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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수 Oct 20. 2021

헛발은 아니길

그들에게 내가

언택트 시대에 익숙해진지도 꽤나 시간이 흘렀다. 원래도 충분히 활성화되고 있었던 온라인 시스템들이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발전되면서 '비대면'이라는 단어 또한 일상이 된 것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처음에는 사람들을 불편하게만 했던 것들이 이젠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듯 우울하고 답답한 나날이긴 하지만 어쩐지 난 비대면에 익숙해진 요즘의 생활이 좋기도 하다. 바이러스로 인한 이 비극적인 상황에 공개적으로 할 말은 아닌듯 하지만 말이다.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말이 많다거나 아주 활발했던 적이 없었고 어떤 친구들 무리에서도 말하기보단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존재감이 큰 사람 옆에서 그 사람을 더 띄워주는 것을 좋아했으며, 큰 무리에서 리더십을 펼치기보단 작은 여러 무리의 친구들과 소소하게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이런 내 성격에 딱히 의문을 가지진 않았었다. 하지만 최근 언젠가부터 내가 사람들과 대면해 있을 때 무언가 주장하는 것을 특히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도 비대면으로 줌(ZOOM) 모임을 하던 때였는데, 내가 대면으로 그들을 만났을 때보다 수다스럽고 말을 엄청 잘 하는 것이었다. 비대면 일상이 나에 대해 알게 해준 소중한 부분이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에겐 언택트 시대가 나쁘지 않은 면들도 있다.


오랜 생각 끝에, 사람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 몇가지를 깨닫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첫째로는 말주변이 없어서, 둘째로는 그들이 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에게 실망할까봐서다. 그것이 뭐에 대한 것이든 내 의견이 부정당하는 것이 두려웠다. 가족이나 이미 아주 친해진 사람들은 제외하고다. 이건 조금 의아한 부분인데, 처음 만나는 사람들보다도 오히려 적당히 어느 정도만 알게된 사람들에게 더 자신감이 없어지곤 한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알게 될 수록 의지에 상관없이 그 사람에 대한 기대가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를 향한 그 기대가 뭔진 모르겠지만 난 늘 그걸 무너뜨리고싶지 않다. 그래서 쓸데없이 모든 말과 행동에 생각이 많다. 


어렸을 땐 누가 내 의견에 반대 의견을 제시할 때 극단적으로 그게 나를 싫어하는거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걸 알지만, 아직도 그런 상황이 오면 마음 한켠에 단지 내 의견에 대한 부정이 나에 대한 어떠한 평가로 자리잡을까봐 걱정하기도 한다. 참 쓸데 없는 걱정이다. 그리고 인정하기 싫지만 자존감이 낮은 것도 같다. 이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좀 더 적극적인 성격, MBTI로 따지면 'E' 성향을 조금이라도 더 갖기 위해 어느 정도 노력하고 있다.


이런 내가 작년부터 거의 1년간 여러 가지 비대면 수업을 들어왔다.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기도 하지만, 비대면이라는 말에 더 쉽게 용기내어 시도한 강의들도 있다. 글로포에버 합평모임도 그중 하나다. 몇 가지의 줌 수업을 들으며 알게된 건데, 내가 비대면 상에서는 대면일 때보다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도 대답도 잘 하고 내 의견을 두려움 없이 말하고 있었다. 마치 외향적인 사람처럼 말이다. 같이 수업을 들은 사람들에게 내가 그렇게 여겨지고 마무리된 수업은 상관이 없지만, 언젠가 대면으로 전환이 되어 얼굴을 마주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조금 걱정이 된다. 


비대면 일상이 영원하진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완화되어 다시 많은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할 것이고, 분명 그래야만 한다. 나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미지가 있는 상태에서 마주하게 되는 사람들에게 나라는 사람이 긍정적인 이미지로 부응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정말 잘 알고 있는데도 마음으로는 참 쉽지가 않다. 괜찮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과 그 노력에 비해서는 난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내가 헛발만큼은 아니었으면 한다. 이런 생각이 누군가에게 부담을 준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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