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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연필 Aug 06. 2024

별의별 詩점

01 그럴수록 악착같이 물을 찾았어

*

십대가 되기도 전에 경쟁이 체질에 맞지 않음을 깨쳤다.

다름 아닌 수영장에서였다.

물 밖 세상에서는 나를 잘 들켰다.

그래서 물이 좋았다.

그 속에서는 온전히 내가 내게 머물렀다.

웃어도 울어도 고함을 쳐도 들키지 않았다.

눈 맞출 곳은 타일 바닥을 비롯한 삼면 정도였다.

당시 지구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공간이었다.

그런 까닭에 매일 연속으로 두 타임을 이어 들었다.

1교시도, 2교시도 수영이었다.

처음부터 수영장이 좋았던 건 아니다.

교실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면서 나를 가르는 공간의 경계가 물을 기준으로 나뉘었다.

유치원과 달리 교실은 숨을 곳이 없었다.

파놉티콘 감옥처럼 고개만 돌리면 서로를 마주하게 되는 네모낳게 뻥뚫린 터가 답답했다.

들락거리는 모든 것들이 분주하게 돌아가는 공장 같았다.

이곳의 아이들에게 절대로 내 이름이 들켜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러려면 절대로 튀어서도 안 된다.

불안해도 불편해도 아무렇지 않은 척,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다.

매일 아침 주먹을 불끈 쥐고 다짐했다.

초록 칠판에서 눈을 떼지 않겠다고.

하지만 동여 맨 다짐은 번번이 나를 비웃었다.

이 년이 되도록 나는 교실을 풀지 못했다.



*

'척'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나는 오롯이 홀로 튀었다.

나만 힘든 건지, 모두가 척을 잘하는 건지 그 부분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의젓하게 잘해내는 것만 같았다.

'모두 '척' 에 도움이 되는 영양제라도 챙겨 먹은 걸까?' 의구심마저 들었다.

척순이와 척돌이들이 장착한 그 척이 부러웠다.

'내겐 없는데……'

“하연, 조하연! 안 들려?!”

옆 아이가 툭 쳤다.

몸이 덜컹이더니 탈출했던 내가 능청스럽게 들어와 앉았다.

(화면이 전환되고)

모두가 나를 본다.

“무슨 생각 하느라 선생님이 말하는데 듣지도 못하고!”

“저도 여기 있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자꾸 나가요. 창에서 운동장으로 점프도 하고, 운동장을 날아올라요. 그러다 연기처럼 정문을 빠져나가요. 저도 몰라요. 그 후로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더 꾹 다물었다.

초점 잃은 눈이 문제다.

번번이 들키는 건 그놈의 눈 때문이다.

나와 내 거리가 멀어지면 눈은 초점을 잃는다.

주파수를 놓친 나와 나 사이 어디쯤에서 나인지 아닌지 모른 채 서성이곤 했다.

뜻하지 않은 어느 오후가 사건의 첫 문장이 되는 것처럼.

나의 뜻과 상관없이 체스판이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하필 이 년 연속 담임이 같았다.

누군가에겐 행운일 수 있는 일이 내게는 불행이었다.

상대가 나를 잘 안다는 건 내게 익숙하기보다 나를 더 뻣뻣하게 만들었다.

그리 심각할 일이 아닌 일도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녀가 심각하다면 심각해졌고

그녀가 '요즘 좀 덜한 것 같다'하면 잠잠해졌다.

그럴수록 악착같이 물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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