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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수 Nov 04. 2022

나의 제자리

2022.7. 작성


제자리로 돌아왔다. 7개월 만이다. 한국에 돌아온 지 어느덧 3주 차가 됐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기분이 이상했다. ‘이상하다’를 타이핑할 때도 ‘weird’라고 적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기분. 이것 마저도 이상하고, 유난이고 별로다. 고작 반년 있다 왔는데 영어 병에 걸린 건가, 영국병인가, 나 그렇게 영어 많이 늘지 않았는데, 영어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증이 생겨서 그런가 보다. 스스로를 정당화하려는 이 성격은 여전하다.


3주가 지나면서 그간 못 만났던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누군가는 나에게 얼굴이 좋아졌다고, 누군가는 성격이 밝아졌다고, 또 누군가는 외국물이라고는 하나도 먹지 않고 오히려 더 순해져서 왔다고 해주었다. 출국하는 비행기에서 내가 많이 바뀌어 버리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다행이었다. 혹시라도 그 짧은 시간 안에 해외 뽕에 취해 180도 다른 내가 되어버리진 않을까, 반대로 해외생활과 안 맞아 히키코모리가 되어 돌아오진 않을까 온갖 염려를 다 했기 때문이다.


연수를 떠나며 나는 얻어오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욕심쟁이인 나는 영어는 물론이고, 여러 곳들을 다니며 그곳의 문화와 또 다양한 사람들의 가치관을 배우고 싶었다. 한국인들을 만난다면 그들이 부자일지도 궁금했다. 영국으로 대학원 준비한다고 주변에 얘기한 뒤 누군가에게 우리 집은 한순간에 돈 많은 집이 되어 있었고, 받는 시선들로 느끼는 것이 참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내가 유학을 결심하기 전 다른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말했어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덕분에 출국 전에 돈과 내 꿈의 가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사는 거 어디서나 다 똑같겠지만 돈, 공부, 직장, 결혼, 집의 유무 등에 대해 그곳 사람들도 똑같이 고통받고 있을지 궁금했다.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고통받고 있을지도 궁금했다. 내 주변 또래 친구들은 벌써 입사 6-7년 차가 됐다. 이제야 대학원 진학을 그것도 해외에서 준비하는 스스로를 ‘철없고 이상적인 사람’이 아니라 ‘도전적이고 야망 있는 사람’이라 합리화하며 지냈다. 그럼에도 현실에게 눈치 보여 고통스러웠다. 유학을 꼭 가보고 싶다는 꿈을 좇는 내가 막상 가서는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오른 비행기에서의 수많은 고민과 간절한 열망 덕분이었을까, 감사하게도 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문화와 그들의 가치관을 배울 수 있었다. 충분히 배우기에 반 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길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나라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목적으로 유학을 오는지는 알게 됐다. 영어시험 점수를 따기 위해 영국에서 공부하는 게 저렴해서 오는 스위스 친구들, 돈이 많지는 않지만 돈을 전부 어학연수에 투자한 뒤 워킹 비자로 다시 일을 하는 일본 친구, 25년 직장생활 후 받은 퇴직금으로 오신 40대 후반 남자분도 계셨다. 물론 돈 많은 한국인들도 만났다.


그들과 교류하고 친해지다 보니, 영국에 가기 전 내 모습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됐다. 그곳에서는 난 현실감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합리화 한 그대로 나는 도전하는 사람, 대학생활하다가 놀러 온 게 아니라, 늦은 나이에 어학연수에 와서도 진로를 고민하는 사람, 어학연수 생활 중에 계획한 대로 영국 대학원에서 오퍼를 받아 박수를 받는 사람이었다. 난 이거 하러 온 건데, 당연한 것이고 별 것 아닌 건데도 그들은 멋지다고 해 주었다. 한국인과 외국인을 불문해서 말이다.


내가 살았던 동네 브라이튼은 놀기 참 좋은 휴양지였다. 일요일과 월요일을 제외한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요일마다 유명한 펍과 클럽이 다양하게 있었고, 매일 밤부터 동이 틀 때까지 젊은이든 머리 하얀 할아버지든 길에서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는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버스 안에는 빈 술병이 굴러다녔고, 누군가 술에 취해 울면서 버스를 타도 기사님이 스윗하게 위로해주었다. 마트에서 고작 작은 물 한 병 구입해 계산할 때는 캐셔가 “Enjoy your life!” 라고 화답해 주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가 너무나도 익숙하지 않아 하루는 저녁을 먹으며 홈스테이 할머니에게 놀랍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녀가 말하길 이곳 사람들은 아시아인들에 비해 인생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너네 한국은 hard working으로 유명한 것 알고 있다며, 각각의 장단점에 대해서 길게 대화를 나눈 것이 생각난다. 내 가치는 틀린 것이 아니었다. 합리화가 아니었다. 그곳에서 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열정적이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고, 자존감도 올라갔다.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돌아온 지 3주만에 친구들에게 청첩장을 세 개나 받았다. 8년 연애를 끝내고 아파트 다섯 채 있는 남자와 소개팅해 3개월만에 상견례를 한 친구를 최근에 만났다. 치과 의사와 결혼한지 7년 차인 언니도 같이 만났다. 집 얘기, 직장 얘기, 주식 얘기, 임신과 육아 얘기. 대화에 간신히 참여는 했지만 온전히 소속되어 있지 못했다. 참여도 제대로 한 건지 사실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다시 그런 대화가 익숙해지고 있었다. 아, 영국 가기 전에는 사람들이랑 이런 얘기를 나눴었지.


돌아온지 3주 만에, 나는 더이상 한국에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기분이 이상해 얼른 영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만 같았던 3주 전이 벌써 그립다. 이곳은 현실이고, 나는 다시 철없고 이상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제 정말 제자리로 돌아온 것만 같아 두렵다. 다시 영국으로 나갈 때 나는 또 걱정과 염려를 한가득 안고 있을 것만 같다. 다시 영국으로 나가는게 아니라 돌아가는 게 되고 싶지만, 이미 내 마음은 다시 혼란스럽다. 나의 ‘제’ 자리는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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