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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닥 Apr 21. 2022

나는 괜찮은 사람일 거라는 오해

희 언니와 함께 성 언니 집 근처로 갔다. 성 언니의 아버님이 코로나로 병원에 입원해 계신다고 했다. 의식이 없으시다 하니 걱정이 되었다. 성 언니를 만나서 아버님 건강을 여쭙고난 뒤 건강, 날씨, 드라마, 최애 굿즈, 언니들의 자녀 얘기까지 못 본 기간만큼 쌓인 얘기 보따리를 풀었다. 성 언니가 말했다.

"우리 아들 결혼하면 나는 절대로 주말에 애 안 봐줄 거야." 대화 흐름이란 게 이렇다. 앞뒤 전후 사정없이 갑자기 시작된다.

"아니! 생각해봐. 지금도 주말마다 나가 논다고 정신이 없어. 근데 둘이 결혼해봐. 계속 주말마다 나가 놀 거 아냐! 지들이 나가 놀려고 애를 나한테 맡길 거 아니냐고. 내가 애 봐줄 줄 알고? 절대 안 봐줘. 애는 부모가 키워야지. 애 맡기고 나가 놀 생각하면 안 되지."

씩씩거리는 성 언니를 향해 희 언니가 물었다.

"아들이 애인이랑 결혼한대?"

"아니, 5년 뒤에 할 거래."

5년 뒤면 대통령도 바꿀 수 있는 기간이다. 성 언니는 5년 뒤에 결혼할지 안 할지 모르는 아들이, 결혼을 하고도 아이를 낳을지 안 낳을지 모르는 아들이, 아이를 낳아도 주말에 놀러 갈지 안 갈지 모르는 아들이 자기에게 아이를 맡기고 놀러 갈 거라 확신하며 햇볕을 피해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불확실한 미래에  확실히 화를 내고 있다. 밤에 잠을 푹 못 잔다며 걱정을 수시로 하더만.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언니가 왜 밤에 잠을 못 자는지 이제 알겠네. 커피를 많이 마신 탓이 아니고만. 이미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굳이 끄집어와서 걱정을 하고 화를 내니 잠을 못 자는 거 아녀?"

"아냐, 나 화낸 것 아냐."

" 뭔 소리야, 지금 화내면서 얘기했다고."

"그건 내 목소리가 올라가서 그런 거야. 사실 내 속에 있는 감정은 주먹만 한데 말하다 보니 과장되게 좀 크게 입 밖으로 나온 거지. 화를 낸 건 아니야. 난 화는 잘 안내. 겁이 많지. 화는 뽀닥이 많이 내잖아."

어이없다. 갑자기 나보고 화를 많이 낸다니?

"내가 무슨 화를 내?" 울컥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아, 화를 내는구나. "맞네, 나 순간 깨우쳤어. 언니 말이 맞나 봐. 난 화가 많네."

"그렇다니깐. 뽀닥은 화가 많고, 난 겁이 많은 거야."

'화가 많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누군가로부터 직접 듣기는 처음이다. 내 성격을 여태껏 오해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까탈스럽지 않다고, 이 정도면 누구와도 완만히 지내는 무난한 성격이라고, 이 정도면 배려있고, 이 정도면 무난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들의 좋은 관계가 성격 좋은 내덕분에 유지되는 것이라 확신했는데 알고 보면 나의 성향을 이해해 준 타인의 너그러움으로 완만히 지속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해와 이해 사이 너그러움이 있다.

"하지만 언니는 진짜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할 일을 벌써부터 걱정하고 난리야. 그런 거 그만둬." 화가 많지만 겁은 별로 없는 내가 충고했다. 겁이 많아서 잔 걱정이 많은 언닌데 이 충고도 걱정으로 받으면 어쩌지? 생각해보면 언니도 나에게 충고를 했을 텐데 그때 나는 화를 냈던가? 모르겠다. 기억 안 난다. 충고니 걱정이니 화니...... 대충 그려려니 하고 너그럽게 넘어가자. 너그러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너그러움!


집에 오니 인터넷으로 주문한 고양이 모래 한 박스가 문 앞에 놓여있다. 현관에서 개봉했다. 5킬로그램짜리 모래 봉지 4개가 보였다. 16년 하고도 6개월째 생존중인 나의 고양이 '솜이'는 일주일에 5킬로그램짜리 봉지 하나를 쓴다. 20 킬로면 한 달은 거뜬하다. 왼손으로 한 봉지, 오른손으로 한 봉지 들어서 모래를 보관하는 곳으로 옮겼다. 솜이는 의자에 누운 채 나른하게 나를 본다. 사람과 고양이 사이에도 오해가 있을까. 애초에 솜이에게 기대하는 게 없으니 오해할 것도 없다. 나는 고양이에겐 무조건 너그럽다.





앗! '이해뽀닥' 뺨에 홍조 그리는거 잊었넹.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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