아무래도 상관없을 바다 건너 먼 곳의 몹쓸 놈을 처리해 보겠다며 떠난 아빠는 공상에 빠진 허풍선이 남자아이 같건만, 주인공은 오히려 현실적이고 이성적입니다. 아이의 자리는 시종일관 바다가 내다보이는 창 앞입니다. 홀로 남을 것을 개탄하며 침대에 파묻혀 우는 모습은 전혀 없습니다. 심지어 잠자리 들기 전에도 오히려 다짐하듯 한 번씩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과 거인에 대해 생각하지요. 바깥세상을 곁눈질하는 일도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점검하는 일도 부지런히 해내는 소녀는, 그래서 오히려 아비보다 현실적이고 지혜롭습니다.





바라봄은 여지를 두는 행위이다



   나 홀로인 듯해 맥이 빠지고 서글플 때 사람의 마음은 위축됩니다. 그러한 기분이 들면 에너지가 안쪽으로 향하게 마련이지요. 감정이 가라앉고 부정적인 생각이 넘칩니다.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동함에 있어 시야가 좁아지며 어리석어집니다. 그런데 [거울을 든 아이]의 주인공은 낮에는 창밖을, 저녁에는 거울을 바라보았으며 불을 밝히고 아비를 기다립니다. 거울 속 자신에게 말을 겁니다. 망가진 것들을 고치면서도 주의를 바다를 향해 기울인 채입니다. 그렇게 주인공은 여지를 둡니다. 유일한 가족이 돌아올 것에 대한 기대와 내가 그를 찾아 나설 수 있다는 양쪽의 가능성 모두에 대하여.


아이가 망가진 물건을 손보며 바깥세상을 탐색하는 기간은 어찌 보면 출정을 준비하는 과정처럼 느껴집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결국 바람을 읽고 파도를 배우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저녁마다 거울을 통해 자신에게 잘 자라 다독이는 의식은 소녀가 자신의 성장과 단단해짐을 읽어내고 현재의 형편을 정리하는 과정이 되었고요. 그렇게 여자아이는 자신을 다듬고, 칼을 날카롭게 벼리고, 거울을 맑게 닦아내며 때를 기다립니다. 이렇듯 갈고닦은 거울은 최종 장에서 그녀의 무기가 되어 자신과 사람들을 구하게 되지요.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세상에 달랑 나 혼자라도, 아예 넋을 놓지는 말자는 생각이 듭니다. 손에 잡히는 것들을 손보며 가다듬자, 포기하지 말자고요.






멈추지 않았더니 만나게 되었다



양초가 다 되어 촛불이 꺼지고 암흑이 찾아오자 아이는 거울과 칼을 들고 걸어 나갑니다. 컴컴해도, 바닥이 보이지 않아도 칠흑 같은 바닷속으로 걸어 나가지요. 길에 시작이 있으니 끝나는 지점도 있기 마련이라, 어린아이지만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바다가 끝나고 해안가에 올라서 희미한 길이 보였을 때에도 멈추지 않습니다. 그렇게 계속했더니 우산을 깁는 할머니가 사는 집에 도달합니다. 이런 모험 이야기에는 길잡이 겸 도우미 역할의 등장인물이 클라이맥스 직전에 안배되기 마련이지요. 노인이 소녀의 손에 쥐여준 것은 우산 한 자루입니다. 우산은 거인과 맞닥뜨렸을 때 잠시의 시간을 벌어주고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 방패의 역할을 하지요.


이렇듯 내가 나의 것을 가꾸고 준비하더라도 타인과의 연결 그리고 인연에서 오는 돌봄의 조각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순간의 돌봄, 찰나의 보살핌의 효과는 우습게 볼 수 없게 결정적입니다. 사람들을 돌로 만드는 것은 거인과의 '눈 맞춤'입니다. 어찌 보면 거인은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하는 부정적인 평가와 두려움의 화신일지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거인의 흔적이 남아있는 땅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것이 다 시들어 버렸고, 죽어"있었던 것처럼 부정적인 시각과 두려움은 자아를 말립니다. 종국에는 무엇도 원치 않고 무엇도 시도하지 않도록 정동의 상태로 만들어 버리지요. 이처럼 인간은 타인의 호의에 살아나기도, 악의에 적막한 대지처럼 스러져 버리기도 합니다.





거울이 살린 이와 죽인 이



    거인이 등장하자 소녀는 우산을 펼쳐 듭니다. 그리고 작은 로 구멍을 내지요. 우산은 장막처럼 거인으로부터 소녀를 보호할 뿐 아니라 소녀가 거인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시야와 초점을 모아줍니다. 완전히 열린 공간에서는 거인의 눈빛에 노출될 수밖에 없지만 큰 우산 아래에서 작은 구멍 외에는 거인의 눈빛이 통과할 구석은 없습니다. 그리고 소녀는 거인의 눈을 보는 게 아니라 거인에게 아쉬우면 네가 여기를 보라고 하지요. 구멍에 거울을 가져다 댄 채로요. 마침내 틈새에 눈동자를 들이민 순간 거인 역시 돌이 되어버립니다. 이 모습은 정작 비판과 비난을 외부로 쏘아 보내길 즐겨하던 이들이, 스스로의 티끌만 한 흠결에 면역이 없어 넘어지는 것의 비유처럼 느껴집니다. 자신을 정확히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긴 시간에 걸쳐 조금씩 노력하고 훈련하며 이뤄지는 일이기에,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괴물은 처음으로 직면한 자신의 모습에 돌이 되고 맙니다.


거울은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비춰내어 직면하게 해주는 도구입니다. 소녀는 매일 거울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며 참다운 자기의 모습을 조금씩 인식하며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거인은 매서운 눈빛으로 생명체들을 돌로 굳게 만들며 저가 힘이 세다는 착각을 부풀려 가기만 했을 뿐, 스스로를 들여다볼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라도 스스로의 약함과 어두움을 불시에 마주하면 자신 같지 않아 당황하고 불쾌할 것입니다. 자신이라 인식하고 있던 나와 거울이 비춰 준 낯선 모습 간의 균열은 불안함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지요. 거인 역시 그랬습니다. 객관적인 제 모습이 눈에 들어온 순간 그대로 '굳어버립니다'. 결과적으로 타인의 한 뼘의 호의와 내가 다듬어 온 작은 무기들로 소녀는 가족을 찾았고 그녀 스스로를 구했으며, 그녀와 마주한 모든 이 역시 구원받습니다. [거울을 든 아이]에서 유일하게 거울로 인해 죽임 당한 존재는 자기 인식과는 인연이 없던 거인 뿐입니다.






칼 융의 페르소나와 그림자

Carl Gustav Jung(1875년 7월 26일 - 1961년 6월 6일)



    아이가 발휘한 용기는 아주 작은 성실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망가진 것을 고치고 돌보고 거울을 들여다보았지요. 이 반복된 순간이 쌓여 힘이 되고 지혜가 되었습니다. 심리학자 칼 융은 모든 이가 페르소나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고 했어요. 페르소나는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으로 진정한 나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리스 고대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뜻한 단어에서 시작되었으니 사회생활 수행을 위해 역할에 맞춘 모습, 이렇게 이해하셔도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림자는 우리의 무의식에 자리한 어두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지요. 융은 페르소나를 자신의 참모습으로 여겨도, 아예 청산할 대상으로 생각해도 문제라고 했습니다. 또한 무의식의 그림자로 인해 '투사'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게 되었을 때의 문제점을 알렸지요. 두 가지가 자아에게 절대 악인 것이 아닙니다. 쉬운 말로 모든 것이 나의 일부인 것입니다. 융은 페르소나와 그림자 모두를 자신의 일부로 수용하게 되었을 때 인격의 성숙에 다가서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자기가 되어가는 과정은 균형 잡기와도 비슷합니다. 소녀가 바다를 바라보며 바깥세상을 이해 페르소나는 주변 환경과 내면세계를 이어줍니다. 거울을 비추며 혼잣말로 ' ' 인사한 아이처럼 내면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는 어두움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인정하는  역시 필요합니다. 내가 부족한 존재임을 알고 받아들인 사람은 실은 강한 이입니다. 약함 때문에 그는 열려 있고, 도전하고 교류합니다.  여정은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되는 가치 있는 일이지요. 쉽지 않지만 참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갈수록, 온전해질수록 배려하고 어우러지기 쉽게 되며 매사 자유로워집니다.  동화는 짧은 이야기이지만 아이들만 읽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깊은 인생의 비밀을 활자 밑에 묻어두고 있어요. 당신의 생활 반경에 해야  일과 성취한 것들, 자랑스러운 트로피만 넘쳐난다면, 어수선한 방을 뒤져 먼지 쌓인 거울을 찾아내기를 바랍니다.






Vēritās līberābit vōs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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