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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블링 Apr 26. 2022

고등학생의 수학 생활 탐구

보기엔 그래요. 걔들 마음 속 까진 모르고요.

고등학교 내신을 등급제로 만든지 꽤 오랜시간이 지났다.

처음에는 '등급'이라는 말을 쓰는데 반발 아닌 반발심이 조금은 있었으나,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너무도 촘촘하게 소수점단위로 줄을 세웠던 이전 입시에 비해서는 좀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성적으로 아이들을 나누는거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냐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고등학교 교실에서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등급에 따라 생활패턴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방과 후 수업. 

‘심화 수학반’은 수학 내신 상위 10%인 아이들이 신청할 수 있는 수업이다. 내신 상위 10%라 하니 아주 대단한 걸 하고 있는 아이들 인 것 같지만, 사실 교과서 수준의 문제을 '완벽하게' 풀수 있으면 받을 수 있는 성적이다. 그렇기에 이 수업을 신청하는 아이들은 이미 심화 문제에 단련된 무리와, 학교 수학을 아주 열심히 하는 무리로 나뉜다.      

심화반 수업에서는 제목 그대로 심화 문제만 다루기 때문에 수업 준비에 공을 들여야 한다. 50분 수업을 위해 2시간 이상 문제를 풀어야 할 때도 있다. 경력이 좀 쌓이면 덜하려나 싶었는데, 퇴임을 앞두신 ‘입시수학의 대가’라고 불리는 선생님도 여전히 쉬는 시간이면 문제집을 풀고 계시는 모습을 보니 이번 생은 문제와 함께 인가 싶기도 하다. 문제를 고를 때도 고민을 해야 하긴 마찬가지다. 일단 참신해 보여야 하고, 알던 공식이어도 두 세 개를 복합적으로 생각해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리고 문제 길이가 길다든지, 좀 짜증나 보이면 금상첨화다. 일단 겁을 먹어야 체감 난이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치밀하게 수업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심화반 제 1무리(라고 칭해 본다) 아이들은 프린트를 받아드는 동시에 연필을 움직인다. 조금의 주저함도 없어 보인다. 이미 알고 있는 문제라는 듯 익숙하게 대한다. 물론 이미 풀어 봤을 가능성도 있을 테지만 이런 복잡한 문제를 보고 겁없이 덤빈다는 것은 비슷한 문제를 자주, 아니 매일 풀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보기엔 고2 심화반에서 상위층인 이 아이들은 바로 수능을 치러 가도 될 만한 수준이다.

이들은 뭐든, 언제든 열심히 한다. 수업 시간도 보충시간도 자습 시간도 쉬는 시간도 점심시간도. 그 모습이 꼭 내 고등학교 시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우리 반 반장 같다. 그 아이는 정말 숨도 안 쉬고 공부만 했었다. 쉬는 시간에 잠을 자거나 매점에 가는 일도 없었다. 친구들과 하는 대화는 오직 문제를 가르쳐주는 것 뿐이었다. 지금 학교에서 보는 심화반 상위 그룹 아이들은 그 친구의 데자뷰 같다.      

그리고 심화반을 구성하는 제 2무리(1무리 외의) 아이들이 있다. 이들은 심화 프린트의 문제에 솔직하게 반응한다. 짜증나게 생겼으니 짜증을 낸다. 

“쌤~ 어디서 이런 문제는 가져오는거에요!”

출처를 알려주면 더 짜증을 낸다. 

“아,쌤! 그런 어려운 데서 문제를 가져오면 어떻게 해요!” 

“심화반 수업이니 그렇지~” 

인간미가 느껴져서 웃음이 난다. 결국 풀어 내기도 하고 끝끝내 못 풀기도 하지만 풀이를 하고 난 후 열심히 옮겨 쓰고 질문하고 복습한다. 이해가 안 되었으면 수시로 가져와서 질문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역시 상위 10% 될 만 하구나’ 싶다.      

이렇게 일반계 고등학교에는 상위의 두 그룹이 존재한다. 1,2등급에 해당하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정규 수업으로 돌아오면 모든 아이를 만날 수 있다. 고등학교 성적은 상대평가이며 1~9등급으로 나뉜다. 8,9등급은 공부와 다른 진로를 선택한 아이들이 차지하는데, 이들은 거의 하루종일 머리를 들지 않을 때가 많다.     

6~7등급 아이들은 스스로를 ‘수포자’라고 부른다. 이 수포자 그룹은 수학공부라는 것을 거의 하지 않는다. 때에 따라 부모님이나 친구의 협박과 애원에 못 이겨 공식 정도 외우고 시험장에 들어와서 ‘숫자 넣으면 답이 바로 나오는’ 문제를 맞춰 준다. 그러면 경계에서 살짝 올라온 6등급이 나온다. 학교 시험의 첫 두 세 문제는 반드시 이들을 위해서 출제해야 한다. 공식이라도 외운 노력이 가상하니 그 정도의 배려는 해 주는 것이 좋다.

이들은 수학시간이면 자연스레 다른 책을 꺼내든다. 수업하는 입장에서도 엎드려 자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해서 크게 제지하지 않는다. 그래도 자신의 길을 찾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나마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가장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아이들이 3~5등급 아이들이다. 처음 교사의 신분으로 이들을 만났을 때,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들은 내가 누려보지 못한 고등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시절 대부분 학교가 그랬듯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저녁 6시까지 보충수업이 의무였다. 1,2학년은 9시까지, 3학년은 11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의 이름으로 타율학습을 했다.  하교 시간 이전에 교문 밖으로 나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학교 행사라고는 1년에 한 번 있는 체육대회가 전부였다. 소풍을 빙자한 영화감상도 있긴 했지만, 일방적으로 정해진 영화 한편을 의지 없이 봐야 했기에 제목 마저도 기억나지 않는다. 선생님들은 자주 공부를 미끼로 윽박질렀고, 체벌을 하기도 했으며 수업시간에는 정말 열심히 수업만 하셨다. 나의 고등학교 3년은 간직하고 싶지 않은 추억이다.

그런데 지금 보는 이 아이들은 나와는 너무 다르게 고등학교 생활을 하는 것 같다. 자율학습도 정말 자율이다. 동아리 활동도 적극적으로 한다. 배구도, 실험도, 춤도 영혼을 담아 즐긴다. 아이들은 생기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다고 우는 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정말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주말에는 학원을 가기도 하지만 시험 기간이 아닌 이상 제법 많이 놀러 다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행복해 보이는 아이들도 입시가 코앞이다 보니 시험기간에는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학원에서는 학교별로 기출문제를 분석하여 예상 문제를 엄청 많이 만든다. 아이들이 학원 숙제라고 가져와서 풀고 있는 걸 보면 이건 뭐 프린트가 아니라 하드커버 대학교재를 능가하는 두께이다. 물론 학교시험 적중률을 높이기 위해서 일테다. 정작 학교 선생님이 “이번 시험문제는 교과서와 보충교재에서 절반씩 냈어!”라고 말을 해도 아이들은 학원숙제 하느라 교과서와 보충교재를 볼 여유가 없다. 해야 할 공부가 뭔지 선택할 능력이 부족하니 시키는 것만 하면서도 찝찝하고 불안하다. 그 영향인지 컨디션에 따라 등급 변동이 많다. 평소 스타일보다 한 두번 꼬아서 만든 문제를 추가하거나, 서술형 문제 채점 기준을 강화할 때면, 이 중간층 아이들의 등급은 출렁이게 마련이다.    


중학교 3학년 말, 아이들이 고등학교 생활에 대해 질문하는 내용을 보면 걱정이 태반이다.

성적이 떨어지진 않을지, 입시를 잘 해낼 수 있을지, 낯선 곳의 선생님들은 어떨지.

담임이자 수학교사의 입장에서는 항상 이렇게 이야기 한다. 

"물론 고등학교 수학은 알다시피 엄청 어렵고, 등수는 3배가 될거고, 고등학교 선생님도 지금보다 덜 친절하실거고, 수행평가도 어마무시해."


수학 성적이 입시결과는 결정할 지언정 인생의 행복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겪어본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것이니, 최선은 다하되 자신의 위치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1등급은 공부하면서 기쁨을 찾고, 4등급은 친구와 어울리며 기쁨을 찾고, 7등급은 또다른 미래를 꿈꾸며 기쁨을 찾으면 된다.


"걱정은 그만하고, 지금보다 성숙한 네가 되어 행복한 생활을 누리면 되는거야"라고, 

그 때 못한 말 여기서 조그맣게 이야기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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