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_중국에서 안중근을 만나다!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안중근을 만나다!


안중근의사의 의거와 순국의 현장을 가다!

하얼빈역 의거 그 현장을 바라보며.

투옥되어 끝내 처형되었던 여순 감옥을 걸으며.

사형 판결을 받은 여순관동지방법원 재판정에 앉아서.

“꼬레아 우라!(한국 만세!)”



[하얼빈역]

1909년 10월 26일 9시 30분경.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장소.

하얼빈 역사 한쪽편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이 마련되어 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크고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서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그 현장을 직접 바라볼 수 있다. 또 기념관 안에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와 관련된 여러 사진자료와 안중근 의사의 친필 유묵(사본)이 20여 점가량 전시되어 있다. 현장에서 이러한 자료를 살펴보며 안중근 의사의 우국충정을 느낄 수 있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깊은 여운에 젖어 들 수밖에 없다.



[대련 여순감옥]

러일 전쟁 이후 1907년 일본이 대련, 여순 지역을 점령하여 감옥으로 사용한 건물이다. 각 층마다 감방이 두 줄로 되어 있고, 복도 바닥 중간 중간에는 감시는 물론 통풍구 및 투광을 위한 시설이 있다. 삼면의 건축물이 서로 만나는 부분에 간수대를 만들어 동시에 삼면을 감시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 감옥에는 주로 정치범, 사상범과 경제범들을 수감했다고 한다. 그중 안중근 의사와 단재 신채호 선생도 있었다. 안중근 의사가 투옥했던 방이 표시되어 있어 직접 둘러볼 수 있었고, 안중근 의사의 순국 장소도 재현되어 있다. 그곳에서 안중근 초상을 마주하는 일은 마음이 무겁고, 눈이 뜨거워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찾지 못했다는 의사의 유해에 관한 이야기는 몸을 뜨겁게 만들었다.


[여순관동지방법원]

1906년 일제가 식민 통치를 위해 관동 도독부 산하에 만든 지방 법원과 고등법원이다.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여순 관내에 일본 육해군 형법, 국가 형법을 빌려와 재판권을 행사했다. 안중근 의사도 이곳에서 재판을 받았다. 여순 감옥에 수형된 뒤 이곳 대법정에서 6차례에 걸친 재판을 받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 당시 재판정이 보존되어 있고, 재판정 안에서 영상도 시청할 수 있었다. 마치 그 당시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곳에는 다양한 고문 도구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 보는 내내 마음이 힘들었던 곳이다. 상주하는 해설사가 있어 설명을 들으며 관람할 수 있었다. 중국인인 것 같았는데 능숙한 한국어로 정성껏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모습이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나선 길.

뜨거운 여름이었지만 마음이 서늘해졌고, 티 없이 맑은 하늘은 공허했다.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역사 귀퉁이에 동상으로 남은 채,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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