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새

서정아 짧은 소설

by 서정아

검은 새가 창문에 부딪칠 것 같은 기세로 날아오다가 급격히 방향을 꺾어 어디론가 사라진다. 오늘만 해도 벌써 세 번째, 최근 들어 빈도가 더 잦아지고 있다. 문희는 창문이 제대로 닫혀 있는지를 몇 번이나 확인해야 했다. 환기를 제대로 시키지 못한지 오래 되었지만 언제 새가 날아들지 모르는데 창문을 열어 둘 수는 없었다. 얇은 방충망 정도는 가볍게 뚫고 들어와 커다란 부리로 그녀의 머리를 쪼아댈 것만 같았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새에 대한 공포는 그녀의 일상을 압도했다. 부탁도 설득도 싸움도 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그녀의 무력감은 커져만 갔다.

으어어어…. 영배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문희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남편의 언어는 어느 순간부터 의미를 잃었다. 병을 앓기 시작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넘나들던 그의 언어는 이제 뜻을 알 수 없는 신음소리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가 잃은 것은 언어뿐만이 아니다. 작년 이맘때 넘어져 고관절을 다친 이후로 그는 걷기 능력도 상실했다. 영배가 자리를 보전하고 누워 지내기 시작하자 문희는 오히려 수월해진 느낌이 들었다. 문단속을 깜빡 잊은 사이에 밖으로 나가버린 그를 찾으러 다닐 필요도 없고, 그가 이유 없이 과격해지는 순간마다 머리를 얻어맞을 일도, 엉망이 되어버린 집안을 반나절씩 정리할 일도 이제 없다. 환자용 침대에서 상반신을 일으켜 세워 밥을 국에 말아 먹이고 몇 시간마다 기저귀를 갈고 수건에 물을 적셔 매일 몸을 닦아내는 일이 육체적으로 고되기는 하지만, 그 일들은 모두 예측과 통제가 가능한 일정 같은 것이었다. 하루의 루틴처럼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정부로부터 돌봄 수당을 받을 때마다 문희는 자신이 집안에서 행하는 노동의 가치를 처음으로 인정받는 느낌이 들었다.

으어어어어…. 다시금 영배가 길게 신음소리를 냈다. 문희는 그제서야 침상에 누워 있는 영배에게 다가갔다. 그는 어딘가 불편한 듯 계속해서 소리를 내며 몸을 꿈틀거렸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 사람이었는데, 침대에 누워 지내면서부터 이상하게 작아보였다. 매일매일 더 작아지는 것 같았다. 가여운 사람. 문희는 영배의 입가에 말라붙은 침 자국을 보며 생각했다. 이런 결말은 너무도 가엾다. 그렇지만 그 마음이 사랑인 것 같지는 않았다. 한때는 절박하고 애틋한 마음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영배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이제는 사랑을 표현할 수도 발음할 수도 없는 사람이 되었지만, 이렇게 되기 한참 전부터 영배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에게는 이름마저도 사랑스러운 연인 애리가 있었고 문희는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 했다. 영배가 멀쩡했더라면 끝까지 모른 척 할 작정이었다. 영원한 마음이란 없으니까. 그들도 결국은 시들해지고 서로 더 늙어가는 꼴을 지겹게 지켜보고, 혹은 둘 중 하나가 또 다른 사랑에 빠지고 가시 같은 언어들로 서로를 상처 입히고, 그렇게 되리라 믿었다. 나이든 이들의 연애라고 해서 젊은이들의 연애와 크게 다를 것은 없지 않겠는가. 문희는 먼지처럼 흩어지고 말 일시적인 사건으로 오래 유지해온 가정을 깨고 싶지 않았다.

영배가 기억을 잃기 시작한 후로 혹시나 싶어 한동안 해지하지 않았던 그의 휴대폰 관리는 당연히 문희가 했고, 그녀는 애리에게서 오는 연락을 모두 무시했다. 그렇지만 문자 메시지에 담긴 어떤 말들은 각인처럼 기억에 남아서 불쑥불쑥 그녀의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어느 순간부터 애리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는데, 작년에 영배가 고관절을 다쳐 병원에 한 달 간 입원해 있었을 때 문희는 충동적으로 애리에게 전화를 했다. 사정이 이러이러하게 되었는데 한 번 보러 오겠느냐고, 예전에 친분이 있었던 분 같아 연락드렸다고 예의를 차려 말했다.

치매에 걸리신 거예요? 그것도 모르고…. 애리가 울먹이면서 말하는데 문희는 치매라는 단어가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알츠하이머요, 하고 정정해 주었다. 다음날 애리가 음료수를 한 통 사들고 병원에 찾아왔을 때 문희는 어쩐지 승리한 기분이었다. 영배는 당연히 애리를 알아보지 못했고 침을 흘리며 으어어어, 하는 신음소리만 낼 뿐이었다. 문희가 익숙하게 들어왔던 음성. 거기엔 사랑도 뭣도 없었다. 애리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 또한 아무것도 없었다. 애리는 영배의 침대 옆에 서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다 문희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그 순간 문희의 마음속에 다시금 패배감이 엄습했다. 그녀는 영배의 비참한 상황을 애리에게 보여주고 그동안 자신이 가졌던 무력감을 도로 건네주고 싶었다. 영배가 멀쩡한 상태로 애리를 만나는 동안 자신이 느꼈던 수치심을 되돌려주고 싶었다. 둘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든 영배의 법적 보호자는 바로 문희 자신이며, 이런 상황에서 그에 대한 모든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나면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애리가 돌아간 후 문희의 마음에는 알 수 없는 소외감만 가득 찼다.

으어어어…. 영배의 입가에 침이 흘러내린다. 그대로 두면 침은 또 허옇게 말라붙을 것이다. 사랑이 모두 새어나간 이후에도 끝까지 함께 살아가는 기이한 세월 또한 입가의 침처럼 말라붙었다가 가루가 되어 바스라지고 흩어질 것이다. 가여운 사람. 가여운 우리. 문희는 힘없이 놓여있는 영배의 손을 꼭 잡았다. 그래도 당신과 나는 어쨌거나 가족이잖아, 죽을 때까지 말이야. 영배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문희에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기억을 잃기 전에도 두 사람의 대화는 늘 어긋나거나 일방통행이었으니까. 문희는 영배의 힘없는 손을 꽉 쥐었다가 놓았다. 그 순간 창밖에서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검은 새가 보였다. 분명 창문을 연 기억이 없는데 이상하게도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문희는 다급하게 창문 쪽으로 다가가며 손을 뻗었다. 이미 무서운 기세로 날아오고 있는 검은 새는 아무래도 방향을 꺾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 2025년 웹진 엄브렐라 가을호에 수록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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