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변의 서재 Sep 15. 2021

퇴근일기 3. 불편한 편의점 밖 편리한 선입견 세상

¶'불편한 편의점'을 읽고

"순간 노숙자 특유의 퀴퀴하고 역한 냄새가 코에 훅 들어왔다. 염 여사는 숨을 참으며 그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사내는 고개를 저은 뒤 점퍼 소매로 슥 코를 문질렀다. 그녀는 행여 파우치에 사내의 피와 콧물이 묻을까 염려가 드는 스스로에게 짜증이 일었다." - 불편한 편의점 16p.


서울역에서 가방을 잃어버린 염 여사는 노숙자 독고씨 덕분에 가방을 무사히 되찾고는, 자신이 운영하는 편의점의 도시락에 이어 야간알바자리를 제안하고는 가불로 거처까지 마련해준다. 의로운 노숙자 독고씨는 이 편의점에서 성실하게 일할 뿐만 아니라 편의점 알바를 하는 공시생, 30살 백수아들을 둔 아주머니, 쌍둥이 딸들과 대화가 사라진 영업직 아저씨 등에게 툭 위로와 조언을 건네면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인간의 민낯을 하도 많이 봤더니 마음이 너무 팍팍했던지라, 이렇게 따뜻하고 유머까지 있는 책을 읽다보니 따뜻한 욕조에 푹 들어간 것마냥 마음이 스르르 풀어지면서 왈칵 눈물이 나왔다.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도 하나 같이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심리, 소통, 치유를 다룬 책들과 각종 괜찮아 시리즈가 수도 없이 쏟아지는 요즘, 유독 이 책이 진짜 위로를 안겨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보잘것없는 삶을 사는 독고씨가 노숙자의 뻔한 불성실과 불친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가장 기본과 예의에 충실한 말과 행동을 실천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심 이런 울림을 주는 반전을 원했던 것이다. 독고씨의 의로운 행동과 더듬거리는 말로 전하는 진심 어린 조언이 노숙자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깨면서 감히 또 '작가가 억지 감동스토리를 늘어놓는다'며 반박하지 못하게 했다. 



타인에 대한 실망과 불신을 거듭 경험하자, 난 타인에 대한 공평한 기대를 거두고 선입견을 유용하게 활용했다. 선입견은 삶을 효율적으로 살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역시 내 예상이 틀리지않아'라는 확신만 쌓여갔다. 그러다보니, 마음은 점점 메말라갔다. 


사실 이런 '불편한 편의점' 밖 현실에선 선입견에 따라 염 여사가 독고씨를 자신의 편의점이 아닌 경찰서로 데려가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말까지 더듬는 독고씨가 고객을 응대하는 편의점알바를 잘 해낼 수 있으리라고 믿어주는 것, 그것이 이 따뜻한 스토리의 시작일텐데 말이다.


아 그렇지만, 독고씨도 알고보니 노숙자가 되기 전 성형외과 의사였단다. 아직은 편리한 선입견 세상이다.


그래도 이 책에 위로 받는 독자들이 많다는 걸 보면, 불편한 편의점 밖에서도 이런 반전스토리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사례를 거부한 사내에게 어떻게든 보상하고 싶었다. 사내가 필사적으로 자신의 파우치를 지킨 것에 대한 보상이자, 노숙자임에도 올바른 행동을 한 걸 지지해주고 싶었다." - 불편한 편의점 18p.

 





 

작가의 이전글 퇴근일기 2. 변호사들도 자백을 강요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