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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보련 Apr 21. 2022

어머니의 도마

[첼로를 사랑하는 목수 - 목공6]

무언가 만들어내는 것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예쁘고 쓸모 있는 것이라면 받는 이의 입은 귀에 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목수는 마냥 흐뭇하기만 하다. 그러나 받는 이가 남자일 때는 반응이 시큰둥하니 주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도 방법이 있으니 남자의 어머니, 아내, 여자친구에게 줄 만한 것을 선물하는 것이다. 선물을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선물을 하는 기쁨을 주는 것이기도 하니 여럿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럴 때 줄 수 있는 것 중 최고는 역시 도마다. 도마가 없는 집이 있으랴마는 새로운 도마를 마다할 이는 없다. 게다가 결, 향, 색 모두가 좋은 도마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저 자르고 사포질하고 오일을 먹이면 되니 목공을 시작한 이들이 제일 먼저 만들어 볼 수 있는 것이 도마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도 없이 만들고 수도 없이 누군가에게 주곤 했다. 딱 한 집 빼고.


본가에 들렀더니 뒤틀리고 색이 바랜 도마가 보인다. 장가를 들 무렵까지 본 기억이 있으니 그 세월이 가늠이 된다. 수없이 만든 도마 중 하나가 왜 여기로 오지 않은 것일까? 누이와 동생한테, 사촌한테도 간 도마가 왜 여기는 오지 못한 것일까? 아들놈 키워봤자 다 소용없다. 새 도마 보내드릴 테니 당장 버리라고 해도 어머니는 막무가내다. 아직도 멀쩡한 걸 왜 버리냐는, 뒤틀려 끄떡대는 것만 잡으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데 왜 버리냐는 말씀을 이길 수 없다. 이미 당신의 일부처럼 느끼고 계시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어머니의 바람대로 손을 봐서 다시 쓰기로 한다. 너무 많이 뒤틀리고 패여 사포로는 평이 잡히지 않을 듯하니 대패를 꺼내어 든다. 한 꺼풀 벗겨내니 김치 냄새가 가득 퍼진다. 또 한 꺼풀 벗겨내니 나물의 풋내가 느껴진다. 비린내, 쉰내, 고린내 등등 흐르는 세월 동안 배어 있던 온갖 냄새들이 코를 자극한다. 찡그릴 일이 아니다. 그 온갖 냄새를 풍기는 것들이 도마를 거쳐 내 입으로 들어온 후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그 삶의 냄새를 맡으면 맡을수록 버리지 못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진다.


마구리의 갈라진 부분은 여전히 문제다. 음식물 찌꺼기가 스며들고 그 안에서 썩는다. 보기에도 안 좋지만 위생상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잘라내자니 도마가 너무 짤막해진다. 배추 한 포기를 온전히 올리고 자를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길이가 안 나온다. 아니 ‘아이고, 삭신이야’ 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원이 불분명한 ‘삭신’은 왠지 ‘삭은 몸뚱이’란 느낌으로 다가온다. 쑤시는 삭신을 주물러서 달래기는 해도 잘라내는 일은 없다. 


메꾸고 때워서 어떻게든 본래의 크기와 모양을 살려 본다. 나무야 자르고 붙인다 해도 사람의 몸은 그럴 수 없는 법, ‘아이고 삭신이야’라는 말이 내 입에도 붙기 시작하면서 더더욱 실감하게 된다. 몸뚱이, 터럭, 살갗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身體髮膚受之父母), 다시 받을 수 없으니 이생에서는 어떻게든 달래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니 더더욱 그렇다. 어찌어찌해서 감히 훼손하지 않고 본래의 모습대로 살려 놓으니 키워봤자 소용없는 자식이 비로소 효도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 도마가 묘하다. 도마재로 흔히 쓰는 느티나무가 아니다. 요즘 인기가 좋은 편백나무나 호주산 캄포나무는 더더욱 아니다. 무늬나 결이 밋밋해 무슨 나무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도마재로는 최고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써 온 것 치고는 별로 패이지 않았으니 단단한 나무임에 틀림없다. 시험삼아 칼질을 해 보니 사각사각 썰기를 끝낸 칼날을 아주 부드럽게 받아준다. 무슨 나무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도마재로서 갖추어야 할 나무의 속성은 무엇일까? 요즘은 나무의 결, 색, 향을 앞 순위에 놓는다. 그래서 편백과 캄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그러나 도마는 눈으로 보거나 향을 맡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도마의 가장 중요한 용도는 ‘칼받이’이다. 칼을 잘 받아주되 튕겨내지 않아야 한다. 무른 나무는 칼을 잘 받아주지만 쉽게 패여서 못 쓴다. 단단한 나무는 잘 패이지는 않지만 칼을 튕겨내니 위험하다. 어느 한쪽만 선택해야 한다면 차라리 무른 나무가 낫다.


키워봤자 다 소용없다는 아들놈들은 어머니에게 어떤 도마재일까? 아무것도 모르는 젖먹이 시절에는 집요하게 엄마의 품속을 파고들더니 자기 세계가 생기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온몸으로 엄마를 튕겨내기 시작한다. 손길을 거부하는 것도 모자라 문을 쾅 닫고 들어가서는 발길도 거부한다. 엄마의 품을 떠나 어머니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어머니의 모든 말씀을 잔소리라며 거부한다. 도대체 사근사근하게 어머니를 받아들인 기억이 있는가?


평생 친구라는 따님들은 어머니에게 어떤 도마재일까? 어느 모로 보나 아들놈들보다는 낫다. 재롱이나 살가움은 나이가 들어서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가끔은 어머니의 잔소리에 서로 악다구니를 하지만 그 앙금이 오래 가지는 않는다. 출가를 해서는 주부로서의 어머니를 경험하고 출산을 해서는 엄마로서의 경험을 공유한다. 그러니 더 서로가 더 가까워진다. 그렇다고 마냥 받아주는 것만도 아니다. 세상 물정도 알아가기 시작하니 때로는 적당히 친구처럼 튕겨내며 받아들인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원하지 않더라도 적당히 받아내며 부드럽게 밀어낸다.


그래서 누이와 여동생이 고맙다. 어렸을 적에는 둘 사이에 끼여 왕따 아닌 왕따를 당했지만 지금은 왕따여도 좋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푸념을 오롯이 받아 준다. 너무 늦지 않게 찾아 뵙고 말동무도 되어 드린다. 어머니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그렇게 당신을 오롯이 받아주는 것인데 태생부터 단단하기 그지없는 아들은 흉내도 못낸다. 어머니는 막내가 아들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종종 내비치셨지만 그랬단 큰일 날 뻔했다. 보나마나 형 만한 아우가 되려고 한없이 단단하려고만 했을 했을 터이니.


말끔하게 고쳐진 도마를 들고 본가를 다시 찾는다. 어떻게 고쳤고 어떻게 쓰면 좋은지 조단조단하게 말씀 드리면 좋으련면 주방 한켠에 무심하게 던져 놓고는 모른 척한다. 그러고는 스스로 가증스러워 한다. 남들 앞에서는 편백이 어떤 나무이고 피톤치드는 뭐고 편백도마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도 떠들어댄다. 캄포 도마를 손에 들고는 이 나무가 제주도에도 있는 녹나무인데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듯 녹나무가 남태평양을 건너면 향과 무늬가 짙어지는 캄포가 된다는 스토리텔링을 늘어놓는다. 집에서는 말 한마디 안 하는 녀석이 과연 밖에 나가서 사람 구실이나 할까 걱정하셨던 어머니에게는 그것이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아내가 큰일 날 소리를 한다. 딸만으로는 부족한지 아들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왜? 당신 같은 아들을 낳고 싶단다. 나오는 웃음을 속으로 감출 수밖에 없다. ‘다행인 줄 알아, 나 같은 아들놈 없는 걸.’이란 말도 차마 하지 못한다. 나랑 똑같은 아들놈이 있다면 나는 절대 못 견딜 듯하다. 그 놈의 속이 훤히 다 들여다 보이니 더더욱 그렇다.


안도현 시인의 시 한 구절을 가짜 목수 마음대로 바꿔 본다.


뒤틀리고 패인 도마 깔보지 마라

너는

누군가의 칼을 한 번이라도 오롯이 받아들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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