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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후 Aug 06. 2021

신이 떠난 세상에서

우연처럼 다가온 인연의 단어, '모크샤'

'과제는 이미 학교에서 끝내고 왔으니까 이제 쉬면 되겠다. 하아, 배고픈데 먹기도 귀찮네.'


집으로 돌아와보니 벌써 저녁이었다.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에 침대에 벌렁 드러눕자, 머리맡에서 딱딱하고 두꺼운 책이 느껴졌다. 이불속에 반쯤 파묻혀 있는 그 두툼한 책의 이름은 <금강경 강의>. 내가 하도 스위스에서 사는 것이 힘들다고 궁시렁거리니까, 어느 고마운 지인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었다.


한글로 된 책을 만나기가 어려웠던 환경 탓이었는지, 나는 그 두꺼운 책을 그만 열 번도 더 넘게 읽어버리고 말았다. 살면서 정독하게 되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책이었는데, 읽을수록 마음에 새기고 싶은 것들이 새롭게 보이는 게 신기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항상 머리맡에 두고 자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책을 몇 장 넘기며 익숙한 구절들을 읽다가, 밑줄을 그은 문장에 눈이 머물렀다.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則見如來).

"무릇 모든 상은 다 허망하니,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본다면 여래를 보리라."

(…) 이 구절의 중심은 이렇습니다. 부처는 우리에게 단지 모든 상은 상이 아님을 말할 뿐, 결코 공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치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머무는 바가 없는(無所住) 것에 있습니다.

- <금강경 강의>, 남회근 지음, p.148 -149.


'흠, 내 마음은 항상 너무 머물러 있어서 문제지. 맨날 상에 집착하니까 이렇게 스트레스를 만땅으로 받고. 에휴, 어리석은 속세인 같으니라고, 쯧쯧. 라면이나 끓여 먹어야겠다.'


결국 배고픔에 못 이겨 일어나서 너구리를 끓이며 유튜브를 자동 재생해 놓고, 작은 냄비 앞에 섰다. 이런저런 영상들이 넘어가더니 왠일인지 다큐멘터리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모건 프리만 아저씨가 뭐라고 말씀하고 계셨다. 들어보니 신과 초월적 존재, 그리고 윤회에 대한 내용인 것 같았다.


내셔널지오그래픽스 다큐멘터리, 'Beyond Death', The Story of God with Morgan Freeman


(대충 간추린 해석)


인도에 간 모건 프리만 아저씨:

"결국 궁극적인 목표는 '윤회를 하지 않는 것'이라는 거죠. 가장 완벽한 상태는 육체적인 형상에서 자유로워져서 순수한 에너지의 형태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생을 초월한 진정한 자유의 경지, '모크샤'라고 불립니다."


모크샤라는 단어를 듣자, 순간 내 머릿속에 꿈에서 본 <스크룬하이>의 모습이 스쳤다. 내가 기억하는 그는 오랜 고통을 감내한 끝에 완전한 자유를 이룬 신성한 존재이자, 형상의 틀에 얽매이지 않기에 모든 세상 만물에 깃들 수 있는 이였다. <금강경 강의>에서 나온 말로 표현하자면, 그는 '머무는 바가 없었다'.


'오오, 어쩜 이렇게 딱 맞는 단어가 찾아왔을까?'


모건 프리만 아저씨가 나오는 동영상을 넋 놓고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 알고리즘이 나를 그 동영상으로 이끌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문화 탐방이면 몰라도, 사실 종교에는 크게 관심도 없던 터라 이런 영상을 찾은 적이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동영상이 끝나니 다시 뮤직 비디오 같은 것들이 자동 재생되었다.


라면을 먹으면서 일단 수첩에 모크샤라는 단어를 적어 놓았다. 생과 사를 초월한 자유라는 뜻. 어감도 좋고,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궁금증이 들었다.


'<스크룬하이>도 엄청난 변화와 기적의 주인공인데, 도대체 그가 모크샤가 되기까지는 어떤 깨달음을 얻어야 했던 걸까? 생과 사를 어떻게 초월하지?'


꿈에서 얻은 영감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였으나, 서문 이후부터는 굵직한 스토리 라인 아래로 구체적인 세계를 그려 나가야 했기에 조금 고민스러웠다. 기적과 자유, 깨달음. 과연 내가 이런 커다란 소재들을 품은 이야기를 풀어 나갈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때, 침대에 기어 들어가서 다시 펼쳐 든 <금강경 강의>를 보며 깜짝 놀라고 말았다.

(…) 사람은 모두 생사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생사를 초월할 수 있을까요? 저는 여러분께 한마디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래 생사는 초월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을 알면 비로소 생사를 초월할 수 있습니다.

- <금강경 강의>, 남회근 지음,  p. 185


'와, 하필이면 또 생과 사의 초월에 대해 나오네? 이런 타이밍에 이 구절을 만날 줄이야. 소름 돋네.'


우연이 반복되면 인연이라고 하던데. 아마도 나는 그때부터 새롭게 탄생할 이야기와 인연을 만들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꿈속에서 만난 <스크룬하이>를 '모크샤'라고 부르기로 한 그날, 나는 밤을 새하얗게 불태웠다. 그가 들려준 모험의 이야기를 담을 새로운 세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다듬어보기 위해.


'흠, 꿈 내용의 줄거리만 써놨더니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 이보세요, 모크샤님. 좀 더 자세히 보여줘 봐요. 그대의 이야기를 제대로 써 볼테니.'


우스갯소리처럼 생각한 것이지만, 어느정도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정말 내 머릿속에는 <스크룬하이>의 이야기가 펼쳐지던 세상의 모습이 더 자세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그와 만났던 그때의 꿈으로 다시 돌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아래는 그때의 메모를 토대로 적어본, 이야기 속 세상에 대한 짧은 소개다. 앞으로 <스크룬하이>의 전설을 이끌어갈 주인공인 '보리얀'이 살아가는 세상이자, 인간의 세상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존재들이 사는 곳이다.


1. 그들의 세상에 대하여

구름 섬 '겔리쉬온'과 대양 '샤', 그리고 추락의 전쟁 이후의 세상


신은 떠났다.


본래 신의 사랑을 받아 창조된 신성한 존재였던, ‘에린’. 그들의 터전은 구름 섬 겔리쉬온이었다. 하지만 ‘추락의 전쟁' 이후, 세상은 대양 위에 떠 있는 갈라진 땅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 커다란 전쟁 이후, 신은 떠나며 남은 에린들을 위하여 지혜의 존재 ‘모크샤’와 절제를 배우게 하는 ‘마라트’를 내렸다.


마라트는 거대한 대양에 늘 존재하는 기운이며, 모크샤는 중앙에 있는 섬의 분화구에서 천 년에 한 번씩 탄생하는 존재다. 그런데 어떤 불미스러운  때문인지, 이천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모크샤는 세상에 출현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균형을 잃은 마라트의 기운까지도 괴이하게 뒤틀려서, 결국 대양 '샤'의 생물들은 거의 괴물로 변해버렸다.


지혜와 균형의 빛, 모크샤가 없는 혼란스러운 세상에는 검모술수와 탐욕이 넘치는 권력의 지배가 계속된다. 그런 혼돈의 시대 속에서 태어난 선장의 딸, 보리얀. 항해의 꿈을 키우던 그녀는 세상의 어두운 진실을 파헤치는 위험한 모험을 시작한다. 


마라트의 괴물들과, 그보다 더 괴물 같은 기득권을 가진 위선자들 사이에서, 보리얀과 그녀의 여정을 함께하는 이들은  어떻게 모크샤를 깨우는 기적을 이룰 수 있을까?  


2. 신이 떠난 후, 세상의 지도 (전체)



우리들의 세상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에린들의 세상. 그 속에서 <스크룬하이>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보리얀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다음 글에서부터는 보리얀에 대한 신나는 본문털이가 시작된다. 물론, 그녀고향 '자일리아샤'를 떠올리는데 큰 영감을 준, 취리히 호수에서의 추억어린 풍경 함께.


다음 글: 취리히 호수에서 태어난 첫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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