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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직은 기령 Mar 31. 2022

5인실도 1인실처럼 써 버리는 옆 침대 부부

다인실 병상에서 맞이하는 지옥 같은 출산 2일 차

 옆 침대의 은지 언니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어제 내 바로 앞 타임에 제왕절개를 받은 산모였는데, 내가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올라왔을 때는 이미 그녀가 말짱히 깨어 남편에 대한 정신적 학대를 시작한 뒤였다. 같은 병실에서 10분 정도 지난 뒤 나는 그녀의 이름과 그 남편의 이름, 시부모님이 캐나다에 계신다는 것과 남편의 국적 또한 캐나다라는 것, 시이모들이 한국에 세 분 계신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알게 되었다. 얇은 병원 커튼 너머로 울려 퍼지는 그 둘의 대화가 고요한 5인실을 가득 메꿨다. 그들은 5인실을 1인실처럼 주도적으로 사용하는 부부였다.

 얼굴도 모를 은지 언니는 남편 개리를 쉬지 않고 갈궈 댔다. 옷 갈아입으라고 했지. 몇 번을 말해. 말해줘도 똑바로 하는 게 없어. 캐리어 열으라고. 아니 거기 좁으니까 반대로 펼치라고. 생각을 좀 해. 그렇게 열면 되냐? 창문 닫아. 남자가 뭘 그렇게 다 맨날 열고 다녀. 아니 나를 그렇게 잡지 말고 어깻죽지를 받치라고. 거의 청기 내려 백기 올려 백기 내리지 말고 청기 올려 급의 잔소리가 말 그대로 하.루.종.일 이어졌다. 듣는 내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개리는 맘씨도 좋게 그걸 다 듣고도 알겠어 알겠어 하는, 좋게 말해 순-한 사람이었다. 내가 제일 충격받은 멘트는, 본인에 대한 시어머니의 사랑을 이야기하며 “아들놈이 나이 40 처먹고 결혼도 못하고 빌빌대는데 어느 날 이렇게 똑똑한 며느리를 데리고 왔으니 얼마나 좋겠어?”라는 말이었다. 그녀는 우쭐대며 남편을 향해 그런 말을 서슴없이 뱉는 신여성이었다. 오빠는 고개를 절레절레거리다 나중에는 청각을 포기하고 이어폰을 꽂았다. 알고 보니 어제 병실 앞에서 오열하던 사람도 개리였다. 그렇게 오열을 연출하지 않았다면 둘째 낳을 때까지 은지 언니한테 애티튜드 들먹이며 들들 볶일 걸 알고서, 작심하고 운 거라는 오빠의 의견에는 꽤 신빙성이 있었다. 은지 언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어~ 얘(는 개리) 완전 똥손이잖아. 그래서 카메라라도 좋은 거 들고 찍어 놓으라고 고프로 샀지. 고프로 알지 고프로?” 라며 남편 비하와 카메라 자랑을 동시에 하고는 통화가 끝나면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를 내며 아파했다. 시이모님들이 출산을 축하하며 보내준 돈에 대해서도 20만원엔 적다고 50만원엔 감사하다고 가감 없이 품평하는 여자였다. 무통주사에 페인부스터까지 달고도 곡소리를 내는 그녀를 보며 통증은 역시 사바사구나, 알 수 있었다.

 은지 언니 얘기를 이렇게 분에 차서 가득 쓴 건, 그렇게 하루 종일 호되게 닦인 개리가 밤새 미친 듯이 코를 골았기 때문이다. 나는 두통으로 가득 찬 머리를 싸매고 신음을 하며 밤을 새웠다. 병원의 하루가 시작되는 새벽 5시쯤이 되어서야 개리가 부스럭대며 얕은 잠을 자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나는 한 시간 반 정도 잠깐 눈을 붙였다.

 이 병원의 병실은 다인실 무료, 1인실 29만원, VIP실 49만원, VVIP실 79만원 이렇게 가격이 올라가는데 어제 1인실과 VIP실에는 미리 예약을 걸어두었었다. 나는 잠이 덜 깬 오빠를 흔들어 깨워, 당장 VVIP실에도 대기를 올리고 오라고 했다. 여기에 하루 더 있다가는 회복이고 뭐고 산후우울증이 생길 것만 같았다. 나의 괴로움이 무색하게도, 오늘도 1인실로 이동하기는 요원해 보였다. 간호사는 띠가 바뀌며 2월 4일부터 아기가 역대급으로 많이 태어났다는 심심한 위로(?)를 전해왔다. 나도 날 받아서 낳은 아가이긴 하지만 호랑이띠가 뭐라고. 이 저출산 시대에 왜 나는 피난민처럼 5인실에 누워 소음과 싸워야 하는지, 너무 서러웠다.

 어젯밤부터 부글거리던 배가 살살 아파왔다. 어제 아침, 긴장해서는 큰 일을 못 보고 병원에 온 게 화근이었는지 화장실이 점점 급해졌다. 간호사에게 화장실을 좀 갈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아직 거동이 안 되기 때문에 베드에서 볼 일을 보고 남편이 처리해줘야 한다고 했다. 도대체 베드에서 어떻게 볼일을 보는지도 의문이지만 그 과정을 알고 싶지도 않았고, 남편의 처리에 앞서 위가 훵히 뚫려있는 다인실에서 변을 본다는 건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간호사에게 그럼 좀 참아볼게요 하고 소곤댔더니 간호사가 다급하게 안 돼요! 를 외치고는 잠시만요 하며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간호사는 그럼 정말 조심해서 다녀오셔야 해요. 하며 거동하는 법을 일러주었다. 상체를 일으켜 세워서 20분 정도 쉬고, 다리 내리고 20분 정도 쉬고, 정말 천천히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고, 안 그러면 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저혈압으로 쓰러질 수 있다고. 실제로 어제 화장실에 갔던 다른 산모가 화장실에서 저혈압으로 쓰러지는 소리를 들었었다. 남편이 다급하게 간호사를 불러와서 아내를 화장실 바닥에 눕히고 한참 동안 심호흡시키고 혈압을 여러 번 재는 걸 귀로 목격했다. 그 뒤로 나는 부지런히 다리를 꼼지락거렸었다. 그래야 회복이 빠르다고 들었다.

 어제의 노력이 효과가 있었는지 나는 앉는 것도 서는 것도 걷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 오빠를 살짝 짚고 일어서기만 하면, 불편하긴 해도 한 걸음씩 아주 천천히 걸을 수는 있었다. 나는 아직 오빠 앞에서도 방구를 뀌지 않는다. 아니 실제로 방구를 늘 참아서, 언젠가부터는 방구를 정말로 잘 못 뀌게 되었다. 그런 나로서 5인실 안에 딱 붙어있는 화장실에서 큰 볼 일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이미 싫고 어려웠지만 생리 현상이란 정말 자비가 없다. 나는 병실 최초로 소변줄을 꽂은 채 화장실 이동을 성공한 스피드 회복 환자가 되었다.

 오후가 되어서는 소변줄을 빼 주었다. 그때부터는 이든이를 보러 이동할 수 있었다. 힘들게 어기적거리며 걸어가서 신생아실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으려니 창문 너머의 간호사 선생님이 손목을 가리키며 팔찌를 보여달라고 했다. 나의 이름이 적힌 내 손목의 띠와 이든이 발목의 띠가 우리를 상봉시켜주는 방법이었다. 간호사는 이든이가 담긴 요람을 신생아실 정중앙 쪽으로 밀고와 이든이를 보여주었다. 쌔근거리며 자고 있는 이든이는 어제 비몽사몽간에 본 것보다 부기가 쏙 빠진 모습이었다. 한 번만 아이의 볼을 만져보고 싶었다. 얼마나 따뜻하고 얼마나 보드라울지 궁금했다. 창문 너머로 보여주는 아가는 마치 TV 속 인물 같아서 나의 아가라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전염병이 없던 때가 그리워졌다. 많이 움직여야 회복도 빠르다는 말을 핑계로 나는 한 시간에도 두 번씩 이든이를 보러 가려 몸을 일으켜 세웠다. 혹시나 간호사들이 엄마의 너무 잦은 방문에 질려 이든이를 소홀하게 돌볼까 봐 무심한 척, 안 보는 척하며 곁눈질로 신생아실 앞을 지나다녔다.

 할 일 없어 보이지만 병원의 하루는 빠르게 간다. 모두가 애써 시간을 빠르게 허비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정해진 시간에 무통주사와 항생제를 번갈아 맞다 보면 금세 해가 진다. 어둑어둑해질 무렵부터 어딘가에서 쉰내 같은 것이 났다. 냄새의 근원을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알 수가 없었는데..  화장실에 가다가 개리를 마주치고선 그게 그의 땀냄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은지 언니한테 하도 당해 종일 진땀을 흘려서 그런지, 냄새는 그의 몸집만큼 커다랬다. 침대에 돌아와 좌절하고 있었더니 오빠가 이거라도 써보라면서 마이비데 물티슈를 한 장 꺼내어 코에 대주었다. 코에서 물티슈 꽃향기가 났다. 똥꼬 닦는 티슈에서 나는 꽃향기라니 아이러니했다. 마이비데를 얼굴에 얹은 나를 두고 오빠는 깔깔대며 사진을 찍었다. 옆에서 듣기로, 은지 언니와 개리는 5인실도 쾌적하고 지낼만하다면서 1인실 대기를 철회했다. 그래, 니들은 지낼만하겠지…

 그러는 와중에 오후부터 비어있던 왼쪽 옆 침대에 새 환자와 보호자가 들어왔다. 내일 새벽 제왕절개라 미리 입원을 한 것 같았다. 밤이 깊어지기도 전에, 양쪽 옆 침대의 보호자가 돌비 서라운드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오빠는 다른 산모들에게 피해를 줄까 혹시 몰라 양압기까지 챙겨 와서 끼고 있는데, 막상 나는 남의 남편들 때문에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다니 쌍욕이 나올 것 같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녁부터 살짝 열이 올라서 계속 열을 다시 재어야 하는 상황이라, 이어폰조차 낄 수가 없었다. 이어폰을 끼면 열이 더 오른다고 간호사들이 제지했다. 나는 다시 마취라도 되고 싶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 인원을 통제할 거면 아예 보호자를 못 오게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고 뭐고 혼자 있어도 되니까, 저 굉음을 내는 양 옆의 두 인간만 없으면 모든 고통이 사라질 것 같았다.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오늘도 잠들긴 글렀나..


*이틀 차에서 이미 질려버린 몇 안 되는 독자님들께 변명해보자면 딱 3일 차까지예요. 그 이후로는 빠른 전개 진행하겠습니다,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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