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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블링 Apr 28. 2022

03 중학교 1학년이 아직 오지 않았다.

중1까지만 귀여울건가

‘그래,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어.’

마음이 꿈틀거리는 것을 누르며 재이의 미래 모습을 그려보았다. 학교에서 만난 집 공부파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공부습관을 잘 들이기만 하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붙잡고 공부시킬 때만 하는 아이 말고, 그 스스로 잘하는 그 아이들처럼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와 다르게, 

누가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방법을 몰라 헤매지 않고, 

스스로를 잘 관리할 수 있는 재이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꼭 더 바랐던 것이 있다면, 그 아이들처럼 엄마와의 관계도 최상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중학교로 옮긴 첫 해 4월,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고등학교에서는 학부모 공개수업을 하면 반장 어머니들만 예의상 오셨다가 5분도 지나지 않아 나가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 오는 반도 부지기수다. 중학교라고 뭐 다르겠냐 싶었지만 ‘중학교 학부모님은 다르다’고 얘기하시는 선배 선생님들의 말씀에 살짝 긴장이 되었다.

3교시 시작종이 울리는 걸 확인하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1학년 교실로 향했다. 복도에 서서 기다리시던 어머니들이 교실로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교실 뒷공간이 순식간에 꽉 찼다. 아이들은 뒤를 흘끔거리며 자기 엄마가 오셨는지 확인했고, 손을 흔들며 격하게 환영하기도 했다. 왠지 재이의 어린이집 참관수업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며 준비한 수업을 진행했다. 10분이 흘렀고 어머니들은 진지하게 수업을 듣고 계셨다. 아이들의 수업 참관이 아닌 본인들이 수업을 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왜 안 나가시는거지?’

일단 문제풀이로 들어갔다. “자, 개념은 이해됐죠?? 0쪽, 0번 스스로 풀어 봅시다.” 이 정도면 수업의 흐름을 보셨으니 퇴장하실만한 타이밍인데, 퇴장은 커녕 더 당황스런 상황이 연출되었다. 뒤에 계시던 어떤 어머니께서 아이들의 책상 사이, 그러니까 교실 중간으로 들어오셨다. 자기 아들이 제대로 안 풀고 있는 걸 보니 답답하셨던 모양이었다. 아예 옆에 자리 잡고 서서 문제풀이를 도와주셨다. 아이는 평상시에 집에서도 그렇게 공부하고 있는지 아무 말 없이 고분고분 엄마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렇게 중1 어머니들은 자발적인 도우미 역할을 하시며 수업 마치는 종이 칠 때까지 45분간 꼼짝 않고 교실을 지키셨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예상치 못한 참관수업에 잠깐 정신줄을 놓칠 뻔 했지만 4교시 종은 여지없이 울렸다. 4교시는 3학년 수업이었다.

‘또 꼼짝없이 한 시간 내내 어머니들과 공동수업을 하겠구나’, ‘아예 어머니가 자기 아이 문제 풀이를 도와주는 시간을 넣어서 참여 수업을 해 볼까? 엄마 안 오신 아이들이 불편해서 안되겠지’ 마음속으로 이것저것 생각하며 교실에 들어갔다. 수업이 시작된 지 2분 정도 지나자 4분의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아이들은 누가 오든 말든 관심도 없었고, 어머니들은 감사하게도(?) 10분 정도 자리를 지키다가 나가주셨다.     


중학생 학부모님도 애들처럼 이 시기에 급변하시는 걸까. 

두 번의 반전을 겪고 나니 정신이 없었다. 한숨을 돌리며 옆자리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선생님, 1학년과 3학년 학부모님들이 너무 다르네요! 신기하기도 한데 좀 당황스러웠어요. 왜 그런 걸까요?”

“원래 그래. 중1까지는 엄마 말 잘 듣잖아. 2학년만 되도 애들이 그 애들이 아니에요~ 3학년들은 엄마 학교 못 오게 해”   

  

앞서 이야기한 아진이처럼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도 부모님의 지도를 잘 받는 아이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부모님과의 관계가 아주 좋을 때 가능한 일이다. 일반적으로는, 아이들이 부모님의 손안에 있는 것은 길게 보아 중학교 1학년까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춘기가 일찍 오는 아이들은 초등고학년이 마지막이다. 티비에 나오는 육아 상담 프로그램의 의사 선생님이 초등시절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 중요한 시기를 그냥 보낼 순 없었다. 

내 손을 벗어나는 시기에 스스로 알아서 잘하게 하려면 아이가 초등일 때 뭔가를 하긴 해야 한다. 하지만 그저 좋은 학원을 찾아 보내고, 좋은 교재를 사주는 것만이 방법은 아닐 것이었다. 

물고기를 잘 잡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고기 잘 낚는 낚시꾼을 고용하거나 낚시 교본을 암기시키는 것이 아니다. 고기를 기다리는 끈기, 입질을 알아채는 손 감각, 묵직한 고기를 낚아 올릴 수 있는 팔 힘, 고기 많은 곳을 선별할 수 있는 안목. 이 모든 것을 ‘체득’해야 한다. 


제대로 공부하는 법을 몸에 익히게 만든 아진이 아버지는 초등 때 어떤 식으로 아진이의 공부를 코치하셨던 것일까. 우리집 강아지들도 그렇게 가르치면 스스로 잘하는 아이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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