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빠홈은 넓은 땅을 가졌지만, 좁은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에서 주인공 빠홈은 남의 땅에서 농사
를 짓는 소작농이었다. 성실하게 일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붙잡아 점점 넓은 땅을 소
유하게 된다. 땅을 넓혀가면서 빠홈은 참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쁨을 누리고 만족하
지 못한 채 더 넓은 땅을 갈망한다. 결국, 그 욕심이 그를 허무한 죽음에 이르게 한다. 죽음
앞에서 자신이 자신을 망쳤음을 알게 되지만, 이미 모든 것은 끝나 버렸다.
A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다.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형성되어 있고, 학업 성적도 우수하
다. 그런데, 자신의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보다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B를 의식하고
불안해한다. 분야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지만 둘 다 우수하고 기대되는 학생이다. A는 점수로
환산되는 학습 결과물에 집착하며 상대평가가 아님에도 B를 견제한다. B보다 더 잘해야 한다
는 부담감이 큰 것이다.
저학년 받아쓰기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채점이 끝나면 A는 바로 B의 점수를 확인한다. 자기
보다 낮은 점수면 으쓱하며 B를 살짝 깔보는 표정으로 B의 점수를 흘린다.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던 B는 자기 점수가 공개되는 상황에 당황스럽고 공개적으로 창피를 당하는 기분이 든
다. 반대의 경우, B가 자기보다 더 나은 점수를 받으면 상당히 불안해하며 집에 돌아가는 시
간까지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B의 점수를 보고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한다.
왜 A는 B의 점수로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걸까? 이런 경우 대부분 A의 부모 중 특히
엄마가 개입되어 있다. A의 엄마가 B의 성적을 궁금해하고, 늘 B와 비교하는 것이다. 보통 A
엄마는 B 엄마와 겉으로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거나, 어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을 수 있
다. 아이들끼리 좋은 경쟁자가 되면 실력 향상에 효과적일 것이라는 자신만의 이론으로 늘 누
군가와 비교하며 자기 아이를 부추겼을 가능성이 크다. 선의의 경쟁이라는 말은 A의 각오가
되어 있어야 의미가 있다. 누군가 선의의 경쟁을 하라고 시킨다면 선의는 사라지고 경쟁만 남
게 된다. 결국, A는 원치 않는 경쟁에 치여 불안에 휩싸이고 점점 생기를 잃고 학교생활에 지
치게 된다.
부모의 말에 순종적이며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의지가 있는 A는 소위 부모 말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다. 이런 성향의 아이는 초등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유지한다. 그러나, 부
모의 간섭과 누군가와의 비교는 아이가 커 갈수록 절대 A에게 선의로 작용하지 않는다. 충분
한 공부 역량을 가지고 있는 A가 더욱 분발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태도가 중요하다.
첫째, 부모가 먼저 경쟁심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학부모 상담에서 ‘아이 한 명 한 명 각자의
레이스를 경주한다. 출발점이 다르고, 측정하는 도구가 다르니 절대 비교하거나 조급해하지
마시라.’고 강조하여도 다수의 부모는 내 아이가 누구보다 잘 하는지가 늘 관심사다.
내 아이의 학업 성적 수준이 궁금하다면 담임 교사에게 상담을 요청하고 물으면 된다. 아이
앞에서는 비교하고 싶은 맘이 생겨도 입 꾹 다물고, 내 아이의 성과에만 촛점을 맞춰 바라보
아야 한다. 부모에게 인정받으며 자란 아이는 주변을 돌아볼 힘이 생겨 건강하고 바람직한 비
교를 스스로 할 수 있게 된다.
둘째, 90점 성적표를 내밀면 90점에 대한 격려와 칭찬이 먼저다. 채우지 못한 10점에 대한
아쉬움은 부모의 입이 아니라 아이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야 한다. 특히, 저학년의 경우
아이의 점수는 무조건 칭찬의 조건이어야 한다. 초등학교에서 등수는 매겨지지도 않고 점수는
기록되지도 않는다. 초등학교 공부는 재미가 먼저다. 공부를 즐기면서 특히 더 관심이 가고
자신 있는 것을 찾아가며, 친구들과 더불어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를 좋아하고 호기
심으로 아침을 기다리는 아이를 만드는 데는 부모의 역할이 크다. 물론, 교사의 역할이 더 크
긴 하다.
셋째, 진심으로 부모가 아이와 한 팀이 되어 주어야 한다. 부모가 팔장을 낀 채 호루라기를
불며 기록만 잰다면 아이는 쉽게 지치고 부모의 눈치를 보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
다. 부모와 이룬 드림팀의 대표선수가 될 자발적 의지가 생기게 도와야 한다. 충분히 지지하
고 노력의 과정에 함께 참여한다면 아이는 그 팀의 대표선수가 되어 그라운드로 전진해 나갈
힘이 생긴다. 아이가 성장해 갈수록 팀에서 부모가 할 몫은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조련사의
시선이 아닌 평등한 팀의 일원으로 아이를 대하는 자세는 유지해야 한다. 아이가 이룬 훌륭한
결과는 팀의 기쁨이 되고, 저조한 실적은 다음 기회를 준비하는 발돋움이 될 것이다.
‘좋아, 어디 한 번 겨뤄보자. 내가 땅으로 널 사로잡아 버리겠어.’ 빠홈이 땅만 있다면 악마도
두렵지 않다고 큰 소리치자, 악마가 빠홈을 향해 작심하는 대목이다. 악마보다 더 두렵고 떨
리게 하며 그를 매달리게 했던 대상이 땅이었다. 악마는 어쩌면 자기 안의 또 다른 자기인 것
같다. 나도 의식하지 못했던 무의식 속의 내가 추구하게 되는 그 무엇이다.
부모의 아이에 대한 욕심이 진정 내 아이를 위한 것인지, 내 안의 무의식 속 바램인지 살펴봐
야 한다. 열심을 내게 하는 욕심이 자기를 삼켜버리는 안타까운 세상사가 참 많다. 빠홈이 점
점 땅을 늘려가며 성실하게 살아가던 시절에 만족하고, 땅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았다면 어땠
을까? 가족과 함께 불어나는 수확으로 점차 넉넉하게 하루를 감사하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부모의 경쟁심리에 의해 아이가 끝없는 레이스에 쫓긴다면 땅을 향해 목숨을 바치는 빠홈과
같이 가혹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