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거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왜 없지?
그래서 이제 플랫폼을 만들기를 시작했냐고?
아니다. 아직 멀었다.
이런 긴 여정을 떠나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일이 많다.
이제 새로운 길을 떠나기 위해 몸과 체력을 만들었으니 어떤 플랫폼이 좋을지 결정해야 했다.
바디프로필 촬영 이후 나는 친구의 사업을 돕고 있었다.
식당이나 공장에 환풍기기 덕트를 설치하는 일이었다. 한마디로 노가다.
오전에는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는 러닝크루를 향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러닝이 전국민의 운동은 아니었다.
모여서 달리는 행위 자체를 욕하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동경의 대상이었다.
실제로 그냥 로드에서 관심을 보이고 가입을 신청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 였으니.
나는 주 5회는 저녁에 러닝크루와 함께했다. 이런 열정에 크루장이 나에게 운영진으로 들어 올 생각이 없냐고 물었고,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러닝크루에서 내가 하는 역할은 러닝크루원들의 한달 러닝거리를 집계해서 월말에 발표하는 것이었다.
20km를 채우지 못한 회원은 탈퇴 혹은 1만원의 벌금을 내야 했는데 웬만하면 벌금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내가 러닝크루에서 하는 일이 즐거웠다. 크루원들의 러닝 거리는 카톡에 올라왔고 나는 그것을 일일히 확인하여 엑셀을 만들고 회원들의 러닝거리를 그래프로 나타내는 작업을 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크루원 사이에서 랭킹을 나타냈다.
2년동안 이 작업을 하면서 새로운 회원이 누가 들어왔는지, 누가 이번 달에 열심히 했는지, 누가 이제 슬슬 러닝을 멀리하는지 한번에 알 수 있었고 회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러닝크루에서의 나는 사회에서 필요한 일원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월말에 발표하는 월간 러닝거리 집계를 기다리는 회원이 늘어났고 여기서 사회적 인정을 받는 기분이었다.
이 경험은 '회원들의 기록을 관리하는 모임 앱'을 만들면 수요가 많겠는데? 하는 생각으로 귀결되었고, 언젠가 이 앱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내가 코딩을 전혀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일단은 코딩을 공부해야 했다.
대학 때 코딩에 살짝 발을 담근적이 있다.
책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주황색의 두꺼운 코딩 책을 샀다가 이진법이 나오자마자 책을 덮었다.
프로그래밍을 하려는데 이진법부터 배워야 해? 어처구니가 없었다.
마치 피아노를 배우러 갔는데 피아노 뚜껑 여는법, 피아노의 재질, 피아노의 역사부터 공부시키려는 것 같아 거부감이 상당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코딩을 공부해야 했다. 다행히 이제는 유튜브에 코딩에 대한 강의가 상당히 많이 올라와 있었고 그렇게 코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무작정 그들의 강의 따라하기 시작했다. 이진법이라던지 최초의 컴퓨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공부하지 않았다.
피아노로 치면 바로 피아노를 치는 방법부터 공부한 것이다.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자리도 모르는 사람에게 엘리제를 위하여를 한달동안 치라고 하면 칠 수 있을까?
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자연스럽게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자리를 알게된다.
내 공부 철학은 여기에 기반을 뒀다. 무조건 프로그래밍 언어를 타이핑을 하면 자연스레 기초적인 부분은 공부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의 전략은 100프로 맞아 떨어졌다.
코딩 공부하는데 이진법? 최초의 컴퓨터? 이딴 것은 몰라도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나에 한해서는 이랬다. 반박시 님말 맞음)
코딩에 몰입할 수록 노가다와 러닝크루를 나가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리고 나는 이 2가지를 동시에 그만두었다.
그렇게 온전히 하루종일 코딩을 공부했고, 저녁에는 헬스를 시작했다.
러닝으로 뼈말라가 된 몸을 벌크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준호, 이제 물질적인 시대는 끝났다. 창작의 시대가 시작된 듯 하다. 나는 웹소설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