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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제이 Apr 10. 2023

'덜' 들어간 게 좋아서, 셀프 레모네이드


남편 도시락을 싸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입맛을 하나씩 새롭게 알아가는 중이다.


'어째 매운 건 점점 더 못 먹는군.'

'느끼한 건 예전보다 잘 먹는 것 같고.'

'설탕을 줄여도 그러려니 하네?'


함께 한 시간이 흐른 만큼 처음 만났던 20대 초반과는 참 많이도 변했다 싶다.

글쓰기를 함께하는 동료 선생님 중 한 분의 말이, 나이가 들수록 눈은 새로운 걸 찾고 입은 오래된 걸 찾는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건 또 없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맛을 고르라면 남편과 나는 주저 없이 하나를 선택했다.


남편은 단 맛,

나는 신 맛.


여전히 나는 신 걸 좋아하고 남편도 여전히 단 걸 좋아한다.

하지만 함께 한 세월 덕분인지 케이크라곤 내 생일 때도 안 먹던 내가 남편과 함께 디저트로 초콜릿무스를 먹고, 귤도 속 쓰리다며 꺼리던 남편은 날 따라 수제 레모네이드를 따라 마신다.



우리 집 냉장고엔 절대 떨어지지 않는 게 세 개 있다.

명란젓, 커피, 그리고 레몬.


신 맛에 환장하면서 단 맛은 여전히 꺼리는 내겐 카페에서 파는 '레모네이드'는 레몬 향 나는 설탕물일 뿐.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레몬 두 개 즙을 짜서 탄산수 1.5리터 페트병에다 넣은 수제 레모네이드를 즐긴다.

정말 오로지 신 맛과 탄산 거품의 톡 쏘는 청량함만 있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맛을 본 사람들은 '대체 이 걸 왜 굳이 힘들여서 만들어 먹니?' 의아해하지만, 누군가에겐 뭔가가 '덜 들어간'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레모네이드에 굳이 단 맛이 필요없는 나처럼, 굳이 인생에 고기가 필요하겠느냐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삶에 결혼이란 제도가 필요하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고, 몇몇 사람들에겐 대학 졸업장이, 아이가, 소속된 명함이, 집이나 차가 자신만의 '설탕 없는 레모네이드'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가져야 완전하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세상이지만 단 맛 없이 신 맛만으로도 충분한 한 잔의 음료를 마시고 있으면 이대로도 좋다, 더할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그런 마음이 든다.


물론 카페에서 '레모네이드에 시럽 빼주세요.'라고 주문하면 '그럼 되게 시기만 할 텐데요?'라고 우려 섞인 표정을 짓는 직원의 걱정을 듣겠지만 뭐 어때.


내 취향은 유행보다 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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