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흐르는 작업

'저기 우리 대화 좀 할까' 작가와의 만남 후기

by 유림
IMG_2435.JPG 작가와의 만남


작은 도서관 '함께 크는 우리'에서 2022년 독립출판 도서로 만든 '저기, 우리 대화 좀 할까'로 작가와의 만남을 했다. 상자에 갇혀 오래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30권의 책과 후원으로 운영되는 함크가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다, 책 기증을 선택했고 기증된 책의 판매금액을 함크 운영에 사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작가와의 만남을 하게 되었다.


작가와의 만남을 준비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저기, 우리 대화 좀 할까⌟는 책으로 만들기 위해 기획된 작업이 아니었다. 바로 요 지점이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았다. 나의 예전 기록들을 찾아보면서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2014년 내 안의 말에서 2015년 글과 그림으로 표현되고, 2018년 책, 그림, 입체, 설치, 전시로 표현되고, 2022년 독립출판 도서로 표현되는 여정을 그려보았다. 중간에 긴 멈춤도 있었고, 많은 분들의 도움도 있었다. 마음에만 담고 있었더라면 전달되지 않았을 감정들이 글, 그림, 입체, 설치, 책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져 다른 이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이었다.


⌜저기, 우리 대화 좀 할까⌟는 완성됨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 최대한 하나의 결을 만들기 위해 다듬고 버리고 넣어보고 했지만, 처음 만든 글과 그림의 형태를 완전히 벗어나기란 어려웠다. 그래서 나의 손으로 내 마음대로 마무리할 수 있는 독립출판으로 완성함이 적합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고 이후로 난 다음을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항상 '작업해야지'라는 마음을 품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두 겹의 대화를 그림으로 내놓고 완성된 형태로 만들지 못함에 나오는 말이었다. 그래서 전시로 마침표를 찍으려 했고, 책으로 마침표를 찍으려 했다. 모두 작업의 완성이 아니었다. 내 안의 말을 꺼내어 글로 쓰고, 그림으로 그리고, 전시로 보여주고, 책으로 전달하는 그리고 작가와의 만남까지, '과정', 바로 과정이 나의 '작업'이었다.


작가와의 만남은 전시와는 또 다른 교감이었다. 전시는 나의 느낌을 이미지로 전달해 관객이 이미지로 느끼다 간다. 이미지에 영감을 받은 관객 중 몇 명만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대부분 느낌만 전달받고 돌아간다. 작가와의 만남은 그보다 훨씬 밀착되어 있다. 감정과 생각들을 언어라는 도구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에너지가 융합된다. 나의 작업이 새로운 에너지가 되어 나에게 다시 돌아오고, 다른 이들에게 돌아간다. 그렇게 흩어졌다 모아졌다 흘러간다.


"너는 무엇을 했어?"를 묻고 답하며 결과를 내는 게 중요한 시대이다. 그래도 나 어릴 땐 "과정을 즐겨", "과정이 중요해"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때뿐이야"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요즘 아이들을 보면 그때뿐이었던 과정 즐기기도 없어지고, 오직 좋은 결과만 기대하고 요구받는 것 같다. 그렇게 결과로만 생각하다 보면, "넌 뭐가 되고 싶어?"라는 질문이 등장하고, 답을 생각하다 보면 꼭 무엇이 되어야 할 것만 같은 은근한 압박이 있다. 내가 그림을 그릴 때 그랬다. 뭔가 남들이 보기에도 수긍할만한 대단한 완성된 형태를 만들고 싶었다. 완성된 형태, 완성된 결과물, 여기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작품. 그리고 그런 형태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작가라 배웠고,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이제는 꼭 '좋은 결과'만이 작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감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았기에, 또 다른 형태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고정된 형태로 규정하지 않는다. 이런 깨달음은 나의 아이에게도 말해 줄 수 있다.


"지금 감정이 어때? 무슨 느낌이야? 그럴 땐 어떤 마음이 생겼어? 어제는 그랬는데, 오늘은 또 달라질 수 있어. 내일은 어떻게 변할까? 변하지 않을까? 네가 그렇게 느낀다면 그게 맞아. 널 믿고 지금을 즐겨."




작가와의 만남에 마무리 말을 잘 전달하기 위해 종이에 적어서 보고 또 보고 했다. 막상 말하다 보니 뒤죽박죽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신기한 건,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분들이 모여서 그런지, 어리숙한 나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주셨다. 너무나 감사하다.


"그동안 주변 친구들이 새로운 날개를 달고 날아갈 때, 저는 여전히 혼자 작업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나는 뭐 하는 거지' '작업은 왜 하려고 하는 거지' '과연 이 작업이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만남을 준비하면서 정말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모든 과정, 처음 내 안의 말부터, 글과 그림, 전시, 책 그리고 지금 이 자리까지 모두 하나의 작업이었다는 걸요.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구나. 그리고 그 의미는 언제나 나로부터 출발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한 걸음이 있었기에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고, 때론 내가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른 채 걸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모든 걸음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와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지내다가 남편을 만나면서 '세상을 이렇게 다르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구나'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탐구하고,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을요. 누군가는 책으로, 누군가는 음악으로, 과학, 돈, 철학, 신앙, 직접 부딪히는 경험으로. 모두가 각자의 도구로 질문하고, 그 질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답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생각합니다. 그림, 음악, 문학만이 예술이 아니라, 내가 뱉는 말, 행동, 눈빛, 관계, 일상의 태도 그 모든 것이 창작이며 표현이지 않을까. 그래서 넓은 시야에서 보면, 나의 작업은 꼭 그림으로 한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꼭 이래야 한다고 규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내 안에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를 부여해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제가 새로운 작업이 완성된다면, 그때는 그림, 전시, 그림 에세이책이 아닌 다른 형태로 사람들과 만나게 되길 바랍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텀블벅 펀딩을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