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효설 Aug 29. 2023

D+37. ① 나의 과수면증 이야기

다시 시작해 보는 과수면증 이야기

 졸음은 회사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지하철에서도, 공연장에서도 졸음은 끝없이 쏟아졌다. 내가 많이 피곤했나?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가? 퇴근하자마자 아무것도 안 하고 바로 잠들어도 계속 졸렸다. 무슨 병에 걸린 것 마냥, 정말 병든 닭이 된 것 마냥 졸았다. 

 그런데 진짜 병이었다니. 기면증인가요?라는 내 질문에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특발성 과수면증이라고 했다. 잠이 오는데 이유는 없다고 했다. 유전자 검사를 하면 알아낼 수도 있다고 했지만, 의사도 권장하지 않았고 나도 원하지 않았다. 진료실에서 나올 땐 착잡함이나 속상함보다는 안도감이 컸다. 병이구나, 다행이야. 병이었어. 진단을 받는 그 순간까지 나는 모든 게 나의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졸음 하나 견디지 못하는데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겠어. 그만 졸아! 커피를 마셔! 그렇게 나를 다그치며 하루하루를 살아왔는데, 그게 모두 질병의 증상이었다니. 

 과수면증 진단을 받고 추가로 여러 검사를 했다. ADHD의 증상으로 수면장애가 나타날 수도 있기에, ADHD검사도 정식으로 했다. 결과는 초기 ADHD였다. 수면장애와 ADHD의 연관성이 깊진 않겠지만, 일단 ADHD 치료제로 유명한 콘서타를 먹기로 했다. 졸음을 쫓기 위한 각성제도 함께 처방되었다. 약값이 10만 원이 넘었다. 내가 진행했을 당시에는 낮 수면 검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서, 이미 꽤 많은 금액을 검사비로 지불한 뒤였다.

 평생 약을 먹어야만 졸음을 쫓을 수 있는 건가? 크게 절망감이 들진 않았다. 이미 우울증 약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약을 먹는 일상에는 익숙했다. 약의 양이 늘었다는 것만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지진 않았다. 하지만 약값으로 10만 원, 20만 원을 결제할 때마다 속이 쓰렸다. 나는 왜 이런 병을 타고나서 남들이 치르지 않는 비용을 치러야 하지? 오기로 약을 안 먹고 커피로 하루를 버텨보기도 했다. 결과는 나의 완패였다. 약이 없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각성제는 나의 구세주였다.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마지막 동아줄이었다. 

 내가 수면장애 진단을 받은 건 20대 중반이다. 수면장애가 발병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언제나 잘 잤던 것 같기도 하고, 못 잤던 것 같기도 하다. 언제 어디서나 잘 잠들 수 있다는 걸 자랑처럼 말했었다. 그게 병인줄도 모르고. 학창 시절엔 아무도 나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는 늘 제시간에 일어나 등교했고, 지각 한 번 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며, 기숙사에 살 땐 룸메이트를 깨우는 일을 도맡아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수면장애가 있을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생각해 보면 그때도 참 잘 잤다.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사물함 위에 누워서 자고. 하지만 그 시절엔 다 그랬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은 잠이 너무 부족한 존재들이라, 모두가 다 그랬다. 내가 이상하다 느끼기 시작한 건 회사에 취업하고 난 뒤였다. 맨 처음엔 일하기 싫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이 일이 지루하긴 하지, 커피 한 잔 하고 정신 차리자! 정신이 차려지지 않았다. 두 번째로는 어제 잠을 잘 못 잤나라고 생각했다. 그날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잠을 청했다. 잠은 잘 자고 일어났지만 졸음은 그대로였다. 몇 날 며칠이고 그런 상태가 계속되자 상사도 나의 태도를 지적했다. 나는 어느새 업무에 불성실한 직원이 되어 있었다. 억울했다. 나는 깨있고 싶은데, 어느 순간 졸고 있는 걸 어떡하라고! 당시 다니던 정신과의 선생님께 토로하자 선생님은 넌지시 대학병원 진료를 권장했다. 대학병원 정신과라니. 내가 진짜 정신병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진료 의뢰서를 써주는 선생님께 인사하면서 어렴풋이 느꼈다. 나는 앞으로 이 정신과에 올 일이 없겠구나. 하고.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잠을 줄여서라도 돈을 더 벌려하고 자기 계발을 한다. 나는 그런 세상에서 잠을 많이 자야 하는 병이 생겨버렸다. 낮잠이라도 자려하면 뒤처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마음을 고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친구들에게 낮잠을, 조금이라도 더 잘 것을 권장하고 다닌다. 나도 안다. 자는 시간이 아깝고 그 시간에 글자 하나라도 더 보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걸. 어떤 사람은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아닌 사람도 있다. 나는 그걸 모르고 잠을 빚졌다 호되게 당하는 중이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은 잠이 얼마나 중요한 지, 자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알고 있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D+36. 나의 작은 맥시멈 4평 우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