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나의엣시(Etsy) 샵성장기
저 퇴사하겠습니다.
3년 3개월간의 근무를 끝으로 파트타임부터 시작해 매니저까지 올라간 자리에서 나왔다. 입사 당시 파트타임임에도 불구하고 3번의 면접을 보고 들어간 곳. 근무하면서도 매니저 자리까지 가기 전 몇 번의 탈락을 버티며 올라간 결코 순조롭지 않았던 길이였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듯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날은 퇴사를 생각하다가도 또 며칠 무탈하면 금세 그 생각이 사라지길 수십 번을 반복. 매장 매니저로 근무하다 보니 고객과의 트러블이 있는 것만 제외하면 당시에는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었다. 매장 매니저 팀이지만 보안과 회계, 교육 쪽에 업무가 중심인 조금 특이한 포지션이어서 흔히들 말하는 승진 같은 건 거의 없지만 그만큼 안정적인 자리.
힘들게 매니저가 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시스템이 자동화되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자동화된다는 말만 무성하던 시스템들이 드디어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 잠깐의 힘든 적응 기간을 거치고 나니 시스템으로 인해 나의 업무가 엄청나게 줄어들었다는 걸 체감하기 시작했다. 어라?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가? 그러고 조금 더 지나 이번에는 코로나(covid-19)가 찾아왔다. 길게 생각하지 않았던 이 전염병이 계속되자 영업시간과 손님이 줄기 시작했고 매출도 큰 타격을 입었다. 줄어든 영업시간과 매출로 인해 전보다 훨씬 적은 인원으로 매장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몇 개월 후 다시 매출을 회복했지만 적은 인원으로 운영하는 것에 적응된 매장은 예전만큼 많은 직원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이때 나는 예전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겠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과연 내가 언제까지 매장에서 근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1년 뒤 나는 어디에 있을까?
이런 상황이 지속되거나 시스템 자동화가 더 진행되어도 핵심 인원은 필요하겠지만 과연 거기에 내가 포함될까? 내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 생각으로 직장 안에서 다른 포지션으로 옮겨가고자 내가 기존에 맡던 일 이외에 다른 매니저 포지션의 업무 트레이닝을 받고 매장 내 특정 파트까지 맡아 판매 분석과 액션을 세워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언제까지 매장에서 근무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트렌드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과 자동화로 바뀌는 마당에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트렌드에 맞는 새로운 일을 하고 싶기는 한데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요즘 코딩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나도 해볼까 싶어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찾아보기도 하고 책도 빌려봤지만 내 옷은 아닌 느낌. 두 번째로 찾아본 건 카카오톡 이모티콘 만들기였다. 갑자기 코딩에서 카카오톡 이모티콘 만들기로 왜 넘어갔냐고? 같이 일했던 사람 중에서 카카오톡 이모티콘 작가가 있던 게 크게 한몫했다. 가끔 궁금해서 이모티콘을 찾아보곤 하는데 계속 시리즈가 늘고 있더라. 그래도 대학교 때 나름 그림 좀 그렸었는데 이걸 한번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부터 시작해 오래 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니 그림 수업을 들으면서 손을 풀어야겠다는 결심까지 갔다.
디지털 파일 판매가 뭐야?
코딩에서 이모티콘 만들까지 관심이 넘어갔던 나는 온라인 클래스에서 또 다른 걸 만나버렸다. 그림 그리기 클래스 사이에 살짝 끼어있던 디지털 파일 판매 강의 하나가 눈에 띈 것. 이건 또 뭐야?라는 마음으로 수업 목차를 찬찬히 살폈는데 이게 꽤 괜찮아 보이더라. 내가 사용할 수 있는 포토샵, 일러스트, 그림이라는 스킬을 활용해보기 좋아 보였고 카카오톡 이모티콘 만들기와 달리 심사를 거치는 과정 없이 바로 온라인샵을 오픈해 나의 작업물을 팔 수 있었다. 또한 나 스스로가 과거에 포토샵 효과나 브러시, 아이패드용 다이어리 템플릿 등의 디지털 파일을 인터넷에서 구매/다운로드하여 사용해 본 적이 있는 구매자였기에 저 시장에 큰 관심이 갔다.
나는 이것저것에 관심 가지는 것도 잘하지만 실행력도 매우 좋은 편. 디지털 파일 판매라는 세계에 흥미가 생겼으니 궁금한 마음에 수업을 한번 들어보고 싶어서 바로 강의를 결제했다. 심지어 그 무렵 회사에서 일주일 정도의 휴가 제안을 받았기 때문에 강의를 몰아서 들을 기가 막힌 타이밍도 주어졌다.
디지털 파일 판매를 본업으로 삼아야겠어
휴가 때 수업을 몰아들으며 시작한 건 좋지만 이제 시작해서 아직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했는데 바로 퇴사할 수는 없는 법. 우선은 계속 직장을 다니며 하는 부업이라고 생각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었다.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 스킬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과 두근거림과 함께 퇴근 후와 쉬는 날 계속해서 디지털 파일을 만드는 작업을 지속해 나갔다. 하지만 역시 본업이 제일 중요하기 마련. 부업으로 하고 있다 보니 매장일이 바빠지기 시작해 디지털 파일 작업은 밀리고 밀려 일주일에 하나의 작업조차 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심지어 디지털 파일 판매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라 당시는 작업부터 업데이트까지 하면 쉬는 날 하루 종일 해도 시간이 모자랐으니 당시 오픈, 미들, 마감 3교대 출근으로 매일 스케줄이 다르게 출/퇴근하던 나에게 작업할 시간을 만드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럼에도 회사일이 아닌 나의 것을 한다는 만족감과 새로 시작해보는 일에 대한 설렘. 또 앞으로 새로 바뀔 트렌드에 맞는 일인 것 같아 도저히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딱 1년만 여기에 올인해보면 좋겠는데. 작업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은 실적 없는 디지털 파일 판매샵을 보면서 몇 개월을 고민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해보지 않는다면 나중에 후회할 것만 같은 기분에 기한 없는 퇴사를 생각하고 있던 나는 퇴사 후 디지털 파일 판매를 본업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10원을 20원에 팔아치워도 그 20원을 투자해 200원으로 만들 수 있다면 남는 장사라는 것을 빨리 알아채야 한다” - 김미경의 리부트
퇴사는 했다 이제 앞으로는?
물론 이 1년이란 시간을 투자 후 실패할 수도 있다는 생각 역시 했다. 하지만 나는 4년간 내 열정을 쏟아부어 패션 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여성복 디자이너로 1년 넘게 근무하다 나의 길을 이 길이 아니라 라는 생각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경력을 버린 프로 탈주러. 어디서 일 못한다는 소리는 이제 듣지 않으니 만약 정말로 실패한다면 (실패에 대한 생각이나 도망칠 구석은 물론 만들어 두지 않는 게 제일이지만 사람일이라는 건 정말 알 수가 없으니까) 뻔뻔하게 다시 재입사 혹은 다른 SPA 브랜드나 백화점 등의 판매직에서 막내부터 시작할 각오 정도는 했다. 물론 부끄럽긴 하겠지만 부끄러움은 잠깐이니까.
앞으로도 브런치에 몇 개월간 나와 나의 엣시샵에 있었던 3개월간 판매 0건의 기록과 극복 이야기와 현재 엣시 상위 8% 셀러가 될 수 있던 노하우, 매달 샵에 일어난 변화와 실험 등 나의 디지털 파일 좌절기와 성장기 등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보려 하니 따뜻한 시선으로 계속해서 봐주시길.
- 와이 엣시? 내가 엣시를 택한 이유 3가지
- 3개월간 판매 0건, 다가오는 퇴사 날.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