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지수 Oct 27. 2021

가치와 의미를 위해


유난히 잠이 안오는 밤이었다. 늘 그랬듯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오랫동안 음악을 들었다. 때는 고등학교 2학년, 잠을 자지 않을 거면 공부를 하는게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의미에 집착하던 날들이라, 공부보다 공부의 의미에 대해 한참을 생각하던 나날이었다. 몇시간이고 음악을 들으며 생각했었다. 흘러나오는 음악들의 의미를 하나하나 생각해보며, 그 음악의 탄생 과정들을 상상해보며. 아마도 그때부터 내 mbti는 INFx였을 것이다.


어렸을 때는 음악과 꽤나 친하게 지낸 편이다. 4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지만 그건 잠시였다. 음악이 좋다고 처음 느낀 것은 9살 때였다. 초등학교에서 처음 들어본 교내 합창단 소리에 매료되어 무작정 오디션을 보고 합격했다. 꽤나 쟁쟁한 경쟁률을 자랑하는 오디션이었다. 엄마가 말하기를 당시의 내가 합창단을 '천사들의 소리'라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 들으니 약간 부끄럽고 손발이 오그라드는게 그때부터 아주 감성이 충만했나보다.


교내 합창단은 동네에서 꽤나 실력이 좋고 유명해서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었다. 운좋게도 성탄절 기념 KBS 생방송에서 오프닝 솔로를 담당하기도 했었다. 합창 시작 전 혼자 무대 앞에 나가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무반주로 한소절 부른 뒤 합창단을 소개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노래는 잘 해놓고 너무나도 긴장한 나머지 소개 대사를 모조리 까먹고 말았다. 무려 생방송 오프닝을 망쳐버렸다. 불과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지만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무대 체질은 아니라는 것을.


그로부터 1년 남짓 후 합창단을 그만두었다. 초등학교 졸업까지 장나라의 음악을 매일같이 들으며 노래하고 음악하는 삶을 꿈꿨다. 하지만 나는 무대와 안맞는다는 것을 알기에 실현할 수 없는 꿈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음악에 관한 꿈은 서서히 잊혀져갔다. 기계처럼 이 학원 저 학원에 다니며 하라는 공부를 했지만, 교회에서 찔끔 찔끔 피아노 반주를 배우는 것이 더 즐거웠다. 하지만 그렇게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음에도, 교회 성가대와 찬양팀을 동시에 하며 재미를 느꼈음에도 내 삶에 음악은 고작 그게 다였다.


공부가 끔찍하지는 않았지만 성적이 좋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걸로 내가 어떤 가치있는 일을 할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러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가치 따위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라는 거 할 것이지, 알면서도 잘 되지 않았다. 좋은 음악을 들을 때마다 어렸을 때 느꼈던 '천사들의 소리'가 생각났다. 이 좋은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져 내 귀에 들릴 수 있는지 궁금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의미있을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음악을 해보고 싶다고 엄마에게 돌발 발언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기에는 늦었다. 


같은 생각을 재수 실패 후까지 했다. 어차피 말할 거 왜 그렇게 질질 끌었을까, 삼수를 시작하며 방황하던 그때서야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작곡과에 재학중인 교회 언니의 작업실에 다녀온 뒤에. 엄마아빠 입장에서는 뜬금없는 돌발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그때는 정말 늦은 나이였다. 여러 크고작은 우여곡절 끝에 부모님은 허락해 주셨고 이듬해 가을, 나는 작곡과 학생이 될 수 있었다. 23살이었다. 의미있고 가치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사실은 음악을 꼭 '만들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늦게 시작했기에, 또 무대 체질이 아니기에 선택의 여지가 작곡밖에는 없었다. 확실한 건 음악이 좋고, 그것으로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음대생이 되고 보니 음악으로 가치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걸 알았다. 내가 어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곡을 만드는 것 외에도. 음악을 가르치는 봉사활동부터 공연 보조, 문화예술을 통해 국적과 인종을 막론한 다양한 사람이 연대되는 것까지. 생방송을 망친 그 어린날 이후부터 무대 공포증으로 인해 무대 위에서의 일들이 두려웠던 나는, 무대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 과정도 참 흥미롭다는 것을 알게됐다. 그리고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내보일 수 있는 자리의 중요성 또한 깊이 깨달았다.


덕분에 일을 해보면서는 졸업 후 꼭 예술가들을 돕는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건 아마 가치있는 일을 더 가치있게 만들어주기 위한 일일 것이라. 막상 졸업 후엔 방황하다가 계속 작곡을 해보겠다며 이런저런 주제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작곡 자체도 꽤 재미있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조금은 오랫동안 미련이 남을 것이다. 마음을 다시 잡고 취업을 위한 도약을 하고 있는 지금은 그저 음악을 처음 좋아했을 때부터 작곡했던 그 시간을 추억할 뿐이다. 모든 음악에 의미를 두려 했던 그 시간들, 사람들로 하여금 내 음악을 통해 무언가를 생각하게끔 하려 했던 노력들.


잠이 오지 않는 밤, 여전히 나는 이어폰을 양쪽 귀에 꼽는다. 감성이 충만해지는 시간에 방에서 음악을 들을 때는 꼭 이어폰을 양쪽에 꼽아 줘야 한다. 오랫동안 스테레오로 음악을 듣는다. 음악이 어떻게 탄생되는지 이제 어렴풋이는 안다. 어떤 툴로 음악을 찍었을지 또 어떤 가상악기를 썼을지 정도도 궁금해 할 줄 안다. 여전히 흘러나오는 음악의 의미를 생각한다.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을지 조금 더 깊게 상상해본다. 그리고 이제 나는 작곡가와 연주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위해 일하기를 꿈꾼다. 오늘도 음악을 내가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와 행복을 느끼며. 앞으로도 지독하게 가치와 의미를 좇을 예정이다.

작가의 이전글 헛발은 아니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