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저 탈출할 구실이 필요했을지도...
"저.. 부장님, 점심먹고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습니까?"
회사 점심시간에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최 부장님에게 처음으로 면담요청을 했다.
최 부장님은 의외라는 표정을 잠시 짓더니 이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1년의 회사생활.
첫 출근을 했던 날이 떠올렸다.
"우리 애들 비록 지금 작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 바닥에서는 아주 날고 기는 애들이다. 너도 곧 그렇게 될거다."
이 말이 왜 나는 갑갑했을까?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서? 기계과를 졸업한 내가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
그래서였을까?
나는 회사 내의 모든 일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마치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이미 한번의 퇴사의 경험이 있는 나에게 또한번의 퇴사는 마치 인정하게 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사회 부적응자가 아닐까?
어느 날 회사로 출근하는 모습을 여동생에게 들킨 날이 있었다.
집에서 회사까지 거리는 걸어서 20분이 걸렸고, 동생은 자가용을 타고 출근을 했다.
아마 자신의 차에서 내가 출근하는 모습을 봤을 것이다.
"왜 그렇게 구부정하게 걸어다녀?"
구부정? 전혀 알지 못했다. 회사로 출근하는 내 모습이 마치 임종을 앞둔 노인과 같은 모습이었다는 것을.
허리를 거의 90도로 숙여 회사를 향한다는 것을.
회사에서 나에게 내려진 목표는 1년동안 하나의 프로젝트를 끝내는 것이었다.
내가 입사할 때 회사는 그렇게 잘나가는 회사가 아니었고 받아오는 일도 그렇게 많지 않았던 듯 했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동안 회사는 급격하게 성장했고, 1년 동안 나는 44개의 프로젝트를 완료했다.
성과급도 상당했다. 월급보다 보너스가 훨씬 상회했으니.
하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일요일 오후부터 심장이 미친듯이 빨리 뛰기 시작했고, 다가오는 월요일 아침이 두려웠다. 지구가 멸망한다면? 아니 그냥 내가 죽어버리면 끝나나?
하루는 2시간 동안 메일 보내기 버튼 위에서 머물렀던 적이 있다.
이미 작성을 완료한 설계도면을 거래처에 넘기는 일만 남겨놓고 있던 시점에 메일 보내기 버튼을 누를지 말지를 2시간 동안 고민했다.
이 회사는 메일을 공동으로 사용했고 내가 작성한 메일은 사수가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수는 내가 보내는 메일을 체크하고 자신의 자리로 불러서 꼭 한가지 씩 트집을 잡고 내가 얼마나 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인지 나같은 존재를 회사에서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것에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를 꼭 확인시켜 주었다.
마우스의 '딸깍' 한번이면 메일은 거래처로 전송이 된다. 그런데 그렇게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더라.
이런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인생은 이런 인생인가?
역시 나는 사회 부적응자인가?
그렇게 나는 퇴사 전까지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야근을 밤 11시까지 하고서야 퇴근을 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 업무를 시작하기 전 최 부장님이 나를 불렀다.
"준호야, 여기 앞에 카페에 먼저 가 있어라."
그렇게 사무실에서 나와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어떻게 말해야 하지? 그냥 그만두지 말까? 집에서는 나를 뭘로 볼까? 이게 잘하는 짓인가?
담배연기가 가슴을 쓸고 밖으로 내뿜어질때 이내 침잠해질 수 있었다.
그래, 역시 이건 아니다.
그렇게 1년의 회사생활은 종지부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