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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고리 Sep 08. 2022

퇴근길

"선생님, 오늘 청소 면제권 써도 돼요?" "선생님, 저도요."  "저도요."


청소는 7명이 하는데 면제권을 5명이나 썼다. 그래 다 가라. 내가 하지 뭐.

남아서 보니 예쁜 애들 2명이 남아서 한 놈은 바닥을 쓸고, 한 놈은 내가 가르쳐준 대로 걸레를 깨끗이 빨아 네모난 모양으로 반듯이 접어 줄대로 칠판을 닦고 있다. "배운 대로 잘하네. 너무 예쁘다." 마음을 가득 담아 칭찬을 해주고 교실 문을 잠그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온다.


내일부터 추석 연휴라 단축 수업을 했다. 고등학교인데 무려 3시에 끝나는 파격적인 단축 수업. 5분씩 단축을 하고 4시 정도에 끝나는 건 보았어도 10~15분씩 단축을 해서 3시에 마친 것은 처음이라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불쌍한 아이들은 아마 오늘도 학원에 가겠지만, 그래도 집에서 조금 더 쉬다가 갈 테니 그것만큼은 좋을 테지.


교무실에 갔더니 썰물처럼 선생님들이 다 가고 없으시다. 나름 서두른다고 빠르게 청소를 하고 나온 건데, 이렇게 아무도 안 계시다니.. 다들 일찍 가셔서 좋으셨던 모양이다.  빠르게 학교에서 빠져나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내려서 산책을 시작한다.


가을 햇볕은 뜨겁지만 바람은 시원하다. 아직 낮 시간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다소 더워서 그런 건지 조깅로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뜨거운 햇볕으로부터 내 피부를 지켜보겠다고 굳이 양산을 쓰고 조깅로를 따라 걷는데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피어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높은 하늘과 코스모스가 핀 것을 보니 가을이 왔음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조깅로에는 무시무시했던 지난여름 장맛비의 잔해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콘크리트 길은 여기저기 뜯겨 나가 있고 큰 나무들은 모두 누워있고, 큰 표지석은 밑동 째 뽑혀서 나뒹굴고 있다. 하지만, 그 옆에는 작은 이름 모를 꽃들이 수줍게 피어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자꾸 발걸음을 멈추고 작은 꽃들을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는 나를 발견한다. 그 생명력에 자연의 무서움과 위대함을 동시에 느낀다.



조깅로를 걷다 보면 다리 아래에서 색소폰을 연주하시는 분과 연주를 감상하시는 분들, 장기와 바둑을 하는 여러 무리의 할아버지들을 발견한다. 장맛비로 조깅로를 통제했을 때에 그분들이 얼마나 갑갑하셨을까 생각을 했었다.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참새 방앗간 오듯 나오던 곳이었을 텐데 갈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다시 모여 소소한 재미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아마 저분들은 감사하였을 것이다.


나는 무엇에 감사하며 살고 있나 생각해본다. 건강하게  일없이 살고 있는 것부터가 감사의 제목이  테지. 이렇게 산책길을 걸으면서 주변 풍경을 보고 느낄  있는 것도, 퇴근 후에 카페에 가서 오늘의 글쓰기를   있는 것도, 매일의  속에서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며 쓸거리들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감사할 모든 것이다. 이렇게 걷다 보면 많은 것들에 감사하게 되고, 생각들이 많아지고 깊어지고 확장된다. 이래서 매일 걷고 싶나 보다.  


걸을 수 있는 퇴근길이 참 마음에 든다. 추워지기 전까지는 이렇게 매일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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