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미용 Jan 03. 2023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싫다’고 말할 용기

오스카 와일드[헌신적인 친구]

 A는 어딘지 모르게 힘이 없고 우울한 표정일 때가 많다. 그러나, 수업 시간에는 제 역할을 제

대로 해내고 모둠 활동에도 협조적이다. 대화를 나눠보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등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가끔 A가 소심한 눈빛으로 고개를 숙이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 바로 같은 반 B 앞에

있을 때다. B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친하지도 않아 보인다. 그런데, B의 어깨동무에 힘없이

끌려다니고 속절없이 준비물을 내어놓는 등의 행동을 한다. 그것은 평범하고 정상적인 친구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어쩐지 A는 끌려다니는 인상을 준다. 아이들끼리 

모둠을 구성할 때 A는 B의 상황에 따라 필요하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A가 군소리 없이 따른다는 것이다. A나 주변의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이르는 일이 없기에 지나치곤

했지만, 유심히 관찰해보니 A는 B에게 눌려 있었다.


 조용히 불러 A의 사정을 물으면 괜찮다며 자기는 B와 친구라고 말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헌신적인 친구’에서 친구 밀러에게 자신을 희생하는 한스를 보는 것 같다. 자신의 필요를 위

해 진정한 친구 운운하며 끊임없이 한스를 착취하는 밀러의 파렴치함과 그런 밀러를 존중하고

다 퍼주는 한스의 답답한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A와 B는 서로 친구라고 말하지만, 진정한 친

구가 아니다. B의 거침없는 행동과 센 말투에 눌려 있는 A가 무침히 짓밟히고 있는 상황이다.

A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학부모와 얘기를 나누면 보통은 자기 아이의 힘든 상황을 인지

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성향이 조용하고 미주알고주알 학교 얘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속 시원히 말하지 못하고 도와줄 이를 찾지 못한다면 학교폭력으로 갈 확

률이 매우 높다. 옳고 그름이 밝혀지고 적절한 처벌이 내려진다 해도 그 땐 이미 둘 다 상처

를 입었고 회복하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A와 그의 부모는 어떻게 해야 사전에 이러한 불상사

를 예방할 수 있을까?


 큰 몸집과 억센 말투, 이기적인 행동과 사람을 쥐락펴락하는 놀라운 못된 지도력에 억눌리지 않기 

위해서는 몸집을 키우고 목소리를 키우는 것보다 깡(악착같은 기질이나 힘)을 장착해야 한다.

아이들 각자의 이런저런 문제 현상의 원인을 찾아보면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지만, 결국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기질로 귀결되면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약해 보이는 기질로 살아가더라도 

나의 존재를 가벼이 여기는 그 누구 앞에서 당당히 ‘싫어’라고 외칠 수 있는 깡이 있어야 한다.

강하고 억센 기질을 갖고 태어나고 자라면서 안하무인의 역할에 충실했던 사람은 그렇지 않은

존재의 존엄성을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요즘엔 주먹을 먼저 날리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시

스템이니 절대로 금해야 하지만, 눈빛이나 말로 강력하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해야 한다. 자신

의 보호자가 자기 자신일 때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뿜는다.


 가정에서 아이의 기를 살려주는 것이 먼저다. 특히, 타고 나기를 A와 같이 심약한 아이일 경

우 부모는 도덕적 가치관만 강요하기보다는 어깨 펴고 가슴을 내밀어 ‘싫어’라고 덤빌 수 있

는 용기를 더 심어주어야 한다. 고양이에게 몰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생쥐처럼 더 이상 어

쩔 수 없을 때 죽기 살기로 덤비는 정신이 아니다. 부당하고 공정하지 못한 요구를 당하는 그

순간에 과감히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A의 키가 훌쩍 자라고 기개가 생겨 당당해지기를 바라지만, 지금은 ‘싫어’라고 말하며 나를

지킬 수 있는 용기 즉, 깡을 기르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부모와 대화 창구는 늘 열려 있어야

한다. 학교 다녀온 아이를 붙잡고 꼬치꼬치 캐물어 답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으나, 자연스

럽게 아이가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부모는 늘 열려 있어야 한다. 무슨 말을 해도 부모

는 내 편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먼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먼저 아이

의 편이 되어 미러링하며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 주어야 한다. 잘못을 저질러 혼이 날지라도

내 부모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줄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또한, A와 같이 생각이 밖으로 드러나기보다 자신 안으로 향하는 아이는 크게 웃으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놀이 경험을 많이 쌓는 것이 필요하다. 크게 웃고 떠들며 자신을 아웃팅하면

서 서서히 진짜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했

을 때 누군가가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며 그 경험을 통해 발전한다.

어떤 사회든 각자의 성향에 따른 행동양식이 다양하여 서로 조화롭게 성장해 나가는 것이 건

강한 조직이다. 그러나 한 쪽이 자신의 주체성과 자존감을 세우지 못하는 관계는 결국 서로

망가지게 된다. 각자가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자 노력할 때 그 존엄이 지켜지고 관계는 회복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답답해서 죽는 일은 없어야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