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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월 Aug 15. 2023

고전경제학의 프레임에 도전장을 내밀다

[책세상]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고

<생각에 관한 생각>은 인간의 생각이 어떤 매커니즘을 통해 발현되는지를 밝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언뜻 보기에 심리학 서적 같은 '아우라'를 풍기지만, 이 책은 '행동경제학'의 '바이블'로 평가받는 대니얼 카너먼의 역작이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수많은 경제학자들을 제치고 심리학자로서는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움켜진 이스라엘 출신의 천재 심리학자다. 대니얼 카너먼은 경제학과 심리학의 경계를 너머 진정한 학문의 '통섭'을 이끌어 낸 석학으로 평가받는다. 현대 경제학의 새로운 조류인 '행동경제학'은 심리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인간을 경제활동의 주체로 본다면 인간의 행동을 좌우하는 생각의 흐름을 읽어내는 것이야 말로 경제 분석과 전망의 대부분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위기와 더불어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행동경제학' 분야도 주목받고 있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은 합리적 존재'라는 고전경제학의 명제를 거부한다. 


아담 스미스로 대표되는 고전경제학의 자기조절시장 논리는 인간의 합리성에 기초하고 있다. 고전경제학은 경제 주체인 '합리적인 인간'이 효율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의 선택은 늘 합리적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효율성이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것인데, 이러한 선택을 하려면 인간이 합리적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 논지다. 때문에 합리적 인간들의 선택과 행동이 이루어지는 '시장'은 완벽한 자기조절능력을 갖추게 된다. 고전경제학이 시장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다. 


반면 행동경제학은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전제를 부정한다. 인간의 사고란 불완전하며 휴리스틱(heuristic : 고정관념에 기초한 추론적 판단)에 의한 편향을 보이기 일쑤일 뿐만 아니라 종종 인지적 착각을 일으킨다고 설명한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은 받으면 당신은 어렵지 않게 대답할 것이다.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식적인 사고가 질서정연하게 다른 의식적 사고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으며 그것이 일반적인 사고방식도 아니다. 대부분의 생각과 인식은 정확한 이유를 모르는 상태에서 의식적 경험을 통해 발생한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애인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음을 어떻게 감지하는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거칠게 달려드는 자동차를 어떻게 구사일생으로 피할 수 있는가? 이런 이유들은 아무리 추적해도 찾아내지 못할 수 있다. 인상과 직관과 많은 결정들을 생산하는 정신의 작업은 머릿속에서 조용히, 자신도 모르게 진행된다. (p8~9)



이 책의 요지는 이렇다. 


인간의 사고체계는 두 가지 시스템의 작동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각각 [시스템 1], [시스템 2]라고 명명하기로 한다.


[시스템 1]은 '빠르게 생각하기'(fast thinking)이다. 2+2의 정답을 아는 것처럼 거의 혹은 전혀 힘들이지 않고 자발적인 통제에 대한 감각없이 자동적으로 빠르게 작동하는 것을 말한다. 직관적 사고다. 보이는 것을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는 인지적 편향은 [시스템 1]의 산물이다. 


반대로 [시스템 2]는 '느리게 생각하기'(slow thinking)이다. 복잡한 계산을 포함해 관심이 요구되는 노력이 필요한 정신 활동, 즉 이성적 사고다. 자동으로 작동하는 [시스템 1][시스템 2]의 승인을 받으면 인상과 직관은 믿음으로 바뀌고 충동은 자발적 행위로 변한다. [시스템 1]이 답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시스템 2]가 작동한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대부분 [시스템 1]에서 발생하지만 상황이 어려울 때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결정권을 갖는 것은 [시스템 2]이다. [시스템 1]은 단기적인 예측, 민첩한 판단과 반응에 시의적절하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편향'을 보이는 오류를 갖고 있다. 또한 어떤 일들은 [시스템 1]의 직관과 충동을 뛰어넘는 노력과 자제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은 [시스템 2]만이 수행가능한 중요한 일들이다. 


고전경제학의 명제에 따르자면 '합리적 인간'의 의사결정은 전적으로 [시스템 2]가 담당해야 할 것이다. [시스템 1]은 직관적이지만 착각과 편향에 빠지기 쉬우며, 이는 '합리적 인간'의 특징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합리적 인간'은 [시스템 1]을 철저히 통제하고 [시스템 2]에 따라서만 행동해야 한다. 고전경제학의 합리적 인간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가정은 공공정책의 자유주의적 접근을 허용한다. 합리적 인간의 선택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합리적 인간이란 고전경제학의 '시장'이라는 가상의 영역에서나 존재하지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시스템 1] [시스템 2]의 끊임없는 충돌과 갈등이라는 사고체계를 가진 현실의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이지 않다. 따라서 개인은 집단, 공동체, 국가, 제도 등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사회는 개인을 도와야 하는 의무감을 함께 감당해야 한다. 


5백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마치 씨름하듯이 읽은 것 같다. 일일히 서술할 수는 없지만 책에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시스템 1]의 인지적 편향의 결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다양한 실험과 사례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 심리학을 통해 경제학에 접근하는 과정은 흥미진진하고 때로는 기존에 갖고 있던 고정관념들을 뒤엎어 버리기도 한다. 대니얼 카너먼은 "[시스템 1]에서 기원하는 오류들을 막는 방법은 원칙적으로 보면 간단하다. 당신이 인지적 지뢰밭에 있다는 신호를 인식하고, 속도를 줄이고, [시스템 2]에게 더 많은 도움을 구하라"고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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