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벗 ‘지’에게
지! 오늘도 바쁘고 알찬 하루를 보내고 있겠지? 딱 이틀 전에 만났다 우리!
우리 만남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너와 함께 가고 싶은 곳이 떠올라 이렇게 적어보아.
그곳이 어디냐면, 바로 러시아 동쪽 지방의 ‘하바롭스크’야. 그리 멀리 날아가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이국적인 풍경이 인상적인 곳이지. 특히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어서 네가 딱 좋아할 것 같아. 나는 가족들과 여름과 겨울에 각각 한 번씩 다녀왔는데, 여름과 겨울 모두 매력적인 도시야. 조용하고 편안함을 주는 그 도시의 느낌이 너무나 좋았어. 내가 그 도시를 떠 올릴 때 드는 감정이, 내가 너에게 느끼는 감정과 닮아있다 싶어. 그래서 만약 기회가 된다면 너와 함께 이 도시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지.
그때 기억하지? 우리의 ‘몰래 데이트’ 말이야. 봄바람에 마음이 살랑거리던 4월 어느 날, 우린 ‘급’ 떠날 계획을 세웠지. 바쁜 업무를 하나 끝냈다는 안도감과 봄기운이 만나더니 결국 우리를 일터 밖으로 떠밀어내고야 말았잖아. 누구도 주지 않는 눈치를 보며 조퇴를 내고, 접선 장소에서 조심스레 다시 접촉해 파주로 떠났던 날. 무작정 떠나온 길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채, 그 해방감에 그저 신이 났던 날.
길을 지나다가 괜찮아 보이는 까페에 들어가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지혜의 숲에서 한참 동안 책들을 구경하기도 했었지. 출판단지를 돌아보다가 ‘사유’라는 간판을 보고선, 평소 좋아하는 말이라고 꼭꼭 담던 네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 북스테이 하는 곳을 발견하고 우린 이거다! 하며 버킷리스트에 넣어두기도 했지. 너와의 시간들을 기억하다 보니 말이야. 요즘 자주 듣는 음악 이야기, 읽고 있는 책 이야기, 나이가 들어가면서 바뀌는 생각들, 고민스럽기도 다행스럽기도 한 일상의 면면들을 나누는 게 어색하지 않은 사람. 나에겐 네가 그런 사람이더라.
지! 만약 하바롭스크에 함께 가게 된다면 말이야. 아무르강변을 따라 걸으며 또 수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예쁜 성당 건물들 앞에서 누가 더 예쁜 곳을 많이 찾는지 내기를 할지도 몰라. 레닌 동상 옆에서 근엄한 표정으로 함께 사진도 찍어보고, 서점이 보이면 러시아어로 적혀있는 책들도 실컷 구경할 거야. 그러다 내가 책 몇 권 덥석 집어 계산대로 가면 네가 한 번쯤 말려보겠지. 예쁜 소품샵에 들어가서 서로에게 주고 싶은 소품을 고를 테고, 종이와 펜이 있다면 서로에게 짧은 편지도 쓰겠지. 오늘 저녁에 마실 맥주와 안주를 고심해서 고르다가 깔깔대며 웃기도 할 테고. 맛있는 음식점 몇 군데를 가 보고 또 가 보는 건 어떨까? 단골손님처럼 말이야.
마치 우리 동네인 것처럼 여유롭게 며칠쯤 하바롭스크에 머물다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자. 밤에 타서 아침에 내리는 그 기차표를 사는 거야. 나란히 침대가 놓인 우리만의 객실에서,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유쾌하게 곱씹어보다가 그만 말을 물고 스르륵 잠에 빠져 버리겠지. 그러다 문득 홀로 잠에서 깨면 커튼을 젖혀 창밖을 보길. 끝도 없이 보이는 평원을 가로지르는 그 기차를 타고 너만의 깊은 세상으로 잠시 또 다른 여행을 다녀와 보길. 그 새벽을 지금껏 잊지 못하는 내가, 너에게 꼭 주고 싶은 선물 같은 새벽이야. 너도 분명 좋아할 거란 생각에 벌써 흐뭇해진다.
직장 동료로 만난 우리지만, 정말 친구 사이가 된 건 말이야. 유일한 동갑내기라서였을까? 아니면 너무도 다른 성격 때문이었을까? 나랑은 참 많이 다른 너를 보고 있자면, 닮고 싶은 구석이 참 많은 녀석이란 생각을 해. 그리고 이렇게 다른데 너는 참 나를 잘 안다 싶어 안심되기도 하지. 항상 잔소리해 주어 고마운 친구야!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지!
내 마음속 하바롭스크에서는 이미 너와 내가 함께 걷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