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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 Jul 03. 2021

3-(1) 이거 비밀인데, 선생님 빵점 받은 적 있어.

두려움과 친구가 되는 방법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


 실패(失敗)의 사전적 정의이다. 살면서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않거나 그르친' 적은 셀 수 없이 많다. 굵직한 실패로 인한 아픈 기억 몇 가지가 순식간에 머릿속에 우두두 팝업 될 정도이다. 실패가 우리를 좌절 시키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다. 첫째, 실패가 두려워 애초에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게 한다. 둘째,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실패는 우리의 행동을 앞뒤로 막고, 위에서 짓누르고 아래에서 잡아당겨 그 무력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럴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실패'는 스스로가 그렇게 칭하기 전에는 그저 과거의 객관적인 사실일 뿐이다. 그러니까 '실패' 자체가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실패로 인해 밀려올 수치심, 열등감, 자괴감 등의 아픈 감정을 느끼는 것을 겁내고 두려워 한다. 이 '두려움'은 우리의 손발을 굵은 밧줄로 꽁꽁 묶는다. 스스로 만든 허구의 감옥 안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다름 아닌 이 '두려움'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속담이 있다. 인간 뇌의 편도체는 두려운 감정을 느끼면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해서 이를 방어하고 피하는 데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사용하게 지시한다. ‘자라’는 나에게 극도의 두려움을 주었던 과거의 경험이고 ‘솥뚜껑’은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이다. 솥뚜껑을 보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인데 과거 경험에 빗대어 또 그렇게 될 거라고 미루어 짐작하며 지레 겁먹는 경우가 많다. 솥뚜껑은 명백히 자라가 아니기 때문에 절대 놀랄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편도체는 솥뚜껑을 보고도 비상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두려움을 자주 느끼는 사람은 솥뚜껑이 많은 사람이며, 안전한 잔디밭을 스스로가 지뢰밭으로 만든다. 편도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이성적인 판단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아이고, 나 죽네! 큰일 났다!' 생각하며 SOS 치고 모스 부호 보내고 구조탄 쏘며 난리 부르쓰를 춘다. 편도체가 활성화된 사람은 에너지의 99%를 그 불안감을 잠재우는 데에 투입한다고 한다. 남은 1%로 직장 생활을 하고 인간관계도 맺으며 개인적인 목표도 이뤄야 하니, 뜻대로 되지 않아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소중한 에너지를 나의 목표 달성에 다 쏟아도 모자랄 판에 있지도 않은 허깨비를 없애는 데 99%를 사용하다니 너무 아깝고 억울하다. 이런 에너지 낭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쉽지 않겠지만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만든 '감옥'이라는 '안전지대'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결국 감옥 문을 열고 나와서 사실 지뢰는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 없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솥뚜껑에게(혹은 최종보스 자라에게도) 시달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용기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삶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용기를 선택할 용기'가 필요하다.


 교탁 앞에 서서 3학년인 우리 반 아이들에게 목소리를 낮추어 진지하게 말했다.

"얘들아, 이거 진짜 비밀이야.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정말 너희만 알고 있어야 돼." 나는 더욱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사실,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 시험 빵점 받은 적 있어."

"에~????!! 진짜요????!!!"

오 반응이 온다.

"응, 그래도 이렇게 선생님 하고 있지? 선생님이 그때 빵점 맞았는데, 그때는 체벌이 있을 때라서 손바닥도 맞았어. 손바닥이 아파서라기보다는 부끄럽고 속상해서 집에 와서 펑펑 울었지. 그런데 선생님이 '휴, 나 빵점이네. 끝이야. 내 인생 망했네.' 이렇게 체념하고 주저앉았을까?"

"아니오!!!"

"응, 선생님은 집에서 엉엉 울면서도 교과서 펼쳐서 다시 개념 공부하고 문제집을 풀었어. 그래서~~!! 재시험 봐서 다시 100점을 받았지!(진짜다.) 그게 아직도 기억이 나."

"오~~!!"

아이들이 초롱초롱 놀라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오예,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예시를 잘 든 것 같다. "선생님이 이때 발휘한 미덕은 뭘까?"

"목적의식이요!" "용기요!" "끈기요!" "열정이요!" "초연함이요!"

"그래, 맞아. 여러분도 무슨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어. 우리 반은 실패를 네 글자로 어떻게 부르기로 했었지?"

"작은 성공!"

"우와, 선생님이 학기 초에 했던 이야기인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네, 여러분이 이렇게 선생님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니 정말 감동적이야."

나는 눈썹을 여덟 팔자로 만든 채, 감동한 눈빛을 아이들에게 마구마구 쏟아 내었다. 이내 아이들은 각자의 10살 인생에 있었던 최하 점수를 아무렇지 않게 폭로(?) 한다. 그래도 빵점보다는 훨씬 잘하지 않았냐며 내가 위로해 주었다. 여하튼 나의 흑역사를 갈아 넣어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꽤 성공적으로 전달한 시간이었다.




 실패가 작은 성공이 된 사연은 이렇다. 학기 초에는 학급 회장 및 부회장(학교에 따라서 학급 반장 및 부반장이라고 부름)을 선출한다. 학창 시절에 학급임원 선거를 하면 얼마나 떨렸는지 아직 그 느낌이 생생하다. 내가 후보에 있지 있든 없든, 박빙의 승부를 지켜보는 것 자체로 심장을 쫄깃해진다. 후보로 나온 아이들의 심장은 아마 옷 밖으로 튀어나오기 일보 직전일 것이다. 심지어 올해 우리 반 아이들은 3학년이라서 임원 선거를 처음 치러보았으니 그 긴장감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지만, 모두가 임원이 될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 속에서, 당선의 기쁨을 누리는 아이들보다 낙선의 고배를 마시는 아이들이 훨씬 많다. 학기 초 이 순간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권영애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던 나는 회장 선거가 끝난 후, 당선되지 못했지만 후보로 출마했던 아이들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한 후,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회장이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는데 이렇게 용기 내서 도전한 여러분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여러분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선거는 굉장히 많아요. 3학년 2학기, 4학년 1학기, 4학년 2학기, 5학년 1학기, 6학년 2학기, 6학년 때는 전교 임원 선거도 있죠. 중학교 1학년 1학기, 1학년 2학기, 2학년 1학기, 2학년 2학기, 3학년 1학기, 3학년 2학기, 전교 임원 선거도 있고요. 고등학교, 대학교 과대, 부과대, 학생회장 또 우리 중에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에 출마할 사람도 있겠지요. 아직 여러분에게는 무수히 많은 기회가 남아 있어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은 실패한 게 아닙니다. 실패는 ㅇㅇ ㅇㅇ이다. 에서 ㅇㅇ ㅇㅇ이 뭘까요?"

"성공 엄마!" "성공 아빠!" 기상천외한 대답이 쏟아져 나온다.

"네, 그것도 맞지만 선생님이 오늘 하고 싶은 말은 '실패는 작은 성공이다.'입니다. 오늘 선거에 도전한 사람은 다음 선거에 도전할 때, 전략을 더 잘 짤 수 있지요. '다음에는 이런 점을 더 해 보자. 이런 점을 보완해보자.' 생각하며 좀 더 성장할 수 있겠죠?"

낙선한 아이들이 희미하게 웃는다. 속은 쓰리겠지만 오늘의 잊지 못할 경험과 함께 '실패는 작은 성공이다.' 이 말을 꼭 덧붙여 기억했으면 한다.


  어른이 보기에는 학급임원이 되지 못한 일이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에게는 크나큰 시련의 사건일 수 있다. 어른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우리 앞에 3학년 2학기 임원 선거부터 대통령 선거까지 새로운 기회의 문이 무수히 많이 열려 있는데 새로운 문은 바라보지 않고, 내가 얻지 못했던 것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시간을 뭉텅뭉텅 흘려보내고 있지 않은가. 실패를 배움의 기회로 삼아 자신의 사고방식과 행동 방식을 수정해서 얼마든지 재도전 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나의 흑역사도 어디 수학 빵점이 끝이겠는가. 학창 시절 성적 바닥 치기, 대학 입시 실패, 연애 실패, 교우관계 실패, 가족과의 갈등, 미루거나 흐지부지된 무수한 계획들, 나조차 나를 포기해 버리고 싶었던 서글픈 순간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앞으로도 잘 안될 것이 뻔하다고, 나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스스로를 옥죄었던 나날도 많았다. 하지만 여기서 '실패'를 '작은 성공'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도전을 위한 발판으로 삼으면 나의 태도와 에너지가 달라졌다. 나의 에너지가 '난 안되나 봐. 그때 왜 그랬을까. 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라는 자기비판적이고 과거에 머무르는 생각에서 '잘 안된 이유가 뭘까. 이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등의 생산적인 생각으로 초점이 맞춰진다.



 굳이 시계 침을 멀리 돌리지 않고 내 교직 인생만 보더라도 나 역시 무수히 깨지며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숫기가 정말 없었던 내가 어떻게 교사가 되어 많은 학생 앞에 서고 있는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신기한 일이다. 초임 때는 아이들 앞에 서는 것이 부끄러워서 아침에 문 열고 들어가기 전에 인사하는 연습을 하고 들어갔다. 어른 공포증이 있던 나는 학부모님과 상담을 할 때, 기 센 학부모님을 만나면 목소리를 덜덜 떤 적도 있다. 아이가 나를 화나게 한다는 이유로 어른답지 못하게 학생과 같은 수준으로 유치하게 말꼬투리를 잡고 큰 소리로 야단친 적도 있고, 내가 실수한 줄도 모르고 아이 탓을 하고 사과한 적도 있다. (정말 부끄럽다.) 속상하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으니 지금의 보다 성숙한 내가 있다. 늘 퀀텀점프하며 빛의 속도로 성장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다. 성장하려면 성장통이 동반된다.


https://youtu.be/LcuO7x0kjpo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을 때, 항상 보여주는 단골 영상이 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때 있었던(그 당시 아이들은 5살이라 아무도 모르지만) 펜싱 종목의 박상영 선수의 결승전 경기 장면이다. 박상영 선수가 9:13으로 뒤처지고 있던 상황, 상대 선수가 2점만 더 내면 경기가 끝나기 때문에 희망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마지막 경기 전, 잠깐 의자에 앉아 숨 고르기를 하던 박상영 선수의 귀에 "할 수 있다!"라는 한 관객의 외침이 들렸다. 그 소리를 들은 박상영 선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할 수 있다."를 읊조린다. 그러고는 거짓말처럼 1점씩, 1점씩 따라잡다가 14:14 동점이 되고 결국은 기세를 몰아 박상영 선수가 마지막 1점을 따내며 금메달을 목에 건다. 여러 번 보았지만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이 경기 장면을 보면 늘 가슴이 뛴다. 나와 함께 아이들도 이 영상을 보고 한껏 고무되었다.

"여러분, 이 영상에서 찾을 수 있는 미덕은 무엇인가요?"

열정, 끈기, 목적의식, 충직, 소신, 도움, 초연, 도움, 유연성, 기뻐함 등 아이들이 큰 소리로 다양한 미덕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평소에 경직되어 있고, 친구들과 거의 어울리지 않으며 절대 먼저 손을 들고 발표한 적이 없었던 겨울이가 손을 번쩍 드는 것이다.

나는 놀란 목소리로 " 오, 겨울!" 하고 지목했다.

겨울이는 "용기!"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용기라니..... 나는 그 순간 속으로 굉장히 감동했다. 겨울이가 정말 큰 '용기'를 내서 발표를 한 거다.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보는 순간의 기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교사의 특권이다. 겨울이가 스스로 만든 두려움의 벽을 깨고 나올 역사적인 첫걸음을 뗀 것이라 확신한다.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겨울이도, 작년에 담임 선생님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기억 때문에 올해도 경직되어 있는 규민이도, 예전 시험 성적 때문에 수학 계산을 많이 틀릴까 봐 두려움을 느끼는 예진이도, 놀이 활동을 하다가 본인의 서툰 실력 때문에 친구들에게 실망감을 준 적이 있어 놀이 활동을 할 때마다 두려워하는 희란이도, 한결같이 친절하기로 결심 해놓고 나도 모르게 화를 버럭 내 버린 후,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교사가 될 수 있을까' 자괴감에 빠진 나에게도

"진짜 너는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실패는 작은 성공이야."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진짜 실패다. 배움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면 실패는 단언컨대 작은 성공이다. 영화 명량에서 누가 봐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이순신 장군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나. 

"만일 그 두려움을 용기로만 바꿀 수 있다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두려움을 용기의 연료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인 것 같다. 용기의 연료로 쓸 수 있다니 두려움이 고마워질 지경이다.






*학생들과 있었던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학생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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