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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강나무 May 23. 2023

퇴직은 있지만 은퇴는 없다.

올바른 투자 마인드


- 목차


- 노인이 됨으로서 진정한 노년의 의미란 무엇일까


- 만족스러운 노후를 위해 어떤 자세가 필요한가



영화 인턴 주인공 로버트의 인턴 면접 중에서...



- 노인이 됨으로서 진정한 노년의 의미란 무엇일까

앞으로 2년 후에는 65세 이상의 노인이 전체 인구중에 15% 차지하게 되어 한국이 고령사회로 진입을 하게 될 예정이면서 앞으로 퇴직 후 은퇴를 하게되면 살아가는 노년의 삶은 어떻지에 대해 여러가지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스위스 출신이자 의사인 폴 투르니에 작가가 쓴 노년의 의미라는 책을 접하게 되면서 노년의 삶의 질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인간은 탄생하면서 죽음의 경계선에 항상 서 있으며 길면 몇십 년 후 아니면 당장 내일 죽음에 직면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 폴 투르니에는 노인이 되어 살아갈 때 노년의 의미를 6가지로 분류해서 의미를 제시한다.



첫 번째로는 삶의 과정에서 얼마나 성장하느냐에 따라 은퇴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보았다.


즉 성공적으로 은퇴하는 것은 은퇴 이전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청년기에 돌입하게 되면 사회생활에 자리를 잡아갈 때는 직장 생활을 중심으로 우리의 삶을 맞춰간다. 그렇게 만남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가정을 지키며 살아가는 데 그렇게 보내는 시간들이 총알 같이 빠르게 지나가 은퇴 이후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몰라 방황을 하며 갑자기 강요된 자유를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기 때문에 노년의 시간들을 의미없이 보내게 된다.


그렇기에 노년이후에도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여가활동을 통한 성장과 발전으로 노년 이후에도 노동과 여가 활동을 둘다 중요시하여 서로 상호보안적으로 노년을 보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노인들이 단순히 여가와 취미를 시간을 떼우기 위한 놀이의 일종으로 보일지라도 그것 조차도 준비되지 않았던 은퇴자의 삶 및 노년의 삶을 의미있게 보낼 수 있는 일종의 행위와 경험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또한 지금 어느 연령에 위치해 있든지 간에 뭐든지 젊어서도 중년 및 노년이 되어서도 도전하고 경험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두 번째로는 대중과 사회가 노인을 바라보는 사고 방식에 따라 노년의 의미가 달라진다고 보았다.


사회가 노인을 사랑하고 노인의 가치를 인정하느냐에 따라 노인의 운명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국가적으로 지역사회적으로 노인들이 노인이 되기 이전에 그들이 사회적인 역군으로서 활약을 했을 때 모두들 그들을 존경하였지만, 은퇴 이후 그들이 정작 노인이 되었을 때 쇠약하고 비생산적인 노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은 썩 좋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들을 부양해야 할 금전적인 인프라와 세금도 그만큼 충당해야 할 것이고 노인의 인구의 증가로 인하여 더 많은 사회적 비용도 들어갈 것들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인간이 노인이 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숙명이며 우리 또한 탄생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노인이 되는 과정 중에 하나에 속해있다.


그렇기에 그들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그들도 하나의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관심을 쏟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가 어린아이에게 다가갈 때 그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봐주고 대화를 시도하듯이 노인들 또한 노인 자체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경청 하며 이해하려고 애쓴다면 노인들 또한 그러한 진심을 알아봐주고 우리와 지역사회에게 감사함을 표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노인들을 멸시하고 나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치부하게 된다면 우리들이 늙게 되었을 때 똑같은 취급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로는 노인이 살아가는 특정한 환경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서술한다.


결론적으로는 노인이 살아가면서 겪었던 지나온 경험과 현재 살아가고 있고 처한 환경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에 따라 주변 환경에 의해서 노년의 삶이 크게 바뀔 수 있다고 한다. 노년부터는 지나온 세월에 따라 앞으로 행하는 것들을 이뤄가면서 달라지게 되는데 노년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살아왔다면 부정적으로 노년을 설계할 수 밖에 없고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면서 노년을 설계하였다면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고 노력할 것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은퇴 이후를 바라보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구축되었다면 그리고나서 노인으로서 가장 문제가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직면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노인이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들 있겠는데, 먼저 자신을 위한 투자를 통해 여가생활을 개발해 나가면서 배워야하고, 여가생활에 쪼들리지 않기 위해선 여가활동에 필요한 어느정도의 돈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연금저축이든 투자든 노년이 되기전에 어느정도 자산 증식을 구축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왜냐하면 무엇인가를 지역사회를 통해서 얻어내고 받아내기 위해서 노년의 삶이 향상되려면 노인 스스로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다른 노인들에게 본 보기가되어 자립하거나 투쟁의 요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체적으로 쇠약해져서 활동하는게 불편할 정도가 아니라면, 노인도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고 수동적인 자세로 국가나 지역사회에서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생각으로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은 얻어지는 것은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래서 노인 스스로 마음가짐이 변화하고 뼈속 깊이 새길 수 있는 내적인 변화가 노년이 되기전에 이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네 번재로는 노년이 되어 제2의 삶 혹은 제 2의 이력의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고 보았다.


. 여기서 말하는 제2의 삶 및 제2의 이력이란 여가활동을 통하여 이익이나 유행, 허영심 충족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의 즐거움 추구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제2의 이력은 이기적이지 않는 마음가짐과 직업적인 활동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에 현실세계의 도피가 아니라 참여라고 한다.


사실 인간의 탐욕과 욕심은 끝이 없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많이 먹게되면 뇌와 위장에서는 포만감을 느끼게 하여 그만 먹게 된다. 하지만 돈와 명예의 대한 욕심은 한계치가 없어서 영원히 채울 수 없는 독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가 폴 트루니에는 세속적인 것들을 놓아주고 노인이 되어 은퇴한 것을 그래도 받아들이며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초월적 생명을 찾으라고 한다.


나 또한 과연 은퇴 이후에 돈과 명예의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있는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둘 중 하나라도 없다면 사회에서 지배적인 위치와 지위를 잃게 되고 지역사회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연 소멸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는 은퇴 이후에도 끊임없이 자본주의사회에서 무엇인가를 쟁취하고 사회적인 입지를 구축하게 되다면 마침내 남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듯하다. 왜냐하면 내가 외적이든(돈, 명예, 카리스마), 내적이든(지식, 지성, 지혜) 무엇이든간에 갖춰져 있고 가지고 있어야만 베풀 수 있고 어느정도의 욕심도 내려 놓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로는 현실을 거부하지 말고 노인이 되는 것과 노년의 삶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고 수용하라고 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도 이렇게 은퇴를 겪게 될지 몰랐다고 하며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막막함을 느낄 수 있다. 작가 또한 인간은 원래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불완전한 것과 미완성을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수용하라고 한다. 어차피 인생은 과정에 있어서 모든 것에 선택의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했던 간에 내가 경험하고 생각하고 있던 과정 중에 최선의 선택을 했기 때문에 지금에 이르렀다고 본다.


지나가고 보면 선택의 순간에 있어 낙담하고 포기하며 후회도 있겠지만 그것 조차도 모든 것을 수용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여섯번째로는 죽음을 회피하거나 도망치지 말고 죽음에 대해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상기시켰을 때 내일이 보장되어 있지 않고 눈을 감게되면 눈을 뜨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하여 죽음을 회피하고 부정한다고 생각한다. 작가 폴 투르니에의 글을 읽어보면 그가 기독교 신자인 것을 알 수 있고 종교적인 부분과 연관되어 해석을 해주는데 그는 죽음 앞에서 두 가지 기본적인 태도가 존재한다고 한다. 하나는 죽음을 직시하는 태도이고 하나는 죽음을 회피하는 태도를 취하게 되는데. 결과적으로는 인간은 탄생과 죽음은 항상 함께하고 있으며 죽음은 지상에서의 삶을 끝내는 순간에 불과하므로 죽음에 이르러야만 죽음의 한계를 뛰어넘고 죽은 이후에 부활하여 영생으로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 종교를 믿는 것도 불확실성한 미래와 죽음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공포 때문에 믿게 되는 부분이라 생각이 되어진다. 그리고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작가도 당시엔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 명확하게 속 시원히 풀이해주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종합적으로 내린 결론은 삶의 과정 속에서 인간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향해가므로 노인도 우리들의 하나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노인이 된 인생을 나와 별개의 인생으로 치부하지 않고 나와 함께 살아 숨쉬는 하나의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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