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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후 Sep 15. 2021

"…너, 내가 보여?"

기가 허해지면 일어나는 일

'골골 백세라더니, 나는 아마 백이십 살까지는 살겠구나.'


6월의 어느 날. 나는 그만 몸져눕고 말았다. 다른 글도 아니고, 꼭 <스크룬하이>의 이야기를 쓸 때만 이상하게 몸이 많이 아팠다. 글을 쓰던 중 갑자기 몸에 열이 많이 올라서 마치 감기 몸살에 걸린 증상도 나타났다가, 너무 극심한 두통이 찾아와서 도저히 집중하기 힘들 때도 있었다. 


잠시 쉴 때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 조금 나아졌지만, 참 희한하게 소설을 집필하려고 자리에 앉으면 육신에 이상이 생겼다. 내가 좋아서 쓰는 글이었고 별다른 외부적 스트레스도 없었는데, 도대체 그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스크룬하이>에 관련된 테마 곡들을 만들다가는 한쪽 귀가 안 들리는 바람에 병원에 가야 했다. (급성으로 찾아온 저음성 난청이라고 진단받았는데, 다행히 약을 먹고 나았다.)


'허어, 혹시 내 몸에 무슨 문제라도…?'


아직 건강 검진을 받을 때는 아닌 것 같아서 지켜보았다. 다른 일들을 할 때는 정말이지 멀쩡 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주말,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는 열심히 글을 쓰다가 도저히 몸이 견디지를 못할 것 같아서 침대에 잠시 누웠다. 밤에 항상 정신 사나운 꿈들을 꿔서 잠을 자지 못했던 탓에 잠시 눈이라도 붙일까 해서였다. 


눕고 나서 한 오분쯤 있었을까? 잠에 들기는커녕, 정신은 아주 멀쩡했을 때였다. 갑자기 온몸이 추워오기 시작했다. 한 여름에 느끼는 한기라니,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귀찮아서 일단은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오슬오슬하게 몸을 덮쳐오던 그 느낌은 자꾸만 더 강해졌다. 이불이라도 덮을까 하여 몸을 움직여 보려고 한 그 순간, 내 몸이 평상시 같지 않음을 느꼈다. 


눈도 뜰 수 없었고, 숨은 점점 조여 오는데 얼어붙을 것 같은 한기에 몸이 덜덜 떨렸다. 그리고 귓가에 웅웅 거리는 듯한 이상한 소리들이 마구 지나가기 시작했다. 설마 이것이 말로만 듣던 가위눌림인가, 생각하여 일단 손가락 끝이라도 움직여 보려고 했다. 언젠가 가위눌림에 대한 과학적인 원인에 대해 읽었던 탓에 별로 무섭지는 않았다. 


그래서 일단 호흡부터 조절하며 어떻게든 움직여보려고 애썼다. 손가락 먼저 슬쩍 움직일 수 있었고, 그것에 힘입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눈을 뜬 순간, 내 몸 위에 있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그냥 눈 뜨지 말걸 그랬나.'


(독자님들의 눈 보호를 위해 많이 순화하였다.)


난생처음 보는 괴기스럽게 생긴 에너지 덩어리 같은 것이 나를 누르며 노려보고 있었다. 무섭다는 생각도 들기 전, 그저 상황 자체가 생경하여 눈만 끔벅거렸다. 내가 저게 뭘까, 하는 눈으로 멀뚱멀뚱 쳐다보자, 그 이상한 것도 나를 계속 노려봤다. 


그것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엉뚱하게도 이러했다. 팔이 여러 개네. 혹시 인도에서 왔나? 나는 궁금증을 가지고 계속 그것을 관찰하듯이 쳐다봤고, 그것은 뭔가 굉장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그러더니 내가 모르는 언어로 몇 가지 저주의 말을 퍼부었는데, 희한하게도 그 뜻이 뭔지를 알 수 있었다. 


아직도 그게 무슨 언어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나는 그 저주들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창의적인 욕이나 저주라면 우리말인 한국어로도 찰지게 갈겨(?) 줄 수 있으니까. 아무튼 나는 이런저런 말로 되갚아 준 다음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끝까지 그 괴기스러운 것을 응시했다. (그때보다 조금 순화된 말로 표현한 것이다.)


'귀신이면 꺼져라 이 못생긴 놈아. 죽여버린다.'


그 알 수 없는 것이 꺼지라는 말에 상처를 받았는지, 못생겼다는 말에 상처를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두 눈을 부릅뜨고 있자 그것은 서서히 흩어지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나는 '죽여버린다'는 표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만약 귀신이면 이미 죽은 것 아닌가? 혹시 귀신도 죽여버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걸까? 뭐가 됐든 저 놈이 안 없어지면 내가 어떻게든 박살 내야지, 등등. 


팔이 여덟 개 정도 달려 있던 그 팔척 귀신이 사라지고 난 후에야 숨이 다시 쉬어졌다. 몸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때까지 눈을 뜨고 있었기에 눈이 좀 뻑뻑했다. 막상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나니, 대낮인데도 갑자기 무서움이 (그제서야)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집안을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렀다. 


"으어어어 귀신 봤어어어~~~!!"

나중에 부모님과 아는 분께 이 사건을 말씀드리니, 기가 허해져서 그런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녹용을 먹으라는 조언을 듣기도 했다. 원체 살아오며 희한한 꿈도 많이 꾸었고, 꿈에서는 귀신같은 이상한 것들을 종종 본 적이 있어서 별로 큰 일도 아니었지만, 생생히 눈을 뜨고 있을 때 이렇게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 팔척 귀신 사건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돌이켜보니 참 쉬운 것이 없었다. 진로 걱정 등 현실적인 문제도, 이렇게 귀신을 보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문제도 모두. <스크룬하이> 집필을 완성한 것 자체가 그저 기적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다. 아무튼 이렇게 하루하루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걸 지켜보고 있는 부모님께서도 당연히 힘드셨을 것이다. 그 마음을 생각하면 그저 송구스러울 뿐이다.


4권 분량 원고 쓰기, 퇴고하기, 다시 쓰며 내용 수정하고 오탈자 보기, 80개가 넘는 삽화 그리기, 영상 제작하기, 작곡하기, 책 디자인 하기, 더미북 제작하기 ….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욕심을 부려 이 모든 걸 다 했으니 탈이 안 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귀신이 보였던 게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신기하게도 난 아직 살아있다. 

아직도 골골거리기는 하지만.



다음 글에서는 첫 번째 더미북을 만들며 있었던 일화에 대해 잠깐 소개해 볼까 한다. 그 또한 만만치 않은 모험이었는데, 더미북 인쇄소에서는 내 디자인대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다며 퇴짜를 놓았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수요일에는 생판 모르는 인쇄소를 찾는 과정부터 완성된 더미북을 손에 들어보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로 돌아오겠다. 


(사랑하는 독자님들^^ 수/금요일에 찾아뵈었던 '작가는 책을 글로 쓰지 않는다'의 연재는 당분간 수요일에만 찾아 뵙겠습니다! 바쁜 일들이 마무리 되면 다시 금요일에도 찾아 뵐 수 있었음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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